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에피소드(3)

2011. 6. 3. 22:54지난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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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감이 있지만 드디어 훈련소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미 입대 동기들은 1주일차 교육을

받고 있는 동기들도 있었는데 하사 차출문제로 지연이 되었던 것입니다.

28연대입니다. 30연대가 제일 빡세다고 소문이 나서 30연대 안 걸린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28연대는 30연대와 더불어 훈련소 정문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하고 있더군요!

모르시는 분들은 정문에서 먼 것이 뭐가 문제냐? 라고 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제식훈련을

제외한 박박기는 대부분의 훈련은 훈련소에서 근 10여리 떨어진 야산 각개훈련장에서

있었습니다.

 

소위 훈련을 위해 부대 밖으로 출장을 가는 것이지요 직장에서 출장이면 재미라도 있을터인데

군대의 학과출장!!!! 참 뭐 거시기 합니다.

 

그 모습을 설명하자면 우선 조그만 개나리 봇짐을 만듭니다. 뭐 큰 것이 아니고 우천시를

대비하여

탄띠에 국방색 우비를 돌돌말아 엉덩이 위에 매답니다. 군화끈으로 탄띠에 매단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달리고 오리걸음을 하여도 달랑거리지 말고 탄띠에 꼭 붙어있어야 합니다.

고문관은 이것도 수평으로 제대로 못 매달고 삐딱하게 매달아서 주변 동기들을 웃깁니다.

판초우의라는 것인데 장교나 하사관은 제법 옷의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사병용은 급할 때는 땅바닥에 깔고 앉을 수가 있고, 여러개를 이어면 간이 천막도 만들고,

모자달린 구멍으로 머리를 집어넣어면 팔소매도 없는 이상한 우의가 되는 그런 것입니다.

 

* 판초우의

  - 천 중앙에 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머리를 내어 입는 옷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라틴 아메리카의

     인디오가 착용하던 직물의 이름에서 유리하였다고 전해지며,

  - 군장을 짊어진 채로 뒤집어 쓸 수있는 우비이다.

 

앞서 간 훈련소 선배들의 땀과 노고, 눈물이 깃들어 있는 빛바랜 전투복을 대충 물려입고,

고물 철모를 쓰고 엠원총을 소지한 다음 줄을 맞춰 논산훈련소가나 다른 군가를 부르면서

정문쪽으로 행진해갑니다. 정문 근처에 있는 연대보다 밥도 빨리 먹고, 준비도 더 빨리하기 때문에

아침마다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가 한참을 행진하는 그 순간에도 정문 입구 연대에서는 느긋하게 준비 중입니다. 훈련소

정문까지 근 15~20분이 족히 걸리는 거리인 것 같았습니다. 군대에서는 1분을 남보다 많이

쉬는 것이 어디입니까? 고된 훈련 뒤의 달콤한 휴식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훈련을 마치고 물 적신 솜처럼 축 쳐지고 지친 몸으로 들어올 때도 정문 옆에 있는 연대는 바로 쏘~옥 들어가는데, 젠장 우리는 정문부터 다시 군가를 부르면서 20분 정도를 더 행군해야 되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때는 정문 옆에 있었던 연대가 무척 부러웠답니다.

 

학과 출장을 다니던 비포장길 거친 자갈길 양쪽으로 하염없이 걸어갑니다. 목적지는 붉은 황토

투성이의 야트막한 야산들로 이루어진 각개전투장이었습니다. 가뭄에 길이 반질반질 광이

났습니다.

 

가는 도중에 논산훈련소를 거친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눈물고개" "아리랑 고개" 가 있지요

그곳을 고이 지나간 적이 몇번이 있었나?  도무지 기억이 없습니다.

온갖 트집을 잡은 조교의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모두 소총 거꾸로 들고 오리걸음 실시!!!!!" 하면 합창으로 "오리걸음 실시!!!" 하며 복창합니다.

반질반질 광이난 오르막 길을 통일화를 질질끌며 앞 전우의 힙을 보면서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고갯마루에 도착합니다.

