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3. 10:33ㆍ살아가는 이야기
사무실 출근길 좁은 골목 담장 밑에 여성 샌들 한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온다. 길손은 읍내에 있는 중학교를 40여리의 험한 산길을 따라 자전거로 통학하였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린 나이에 서너 번 겪었던 일을 잊지 못한다.
길손이 통학하던 길에는 아주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안개가 끼거나 어스름한 저녁 길 홀로 갈 때는 머리끝이 솟고, 뺨에는 경련이 일어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다녔다. 당시에는 간혹 늑대도 출몰한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던 때여서 그 복잡한 감정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일행도 없이 홀로 그 저수지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저수지 쪽의 길옆에 흰 여자 코고무신과 양산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어린 길손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데는 채 8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집으로 하교하는 길에 보니 그 고무신과 양산이 있던 자리에는 가마니로 덮여져 있는 이름 모를 시신이 놓여있었다. 여자는 어떤 기구한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에서 저수지에 몸을 던저 자살하였던 것이다.
이곳 골목에는 저수지도 없고, 만약 어떤 불상사가 났다면 즉각 경찰이 반응했을 것이고, 그러면 이 신발은 증거물로 경찰서에 있었을 것인데
궁금한 마음에 허리를 구부리고 신발을 보았으나 지난 목요일에는 보이지 않았던 신발이었으니 며칠 되지도 않았겠지만, 신발에는 먼지가 제법 있다. 그래도 신발은 아직 새 신발이다. 사랑 땜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신발을 벗어버린 주인은 어떤 사연이 있었나? 시골에서 상경하여 택시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던 어느 시골 할머니가 택시를 타면서 정성껏 곱게 씻어 말려서 신고 왔던 흰 고무신을 얌전히 도로에 벗어놓고, 택시를 탔다는 목격담을 들은 적도 있었는데 이곳에서 정말로 신발을 벗고 승용차에 올랐던가?
제발 이 신발 주인에게 어떤 변고가 없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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