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척(銀尺) 동학교당(東學敎堂)

2019. 5. 18. 15:30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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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척(銀尺)을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다. 상주에서도 가장 오지로 알고 있었던 곳, 이미 젊은 나이로 오래전에 유명을 달리한 운수업을 하던 선친이 언젠가 야간에 은척을 다녀올 일이 있다면서 동행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마 그 약속이 없어졌거나 아니면 낮에 다녀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기억으로는 은척을 가기 위해서는 재를 넘어야 했는데 비포장도로에다가 낡은 코로나 택시가 그곳을 지나려면 시속 20km가 겨우 나왔을 것인데 그 정도면 강도가 도로에 매복해 있다가 달려들 수도 있고, 늑대도 가끔 출몰하던 때라서 행여나 재를 올라가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속절없이 큰 어려움을 당해야 했기에 어린 나에게 동행하자고 했을 것이다.

 

은척(銀尺)은 은(銀)으로 만든 자(尺)로 해석이 된다. 은척면 남곡리 산 130-1 에는 나지막한 은자산(銀尺山)이 있는데 은자(銀尺) 가 묻혔다는 전설이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경계지역으로 구전설화에슨 '옛날 신라에는 금(金)으로 만든 금자(金尺)와 은으로 만든 은자(銀尺)가 있었는데 이들 자(拓)는 사람의 목숨을 연장하는 것이기에 사람의 숫자가 계속 불어나 식량이 부족하고 하늘의 기운에도 거스르게 되자 임금도 걱정하여 이 금자와 은자를 영원히 감추고자 하였다. 그래서 분실할 염려가 없는 곳을 찾다가 '금자'는 경주의 금척(경주시 건천읍 금척리)에 묻었고, '은자'는 상주 은척면 남곡리의 신속에 활인척(活人척, 銀尺)을 묻어 오늘의 은척면과 은자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경주의 금척은 사적 제43호로 지정되어 있고, 상주의 은척에도 안내 설명문이 서 있는데 문헌설화로서 '금척원의 유래' 또는 '몽금척'으로도 불리고, 구전설화로는 '꿈 잘 꾸어 임금의 사위가 된 머슴'과 '양국 부마가 된 머슴', 그리고 '금대야 은대야' 등의 이름으로 전해온다.

 

그런 연유로 경주시의 건천읍과 상주시 은척면이 '자매결연협약식(2015. 6. 24)을 맺고 두 지역의 지명유래를 기반으로 스토리를 연계한 마을 단위 문화교류를 시작하였다. 또한 상주의 은척면에서는 시 단위의 큰 행사에 은자에 대한 가장행렬과 은자를 소개하기도 한다.(출처 : 상주 문화재 은척면 紙)

 

 

 

 

드디어 그간 보고싶었던 동학교당 앞에 섰다. 이곳은 동학의 남접주(南接主, 동학의 교단 조직인 接의 책임자)인 김주희 선생이 교세 확장을 위해 1924년에 상주시 은척면 우기 1길 64에 건립한 곳으로 1925년 이곳을 본거지로 상주, 문경,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일제의 눈을 피해 교세 부응을 도모하였던 곳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동학과 관련된 건물과 유물을 보존하고 있다. 남접주 김주희 선생이 이곳 은척면을 택한 것은 아마도 지역이 험준한 분지형태의 지역으로 적의 공격을 피하기 쉽고, 몸을 숨기기에 용이한 점을 전략적으로 택한 것이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주 은척 동학교당의 유래는 2대 교주 최시형을 이은 3대 교주 손병희가 천도교를 창시하여 순수교단을 표방하고 이념에서 벗어나자 공주에서 활동하던 김주희(金周熙) 선생(1860∼1944)이 탄압을 피하여 보은으로 숨어들어 처음에는 경천교라고도 하였으나 1915년에 동학의 정신을 계승하여 동학교라고 하였다. 동학교는 일제의 문화정책에 따라 보수적인 종교로 인정받아 1922년에는 조선총독부의 공인을 얻어 1924년에 현재의 동학교당을 창건하고, 동학 경전, 가사 등 대대적인 간행사업으로 이념 위주의 교세 확장을 꾀하였다. 그 후 1936년 일제에 의하여 공인 취소되었으며, 일제의 탄압을 지속해서 받았다.

 

 

 

 

 

 

 

 

 

 

 

東學敎堂의 대문을 들어서면 이런 작은 담장이 정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는데 이것이 침입자의 동선을 억제하는 것인지 아니면 겸손하게 돌아서 경건한 마음으로 안채로 들어가라는 뜻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런 생각 없이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이 동학 교당의 안채에는 남접주 김주희 선생의 손자인 김정선 선생이 살고 있다.

 

 

 

 

 

 

 

 

동학교당의 가장 안쪽에는 동학교장 유물전시관이 있다.

 

 

 

 

 

 

 

 

 

 

 

당시 동학교도들이 행사를 할 때 입었던 옷이다.

 

 

 

 

 

남접주 김주희 선생의 모습

 

 

 

 

 

 

이곳에도 옥에 티가 발견된다. 세 번 째 줄에 '활약하였며'가 아니라 '활약하였며'로 바꾸면 좋겠는데 어린 학생들이 배울라!!

 

 

 

 

 

 

 

 

김주희 선생이 타던 가마와 남긴 유물로 짐작한다.

 

 

 

 

 

 

 

 

 

동학의 계보도

 

 

 

이분이 이곳에 거주하며 동학교당을 관리하는 남접주 김주희 선생의 손자인 김정선 선생이다. 포즈를 부탁했더니 수줍게 카메라를 바라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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