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검지(공갈못)

2019. 5. 18. 14:00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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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검지 앞부분은 연못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그 뒤편으로는 습지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삼한 시대에 사람의 힘으로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공검지(恭儉池)는 그 명성을 믿고 왔다가는 작은 연못 정도로 변한 현재의 저수지를 보고는 큰 실망을 할 수가 있다. 마치 누구에게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으나 공검지 역사관에 들어가서 수문을 지탱했던 오래된 나무를 보면 그 규모가 실감이 난다.






'공갈 못 옛터'라는 표지석이 있는 뒤로 야트막한 두 산이 서로 머리를 맞댄 형상인데 저곳이 전쟁터였다면 적을 방어하는 요충지였을 것이고, 저수지를 만들었다면 최소한의 노력과 흙으로 제방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었다고 볼 수가 있겠다. 못 둑의 반대편은 산으로 이루어진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정교하게 깎은 홈통이 인상적이다. 마치 수십 년 전에 만든 목재처럼 보이는데 안내문에서는 공검지 출토 목부재는 총 14점이고 수종(樹種)은 소나무(적송류) 10점, 밤나무 속 3점, 졸참나무류 1점으로 수종이 비교적 다양하며, 평균 수령은 88.2년이고,(다른 9점은 평균 수령이 64~137년) 미국 Beta 사에서 측정한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조사 결과 6번 부재는 서기 655~695년이고, 14번 부재는 서기 1,030~1160년 목재라고 하니 중간 중간에 공검지 수문을 수리했는 것 같다.








지금은 공검지의 위용이 비록 사라졌으나 목부재의 존재가 그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서 다행이다. 이렇게 큰 공검지가 있었다는 것은 그 물을 관개용수로 사용한 큰 들판이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상주의 1년 쌀 생산량이 강원도 전체의 쌀 생산량보다 많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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