 

하필이면 내가  입대했던 해 5월달에는 50년 만의 가뭄이다 해서 각개전투 훈련장에서도 마음껏

물도 먹지 못하고, 물배급을 했습니다. 비도 오지 않는 더운날씨에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땅바닥을 낮은포복, 높은포복으로 헤매다 보면 땀이 비오듯이 흐르고, 갈증이 심해집니다.

 

물을 마시는 것도 내 마음대로 마실 수가 없습니다. 휴식시간에 물마실 사람들을 집합시켜놓고

조교는 물 한바가지를 들고 소금 한웅큼을 내밉니다. 소금을 입에 털어넣지 않으면 물을 주지

않습니다. 그 짠 소금을 입에 넣고, 뜨뜻 미지근한 물을 받아마시면 물을 마신건지 소금물을

마신건지 분간이 안갑니다. 일사병을 방지하고자 궁여지책으로 소금을 먹인 것이지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떡을 먹은 일입니다. 지금처럼 수세식화장실도 아니고

야외에 대충 양철판이나 나무판자로 가린 엉성한 재래식 화장실입니다.

야외훈련장을 가면 꼭 떡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교관이나 조교 모르게 훈련병에게 접근하여

배가 고픈 훈련병을 상대로 떡을 파는 것입니다.

 

더운 날씨에 떡이 변질될 수가 있어서 교관들은 떡을 사먹는 병사를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기합을

주곤 있으나 배고픈 병사와 돈을 벌려는 아주머니들의 돌격정신에는 가끔씩 철통경계망도 무너집니다.

 

그날 모처럼 떡을 사서 막 먹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조교의 핏대 선 고함소리가 들려옵니다.

"떡 산놈들 그대로 가만히 있어!! 도망가면 죽인다아~~"  이때는 무조건 튀는 것이 사는 길이지요. 떡을 들고 화장실에 급히 들어갔습니다. 밑은 보지 않아도 잘 압니다. 구더기가 바글바글

들끓고 있겠지요. 더운 날 냄새는 또 얼마나 고약한지~

화장실 천정을 바라보면서 어렵게 구한 떡을 다 먹었습니다.

 

 

 

장교인지 하사관인지 병사들의 군장꾸리는 것을 점검합니다. 어깨에 다이아몬드가 없는 것을 보니 하사관입니다. 시계를 보는 것으로보아 군장꾸리는 시간을 재는 것 같습니다. 왼쪽병사는 배낭에

물품을 모두 넣고 마지막으로 모포를 돌돌말아서 배낭에 묶는 작업을 하고 있고, 중간병사가

제일 늦네요 그는 모포를 말고, 세번 째 병사는 거의 마무리를 하였네요.

 

오른쪽 병사들은 군장꾸리는 점검을 마치고 도열하고 있는데 맨 앞쪽에 서있는 병사는 고참티가

나는 군요 제일 오른쪽 앞의 병사는 바지가 헐렁하고, 바지의 고무끈이 밑으로 축 쳐진 것으로 보아 아마 졸병인 것 같군요^^ 

 

고참은 탄띠나 수통피를 좋은 것으로 하는데 졸병은 수동피가 허옇게 물이 바랜 것으로 고참이

낡아서 보기 싫은 것을 졸병에게 건네고 졸병의 좋은 것을 제 것처럼 차지하는  양심불량 고참들이 당시에는 비일비재 했답니다.

 

졸병이 입고 있는 바지 색이 윗옷과 약간 다른 것으로 보아 아마도 빨리 닳아 헤어진 하의를 버리고 새 군복으로 갈아 입었나 봅니다. 그들이 신은  통일화가 눈에 띕니다. 당시는 군화 1착,

통일화 1착이 지급되었는데, 가죽 군화는 휴가나 외출 때 신기위해 관물대에 모셔놓고,

일상생활은 통일화를 신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1년 쯤 생활하니 군화 2착으로 모두 지급이

되었답니다.

 

내 주특기가 이사종계(2종과 4종 취급병사)라고 하는데 일명 "걸레"로 통용이 되었지요

병사들이 입는 옷, 철모, 야삽, 치약 같은 것을 지급하기도 하고, 상급부대에서 타오기도 하고,

덕분에 다른 병사들보다 바깥구경은 많이 하였습니다.

 

[사진출처 :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pn=10&num=147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