2018. 8. 23. 10:57ㆍ감동이 있는 이야기
지난 21일 우연히 EBS를 보니 몽골을 배경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자막을 보니 'EIDF 2018'이다. EBS 국제다큐영화제가 2018.08.20~08.26까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데 출품작 중의 한 작품이었다.
1999년 의사이자 탐험가인 일본인 세키노(
몽골 대초원에서 숙련된 솜씨로 말을 타면서 가축을 돌보고 있는 몽골 소녀 '푸지에(Puujee)'를 우연히 만난다.
푸지에는 낯선 이방인이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사진 찍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 한다.
당시 푸지에는 여섯 살. "가까이 오지 마세 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와의 만남 이후 5년 동안, 세키노는 몽골을 휩쓰는 슬프고도 강한 변화의 바람을 목격한다.
세키노는 푸지에를 따라서 푸지에가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삼촌, 사촌과 함께 살고 있는 게르를 방문한다.
푸지에 할머니, 뒤에 병색이 완연한 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 뒤로 푸지에의 앳된 모습이 보인다.
3개월 전에 기르던 말 서른아홉 마리를 도둑맞았다고 하면서 할머니는 침통해 한다.
말을 훔쳐서 달아나면 엄청난 속도로 달아날 것인데 다시 찾기가 불가능할 것 같다. 밤에 나타나서 어슬렁거리다가 새벽녘에 훔쳐 갔다고 한다. 도둑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푸지에 가족의 게르와 가축 우리가 멀리 보인다.
인근의 다른 목장에도 도둑을 맞았다고 푸지에가 전한다.
일본의 의사이며, 탐험가인 세키노(상(さん)이다.
푸지에 할아버지는 이 작품에서 이 모습이 마지막으로 그해 작고하고 만다.
푸지에의 아빠는 울란바토르로 일하러 떠났다는데 그런데 왜 소식이 없는가? 저런 가족을 두고 무책임한 사람이다. 한국에는 서울역에 가면 그런 사람을 많이 만난다. '숙자'라고~
'푸지에' 엄마는 도둑맞은 말을 찾아 나섰는데 저 넓은 초원의 어디에서 말을 찾을 수가 있을까. 말 엉덩이에 낙인(烙印)이 찍혔지만, 만약에 도축이라도 했다면?
결국 며칠 동안 초원을 훑었지만, 그녀의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단다. 이불도 없이 외투를 덮고 추운 밤을 다른 유목민의 게르에서 보내면서 그렇게 고생했는 데 정말 딱하게 되었다. 길손의 분노가 치민다. 그 도둑놈들 초원을 헤매다가 늑대 밥이나 되기 바란다.
어린 송아지는 추운 바람을 피해 저런 나무판자로 만든 작은 우리에 따로 넣어놓았다.
세카노 상은 몽골 사막을 횡단하기 전에 푸지에 가족사진을 찍는다.
세카노에게 푸지에가 타던 흰 말을 선물하는데 순박한 푸지에 엄마는 그 말을 가지고 일본으로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우선 운송비가 어마어마할 것이고, 일본에 가져가도 아파트에서 키울 수도 없고, 그래서 세카노는 마음만 받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선물 받은 말을 후지에에게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다음에 또 다시 오겠다고 기약하면서~
세카노 상이 일본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 '후지에'에게 선물하겠다고 하면서 어떤 선물을 원하나? 하니까
푸지에는 수줍어하면서 컴퓨터라고 얘기한다.
겨울 방목지로 벌써 이동했어야 했는데 잃어버린 말을 찾는다고 이곳에서 많이 지체되었다. 겨울 방목지로 가축을 위해 떠나지 않을 수가 없기에 푸지에 가족은 게르를 정리하여 트럭에 싣는다.
그들이 지냈던 자리는 습기로 축축하고, 떠난 자리를 보니 길손의 마음도 슬프다.
