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 17:30ㆍ살아가는 이야기
수성구 성동 산 22번지 고산서당(孤山書堂) 뒤편에서 어떤 공사가 시작되었다. 지도를 검색하니 '고산서원 묘우'라고 되어 있다.
일요신문에 '고산서원 묘우복원 상량식…오는 5월 준공' 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났는데 묘우(廟宇)는 신주(神主)나 신위(神位)를 모시는 사당(祠堂)을 말한다.
저 묘우가 복원되는 터는 내가 2017년 2월 21일 포스팅한 사진과 내용은 이렇다.
이 유허비는 고산 서당 뒤편의 언덕에 옛 서원터에 이황, 정경세 두 분의 신위(神位)를 모신 집인 묘우(廟宇) 자리에 세웠으며, 고산의 선비들이 성금을 모아 서원을 건립하여 300여 년 보존해 오다가 1868년(고종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자 향유들이 퇴계 선생과 우복 선생에 대한 추모의 정을 금할 수 없어서 묘우 옆에 유허비를 세웠다고 하는데 비문(碑文)은 현령 이헌소(李憲昭)가 지었다고 한다.
[일요서울 l 대구 김을규 기자] 대구 수성구(구청장 김대권)는 지난 24일 고산서당 유림회, 시공사, 구청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산서원 묘우(사당)복원 상량식을 개최했다.
상량식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고 지신(地神)과 택신(宅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축원문이 적힌 상량문을 봉안하는 의식이다.
이번 고산서원 정비‧복원공사 사업은 4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사당을 비롯해 삼문, 담장, 석축 등을 복원하는 공사다. 지난해 1월 대구시 문화재위원회 조건부 승인을 받아 2019년 9월에 착공했으며, 오는 5월 준공할 예정이다.
김을규 기자 ek8386@ilyoseoul.co.kr
묘우 복원할 터에 있던 유허비는 이렇게 잠시 옆으로 옮겨 심어(?)졌다. 식목일이 다가오니 이 비석도 뿌리가 상할까봐 그랬는가? 아마 안전과 비석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자 눕히지 않고 저렇게라도 세운 것 같다.
碑文에는 '퇴도이선생우복정선생강학유허비(退陶李先生愚伏鄭先生講學遺墟碑'라고 되어있는데 퇴계 이황과 우복 정경세 선생이 이곳에 와서 강학한 기념으로 세운 것으로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호는 퇴계(退溪)인데 여기서는 퇴도(退陶)라는 호를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서당 뒤에는 퇴계가 심었다는 이황 나무와 우복이 심었다는 정경세 나무가 아직도 살아있다.
고산서당과 묘우를 들렀다가 산으로 난 길을 따라 아카시아 나무로 이미 묵은 밭이 된 어떤 사유지를 지나다가 큰 낭패를 볼 뻔하였다.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작은 오솔길이 있었는데 그곳을 무심코 지나다가 어떤 남자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큰 소리로 항의한다. 왜 허락없이 사유지를 가로질러 가느냐는 것이다. 길손이 보기엔 아무 것도 경작하지 않고, 10~20년 생으로 보이는 아카시아 나무가 가득한데 참 어의가 없다. 산에 임산물을 도적질했다나 어쩠다나 하는데 그 사람도 참 딱하다. 길손이 맨손으로 지나는데 무슨 임산물을 팬티 속에다가 숨기겠는가? 세상이 어지러우니 별것에 신경이 곤두섰다. 나오면서 팻말을 보니 "출입금지 도취죄(盜取罪)로 형사 고발함"
도취죄(盜取罪)라는 고상한 법률용어까지 구사한 것을 보면, 아마도 가까운 고산서당에서 퇴계와 우복 선생에게 강의를 받은 듯하다.
고상한 안내판을 뒤로하고 내려오는데 더 황당한 시츄에이션과 만난다. 이곳이 전쟁턴가? 하기야 이곳은 옛날 전쟁터가 맞다. 토성(土城)이 축조되어 있고, 옛 유물이 발견된 곳이니 그렇다.
어떤 외국인 용사(勇士)가 금속탐지기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누가 보물이라도 이곳에 숨겼나? 그 정보를 CIA를 통해서 알아냈나? 자신은 비즈니스를 한단다.
모산지 못 둑에 서서 그 외국인 용사가 비즈니스를 하던 곳을 봤다. 그가 찾는 것이 무엇일까? 보물일까? 지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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