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 본 고산서당(孤山書堂)

2020. 4. 26. 17:30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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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 이곳 고산서원에 신주(神主)와 신위(神位)를 모시는 묘우(廟宇) 공사장에 들렀을 때는 상량식만 하고, 기와는 물론 벽체나 담장 공사를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제법 건물 모습이 나타난다. 






와공(瓦工)이 일요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담장 위에 기와를 얹는 작업을 하고 있다. 축대는 전형적인 조선식 축대 형식인데 사실상 일본식 축성법이 길손이 보기에는 더 과학적이고, 견고하다고 생각한다.










퇴계 이황과 우복 정경세 선생이 이곳에 와서 강학한 기념으로 세운 것으로 알려진 '퇴도이선생우복정선생강학유허비(退陶李先生愚伏鄭先生講學遺墟碑'가 어디에 세웠는지 궁금하였는데 담장 안 오른쪽에 저렇게 서 있다. 비석 위치가 앞이 아니라 구석진 자리에 있어서 뜻밖이었다.












옛 선비들이 강학을 듣다가 짬이 있을 때 올랐을 묘우 뒤편에서 고산서당 쪽을 보니 흰 도포를 입은 선비들의 모습과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희미하지만, 이렇게 산길이 나 있다. 물론 고라니도 다니는 길이다.








왜 오솔길을 장황하게 올리느냐? 선비들이 올랐을 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니 이렇게 마치 가랑이를 벌리고 물구나무를 선 듯한 나무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야만 하는 산(山)길이다. 좌우로 희미하지만 밭의 경계를 나타내는 탱자나무가 있다.







4월 1일 그날도 길손은 집이 있는 서쪽으로 산길을 따라 진행했을 뿐이고, 이렇게 온통 가시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들어와서






무심코 이 길을 지나다가 이곳이 사유지라고 주장하는 어떤 남자에게 봉변을 당했다. 왜 남의 사유지를 가로질러 가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임산물을 채취한다는 취지로 횡설수설한다. 기가 찬다. 면도칼 한 개도 없거니와 가진 것은 달랑 바지 주머니밖에 없는데 그리고 주변을 둘러봐도 무슨 임산물이 있다고? 지천으로 난 풀이 임산물이냐?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도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오늘 그 길을 다시 따라온 것이다.







그 알량한 임산물 타령을 한다면, 아무런 채취 도구도 없고, 운반할 어떤 바구니도 없는 나를 '도취죄(盜取罪)'로 고발하기 前에, 이곳에 무시로 드나드는 고라니들에게 사유지를 허락없이 다닌다고 야단을 치고, 앞으로 이곳을 다니려면 자신에게 허락 받으라고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나? 내가 그동안 볼 때는 고라니가 허락받고 다니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곳은 고라니가 다니는 통로






이곳은 사람이 다니는 통로











이제 그 잘 난 사유지 끝 부분에 도착했다. 거꾸로 간다면 이곳이 입구리라!






이곳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왼쪽 길로 들어섰다간, 이름도 생소한 형법상의 도취죄(盜取罪)로 고발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기 바란다.





길손이 이곳에 올 때마다 이곳에 사는 고라니들과 조우하는데 그들이 길손을 기다리는지 길손이 그들을 만나려고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길손이 지나온 길을 따라 고라니가 올라간다. "고라니야! 네가 지금 향하는 그곳이 "출입금지" 푯말이 있는 곳이란다. 함부로 들어가지 말고, 사유지 주인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취죄로 고발되어 수성경찰서 유치장에서 콩밥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뭐라고?? 산에서 맛도 없는 풀만 먹어서 허기가 지니 맛있는 콩밥이 먹고 싶다고? 그래 너 좋은 대로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