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쟁이 두꺼비에게 연민을 갖고

2020. 5. 19. 18:00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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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人間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그것은 복합적으로 종교와 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행태에도 환멸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게 알파요 오메가다. 절간을 드나드는 사람을 보니 새끼 두꺼비의 안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을 현장에서 나는 느꼈다. 심지어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까지도~ 그저 행동이 없는 구호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또 새끼 두꺼비가 이동한다니 그냥 직업정신이 발동한다.









그래도 어떤 목적이든 새끼 두꺼비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니 다행이다. 아니 고맙기도 하지






구청에서 설치했는지 아니면, 사찰 측에서 설치했는지 두꺼비의 안위가 궁금했는지 소형 CCTV 카메라가 있다.






오늘 마침 많지는 않아도 비가 조금 내렸고, 구름도 끼어서 갓난쟁이들이 그것을 간파하고 산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번에 손으로 옮기는 것이 거북해서 오늘은 패트병을 잘라 저것으로 갓난쟁이들을 옮긴다.






새끼들의 크기가 천차만별이다. 제법 튼실한 놈이 있는가 하면, 열흘은 굶었는지 아주 작은놈도 있다. 






산에 인접한 풀밭으로 데리고 와서 놓아 주니 엄청 빠르게 풀숲으로 숨는다.






새끼손가락 오른쪽의 갓난쟁이 두꺼비가 얼마나 작은지 비교가 된다.







다시 옮기기 위해 담는데 사정을 모르는 두꺼비는 탈출하려고 안간힘이다.

































에필로그


한 때는 국내 최대의 두꺼비 산란지였던 망월지(望月池) '두꺼비 대이동'이라는 제목을 단 인터넷 매체나 언론을 보면, '수백 만 마리 새끼 두꺼비 대이동' 이런 엄청난(?) 제목을 달았다.


길손의 생각으로는 두꺼비를 담당하는 수성구청 공원녹지과(?)에서 보도자료를 낸 것 같은데 자신들의 성과를 거양하기 위함인지 현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습관으로 굳은 탁상공론에 매몰되어 30년 전의 두꺼비 숫자를 내세운 것 같아 정말 유감이고, 씁쓸하다.


내가 보기에는 채 수 천마리도 되지 않아 보인다. 왜 내가 갓난쟁이 새끼두꺼비에게 연민을 느끼는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주변 환경의 변화로 인해(사찰 건립 등) 알을 낳기 위해 망월저수지로 돌아오는 두꺼비 성체의 숫자가 눈에 띄게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놈의 두꺼비가 내 인생에 있어서 뭔 대수냐? 하는 시각으로 접근하니 두꺼비가 망월지에서 어떤 봉변을 당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當然之事!!


20여 년 전에는 이 저수지에 블루길과 배스가 없었다. 가뜩이나 알의 개체 수도 많지 않는데 블루길과 배스가 알부터 먹어 치우고, 그리고 부화하니 올챙이도 호시탐탐 노리면서 잡아먹어서 용케도 100 : 1의 행운으로 운 좋게 살아난 올챙이도 앞다리와 뒷다리가 생기고 꼬리도 없어지면서 이제 산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마지막 관문인 사찰 마당에서 무심코 지나가는 신도들과 두꺼비를 구경하려고 어린이를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들의 부주의로 온갖 난관을 뚫고 저수지에서 올라왔다가 비명횡사하는 갓난쟁이 두꺼비를 보노라니 온갖 허탈감과 연민의 감정이 치솟는다. 두꺼비에 대한 상식이 없다 보니 새끼 두꺼비가 어른 손톱만 하게 생각했나 보다. 세심하게 내려다보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새끼 두꺼비가 이렇게 부주의로 생을 마감한다.

특히 더 유감인 것은 살생을 절대로 금해야 할 도량에서 자신의 기도만 최선으로 생각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의 부주의한 발걸음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는 새끼 두꺼비가 안쓰럽다. 사찰 측에 두꺼비가 산에 올라갈 때까지 만이라도 두꺼비 이동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