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여행 - 용정(龍井) 시내와 용정지명기원지 우물

2019. 6. 20. 09:52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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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로 '얼다오바이허' 이도백하()는 중국 지린성 옌벤조선족자치주 안투현에 있는 백두산 관광의 기점이 되는 곳으로 우리는 '천정호텔'에 이틀 묵었다. 신축 호텔이라서 그런지 밖에 간판이 없다.






가이드의 전언에 의하면, 이 이도백하에 고속전철이 올 예정이라고 해서 한가한 시골 동네에 갑자기 부동산 건축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문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게 어두침침하면서 칙칙하게 생긴 건물들이 특유의 중국답게 내실은 어떤지 몰라도 엄청나게 크고 숫자가 많은 인해전술 작전으로 건설되고 있었다.






금강대협곡을 떠나서 용정(龍井)으로 가는 길 주변으로 보이는 화룡(?)이라는 곳을 지나는데 길손이 굳이 이곳의 희미한 사진을 올리는 것은 그곳의 토착민들이 상당히 와일드한 기질이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어디든지 텃세가 유달리 강하고, 자기 동네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폭행도 하면서 위력을 과시했던 1960~70년대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같은 마을에 살아도 각자의 집안에는 각자 다른 가풍이 있듯이 지역색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같은 면(面) 단위에 살아도 작은 마을마다 특색이 있고, 민심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특정 지역에 대해서 대다수 국민들이 부정 평가를 내리고 기피하는 것은 특정 지역에서 배양되고 자라난 어떤 문화가 다른 지역의 문화와 상충하든지 아니면 조화롭게 공존할 수가 없어서 그런 현상이 발생하였다고 보는데~ 그런 특정 지역 사람들은 같은 문화이기 때문에 남들이 왜 기피하는가를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진다. 용정과 화룡이라는 곳이 그다지 먼거리는 아니겠지만, 그 지역에 사는 조선족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 지역의 문화와 이 지역의 문화가 서로 상충하고 있다고 알면 될 것이다.










가로수 밑동에 흰색 페인트칠을 한 것이 보인다. 이것은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한 약품과 야광 물질을 섞어서 만든 페인트를 발랐는데 밤에는 차량 운전자에게 도로 길잡이 역할도 한단다.












백두산 분화로 멸망했다고 일컬어지는 '발해'의 도읍지를 지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이곳은 우리 민족이 터전을 일구었던 우리의 영토가 아니었든가?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흔적을 급속도로 지우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메마른 땅과 거친 바람과, 그리고 매서운 날씨가 연상되는 그 험하고 모진 이름하여 '북간도' 그 북간도가 길손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뒤로 멀어지고, 또 나타났다가 뒤로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지평선 멀리 보이는 산맥 뒤로는 두만강이 있고, 그것을 건너면 함경도 땅이라고 하는데 그 함경도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 전에는 두만강을 건너서 이곳 만주벌판에 채소를 심고, 곡식을 심으면서 왕래하다가 해방되고 중국 모택동 정부가 들어면서 오도 가도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이곳에 정착하고 말았다고 하는데 참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일송정'이 있다는 작은 봉우리는 내리는 빗물 때문에 차창 너머로 그 형상만 희미하게 실루엣으로 보인다.








용정(龍井) 시가지의 모습이다. 비교적 깨끗한 모습이었는데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서도 연길은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활기가 찬데 이곳 용정은 부동산값도 오르지 않고, 젊은이들이 자꾸 밖으로 나가서 발전할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조선에서 북간도로 넘어온 우리의 선조들이 이곳에 터전을 일구면서 가장 먼저 해결하여야 할 것이 식수(食水)였다고 보는데 그때 판 우물의 이름이 용정이었고, 그 우물 이름이 이곳 지역명이 되었다.


'룡정지명기원지 우물' 비문에는


'이 우물은 1879년부터 1880년 간에 조선 이민 장일석, 박인연이 발견하였다. 이민들은 우물가에다 <용드레>를 세웠는데 룡정 지명은 여기서부터 나왔다. 1934년 룡정촌의 주민 리기섭이 발기하여 우물을 수선하고, 약 2m 높이의 비석 하나를 세웠는데 그 비문을 <룡정지명기원지 우물>이라고 새겼다. 1986년 룡정현 인민정부에서는 <문화대혁명>에 의해 파괴되었던 이 우물을 다시 파고, 비석을 세웠다.'






'룡두레 우물'의 모습이다.









룡정 공원에는 세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한 화강암 자연석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니


'이 공원은 1996년 9월 21일 룡정시와 거제시 우호 교류 협정을 체결하고, 그 뜻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조상도 시장이 주관하여 거제시 대우중공업 조선 해양부문 임직원 일동이 조성하였음 룡정시 인민 정부, 거제시' 이렇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