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여성 농사꾼 - 홈질 마녀 농원

2019. 3. 27. 14:30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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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담박에 이 건물을 알아봤다. EBS에서 방영한 '한국기행'에 나왔던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를 무대로 한 젊은 여성 농사꾼과 그 가족 이야기에 엉성한 기술로 이 작은 건물 지붕에 이엉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 이엉이 바람에 엉망으로 된 것을 보니 확신이 선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3월 21일 고향을 찾아가는 길에 이 근처 도로를 지나면서 갑자기 이곳이 궁금했다. 그래서 여성 농사꾼이 부모와 같이 인근 수다사를 방문하는 장면을 천천히 상기하고 대충 무을저수지가 얼핏 보였던 장면을 역으로 더듬어서 '수다사'가는 길로 올라온 것이다. 그녀의 집은 바로 길옆에 울타리도 없이 붙어있었다.






하늘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꽃샘추위에 주인장은 밭으로 일을 하러 갔는지 사람의 기척은 없고 작은 개와 어린 강아지들이 버선발로 길손을 맞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렇게 친근하고 살갑게 구는 강아지들을 보니 이 집 주인장의 열린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인의 허락 없이 마구 사진을 찍어대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양해를 구하기로 하고~







'홈질'이라는 작은 간판을 보고, 그 뜻을 알 수가 없어서 나름대로 해석해본다. 삽(臿)으로 땅을 파는 '삽질', 또는 왜구의 노략질과 같이 어떤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무엇인지 잘 판단은 되지 않지만, 집에서 어떤 짓을 하는 'Home 질' 인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중에 '홈질'이란 것은 옷감 두 장을 포개어 바늘땀을 위아래로 드문드문 하는 바느질이란 것을 알고는 쓴 웃음을 짓는다.






'홈질 마녀농원'이라는 작은 팻말 위로 작은 마녀 인형이 보이는데 참 희한한 생각이 든다. 좋은 것 다 어디 두고, 왜 하필 마녀인가?






왼쪽으로는 무을 저수지가 있고, 오른쪽 고개를 넘어가면 상주시 공성면이 나온다.






집 앞에서 아래를 보니 넓은 들판이 시원스럽고, 풍성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주인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가 오늘 3월 27일 고향 후배의 모친상이 있어서 문상을 하고 잠시 연로한 어머님을 뵙고, 다시 무을로 넘어 오다가 불현듯 '수다사'라는 절과 이 집이 생각나서 급하게 핸들을 돌려 다시 올라왔는데






집 입구에서 건물 안을 보니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사람이 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길손의 인기척에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내가 이미 짐작한 대로 아주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고, 뭐든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으로 보였다. 그녀를 마주하니 EBS '한국 기행'에서도 난데없이 귀농하여 농사를 짓겠다고 부산을 떨고 천방지축인 방그치(일머리를 잘 모르는 사람의 경상도 방언)딸을 걱정 반, 기대 반,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 보시는 늙은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오버랩된다. 그는 바느질하는 마녀, 농사짓는 마녀, 농부 이옥선 씨였다.







그녀가 내미는 명함을 보니 길손이 평소 받아보는 여느 명함과는 많이 다르게 격식 없이 농원 대표도 아니고 농부라고 자신의 직업을 자신 있게 표현했다.






그녀의 작업실 풍경이다. 조금 어수한 점도 있지만, 일반 시골풍경하고는 약간 다른 느낌이 온다.








그녀를 닮은 색깔도 곱고, 맛도 깊이가 있는 모과차를 내왔다. 그녀는 참 심성이 아름다운 사람인 것 같았다. 치매가 있는 시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려고, 자신의 편안함을 버리고 친정 동네로 아름다운 귀농을 한 젊디젊은 아낙이었다. 참 편안한 만남이었다.






그녀가 입은 앞치마에 쓰인 글귀가 마음을 울려서 찍으려고 하니 보기보다 쑥스러워한다. '그러던가 말던가' 이 글귀는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았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가는 삶! 남이 방그치라고 놀리던가 말던가~ 편안한 삶을 희생하고 고행의 길로 들어선 자신을 향한 주변 사람의 우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에 휘둘리지 않고 그러던가 말던가~ 길손도 이 글귀를 늘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길손에게 큰 울림을 준 글귀였다.






허리 옆으로는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라는 글귀도 보인다. 그렇다. 이 어려운 고통도 또한 지나가리니 아픈 시어머니를 모시는 그 어려움도 또한 지나갈 것이다.







'사랑이 있는 고행이 행복이었네',  '뽐내려고 하지도 서두러지도 않는다', '고개 숙일 줄은 알지만, 부러지진 않는다.', '세상에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춘풍추상'이라는 글로 늘 자신을 절차탁마(切磨)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참 모습을 느낀다. 부디 그녀에게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삶이 지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