다른 가족은 트럭을 타고 이동하고 푸지에 엄마는 가축을 몰고 겨울 방목지로 가기에 말을 타고 따라간다.
저 모습이 세카노 상이 푸지에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다.
몽골은 구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공산주의가 된 국가이며, 1924년 11월 26일 사회주의 혁명으로 수립된 정부는 국호를 “몽골 인민공화국(Mongolian People's Republic)"으로 정하였으나 1922년 1월 개방 정책의 상징으로 국호를 몽골 공화국으로 고쳤다고 하며, 지금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세카노 상이 푸지에 엄마로부터 받은 편지
세카노는 다시 푸지에 가족을 찾아간다.
오래간만에 세카노를 서먹서먹하게 맞는 푸지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세카노가 푸지에 엄마의 안부를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게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푸지에 엄마의 사진 액자가 파란 천이 둘러서 제단 위에 얹혀있다.
푸지에 할머니가 일터에서 돌아오기 전에 푸지에 삼촌이 말하길 푸지에 엄마는 인근 부락에 가서 밤에 온다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비보를 들은 세카노는 크게 상심한다.
몽골 사람들은 말을 타고 떠날 때 여분의 말 한 필을 끌고 가는 것 같았다. 워낙 장거리를 다니니 말도 지칠 테고 그러면 다른 말을 갈아타기 위해서 그렇게 다른 말을 끌고 갔는데 푸지에 엄마는 탔던 말에서 낙마했고 여분으로 데려간 말에게 몸이 밟혔다는 것이다.
푸지에 가족이 살던 곳이 워낙 외진 곳이어서 그랬는지 그들이 요청한 구급차는 12일 동안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푸지에 엄마는 12일이 흐른 후에 구급차 대신에 일반 차량으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푸지에 엄마는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당도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에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었으나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면서 무료 의료혜택이 없어졌고, 의료보험이 없던 푸지에 엄마는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음 날 사망했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유목민들은 대부분 현금이 없다고 한다. 아마도 푸지에 엄마는 늑골이 부러졌을 것이고, 이것이 다른 장기를 찔러서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간단하게 고쳤을 것을 저렇게 허망하게 떠났다고 생각하니 길손의 가슴 한편으로 거센 찬바람이 휘몰아쳐 지나간다. 다시 사진을 보니 푸지에 엄마의 영정사진이 곧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이 무척 슬퍼 보인다.
푸지에는 엄마가 죽고 몇 날 며칠을 울부짖었다고 한다. 푸지에 엄마는 푸지에에게 말 타는 법도 가르치고, 늘 함께했다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운명도 참 가혹하다. 엄마가 죽고 사십구제가 되는 날, 푸지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세카노와 푸지에 가족은 푸지에 엄마가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로 향한다. 그러나 푸지에는 갈 수가 없다. 따라가려는 푸지에를 할머니가 말리느라고 고생한다. 몽골 풍습에는 어린이는 고인이 죽은 후 3년이 되기 전에 성묘하면 죽은 이가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맴돈다고 한다. 아마도 어린 자식을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아닐까?
공동묘지에 가니 가지런하게 다듬어지고 비석까지 세워진 묘소가 있었는데 푸지에 엄마의 무덤은 거친 흙덩이가 그대로 있다. 아마 추운 겨울이어서 정리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푸지에 할머니는 푸지에 엄마 무덤 옆에서 술인지, 성수(聖水)인지하늘에 뿌린다.
환생을 믿는 라마교의 영향으로 푸지에 할머니는 푸지에 엄마의 환생을 빈다.
그즈음 몽골에서는 '조드'가 발생했는데 조드는 겨울에 몰아닥치는 한파와 이로 인해 가축들이 죽는 것을 말한다. 10년에 한 번 정도의 빈도로 발생해 몽골의 시골 지역에 큰 피해를 주곤 한다. 조드가 오면 기온은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며, 심한 경우에는 영하 50도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세부적으로 폭설을 동반한 차강 조드(цагаан зуд, 하얀 조드)나 눈이 전혀 오지 않는 하르 조드(хар зуд, 검은 조드) 등으로 나누는데, 차강 조드는 가축들이 풀을 못 뜯어 큰 피해를 주고, 하르 조드 역시 물이 부족해져 피해를 준다.
