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사(水多寺)

2019. 3. 27. 15:00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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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두 달에 한 번씩은 무을저수지 옆으로 난 길을 지나다닌다. 사진 찍는 지점은 무을저수지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인데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에 수다사(水多寺)라는 절이 있다. 무을면 상송리 입구에 사찰 측에서 수다사 표지석을 세웠는데 한자를 병기하지 않으니 길손은 수다스러운 비구니가 많이 있어서 그렇게 했나 라는 장난기 어린 해석을 하면서 지나다녔는데 오늘은 우연한 홈질 마녀농원 방문 때문에 마을 뒤에 있는 수다사를 마음먹고 찾아가는 길이다.






수다사 일주문에 연악산(淵岳山)으로 되어 있지만, 지도를 검색하니 연악산 지명은 없고 왼쪽은 기양산(해발 706m) 오른쪽은 수선산(682m)으로 나타난다.








수다사는 오른쪽 골짜기로 들어가야 한다.






수다사 일주문이다. 현판에는 연악산(淵岳山) 수다사로 되어 있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밑에서는 잘 몰랐는데 사찰 앞으로 난 골짜기를 보니 골짜기가 길고 깊으며 水量도 제법 많다. 수다사 대웅전은 좌우 양쪽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데 그래서 늘 계곡물이 흐르고, 물이 많은 수다사(水多寺)가 된 듯하다.






일주문을 지나니 길옆 자연석 위에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다.








표탕(表碭) '처사 해주 오공, 유인 동래 정씨'로 되어 있는  것은 산소에 있는 비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그 아래의 작은 글씨는 망자의 제삿날인 忌日을 표시한 것 같다.


표탕(表碭)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지만, 나타낼 表(푯말과 같은 것) 무늬가 있는 돌 碭의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 돌에 새긴 표지(標識)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길손의 성격도 참 피곤하다. 이런 것을 보면 일천한 한문 실력에도 어떻게든 찾아야 속이 시원하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특히 눈이 튀어나올 것 같다.


오른쪽부터 풀어보니 '位畓 上松洞 三二八  三三六 三百二十一坪 水多寺入'인데 위답(位畓)은 제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논으로 사찰에 제사를 맡기고 그 비용으로 수다사에 논 321평을 주었다는 뜻 같다.








이 비석을 언제 세웠는지는 모르겠으나 十四年 四月 住持 金奉律 監員(?) 또는 監院(?) 李永祚 女 吳奉善 外孫 朴石迕(14년 4월 주지 김봉율, 감원 이영조 여 오봉선, 외손 박석오) 대충 이렇게 되어있는데 14년이 서기 1914년인지 고종 14년인지 분간은 되지 않으나(사실은 1914년의 19라는 글자가 들어갈 부분이 고의적으로 쪼아낸 듯한 흔적이 있다.) 비석의 마모도로 보았을 때 얼추 100년 전에 세워진 비석인 것 같다. 길손은 이 비석을 보고 이렇게 해석한다. 시집간 오봉선이란 여식은 외동딸이었는데 시집을 가서 남편과 함께 친정 부모의 제사를 지내다가 남편도 죽자 위답을 수다사에 주고 부모의 제사를 맡겼다. 그 비석은 위답의 귀퉁이에 자리한 바위 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도 사찰에서 제사를 지내주는지 궁금하다.







겉으로 보기에도 천년 고찰의 위엄이 느껴진다. 왼쪽은 대웅전, 오른쪽은 명부전이다.






1649년(인조 27)에 만든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이다.



 



길손이 잘 못 보았는가? 영가단이 오른쪽에 있고,






신중단이 왼쪽에 배치되어 있는데 다른 사찰과는 반대로 되어 있는 것 같다.






명부전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산신각으로 갈 수가 있다.








산신각 가는 길은 많은 바람 때문에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대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 산신각이 있다.






좁은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 산신각이 서 있다. 그런데 산신각 위로 보이는 소나무가 죽은 것 같다.






산신각 입구에서 지나온 길을 본다.







산신각이 세워진 곳이 얼마나 좁은지 산신각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다.










산신각에 기대선 소나무에 노란띠가 둘렸다. 소나무 재선충이 이곳까지 창궐하였나 보다. 경북 방제단이 이렇게 표시한 것 같다.







온갖 것에 선심성 예산을 펑펑 사용하면서도 산림청의 소나무 재선충 방제예산은 모자라서 제대로 방역을 못 한다고 하니 이런 법이 어디 있나? 내 생전에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소나무가 멸종하는 것을 똑똑히 목도할 것 같다.







인적없는 산신각에서 이는 바람에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니 대나무 숲 사이로 산신령이 호랑이와 함께 나타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수령 300년의 배롱나무라고 한다. 길손은 배롱나무를 보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는데~ 중간 아랫부분으로 관세음보살도 보이고








마치 새색시가 큰절을 하는 것 같은 착각도 생기고(은빛 나는 것은 백 원짜리 동전이다. 누군가 발복을 원하면서 나무에 끼운 것이다.) 혹시 절값을 주었나? 절에 와서 절을 하니~~






포효하는 사자가 나무 기둥을 붙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절에서 불경스럽게도 개가 고추를 세운 것 같기도 하고,






왼쪽을 보면 미스터 코리아가 팔을 들어 올리면서 근육질 다리를 올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배롱나무 감상법도 제법 쏠쏠하다.










산신()·칠성()·독성()을 함께 봉안한 삼성각이다. 그런데 조금 전에 다녀온 산신을 모신 산신각이 있는데 이곳에 또 모시는가? 산신은 복도 많다.











붉은 목련이 꽃봉오리리를 탐스럽게 달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주차장 해우소 건물 위 중앙으로 산신각이 보인다.






수다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무을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