1944-45년 심각한 조드가 닥쳐 몽골 전체 가축의 3분의 1인 700-80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던 적이 있고, 2001-02년에도 심각한 한파로 100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다. 2009-10년의 경우 다시 찾아온 한파로 몽골 전체의 80%가 눈에 덮이고 80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다. 2015-16년과 2016-17년에는 2년 연속으로 조드가 찾아오기도 했다.
근래 시골 지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한파로 가축을 잃은 유목민들이 도시로 모여들면서 울란바토르시 외곽에는 거대한 게르촌이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말도 먹을 풀이 없어서 저렇게 일어날 기력도 없이 죽어간다.
가축이 먹을 것이 없으니 죽은 가축의 털까지 뜯어먹었다.
세카노는 몽골 횡단에 성공하고 다시 푸지에 가족을 찾았다.
푸지에는 엄마 대신에 가축을 돌보면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푸지에 할머니는 몽골을 떠나려는 세카노에게 마지막으로 '허르헉'을 대접한다.
엄마가 없어도 이렇게 구김살 없이 밝게 자랐는데 하늘에 있는 푸지에 엄마는 얼마나 푸지에가 보고 싶을까
초원에서 마지막으로 '허르헉'으로 하는 식사는 화기애애하게 계속되고
세카노는 지난번에 왔을 때 찍은 푸지에 가족사진을 푸지에게게 건넨다.
명절 때나 입는 고운 옷을 입은 할머니와 푸지에 엄마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원래 푸지에는 책을 읽어주는 선생님이 꿈이었으나 세카노를 만난 후에 그녀의 꿈이 일본어 번역가로 바뀌었다. 세카노는 푸지에 꿈을 실현해주고자 몽골에서 공부를 마치면 일본으로 오라고 초청한다.
푸지에는 다시 일본으로 떠나는 세카노와 수줍은 표정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작별 악수를 한다. 이것이 마지막 악수가 되었다.
세카노와 작별하는 푸지에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2004년 7월 세카노는 아프리카 대장정을 마치고 몽골 푸지에 가족을 다시 찾았다.
푸지에 두 살배기 사촌 바사는 이렇게 늠름한 기상을 가진 소년으로 자랐다.
이런 황망하고도 어이없는 일이 어디에 있나. 일본 번역가의 꿈을 간직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다가 초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둔 푸지에는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영화 같은 일들이 다큐 영화로 펼쳐진다.
푸지에!! 초원의 소녀로 태어나서 영원한 초원의 별이 되어버린 그 아이~ 황망하게 떠난 엄마를 그렇게 못잊고 그리워했나?
이젠 이승에서의 힘든 일들은 기억하지 말고, 몽골 초원의 드넓은 벌판과 아름다운 꽃, 그리고 네가 사랑했던 말과 소, 양을 기억하면서 엄마와 함께 극락에서 영생해라. 또 가능하다면 이승에 다시 환생하여 넓은 초원과 함께 하길 빈다.
[동영상 출처 : http://www.eidf.co.kr/kor/movie/view/439]
'감동이 있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지의 노르웨이 수중 동굴에서 꽃 피운 인간애 (0) | 2016.08.26 |
---|---|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린 노숙자 피아니스트 (0) | 2016.03.22 |
구조요원의 희생정신으로 Submarine(잠수함)이라고 불리는 전설의 괴물상어(Monster Shark)로 부터 구출된 사람들 (0) | 2016.02.14 |
테오도르 F 스토다드(Theodore F.Stoddard) 박사와 톰슨(Thompson) 여교사 (0) | 2015.12.10 |
택배 할아버지의 소원 (0) | 2015.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