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4. 21:05ㆍ살아가는 이야기
한 달 전에는 이곳은 그간 내린 봄비로 제법 물이 있어서 도롱뇽이 안심하고 알을 낳았는데 오늘 도롱뇽이 궁금하여 배수로를 살펴보니 아뿔싸 물이 거의 말라가고 있다. 바보 같은 도롱뇽 어미가 이런 사태를 미연에 알 수가 없었겠지만, 참 한심한 도롱뇽 아빠 엄마였다.
산 쪽의 그늘진 응달쪽 배수로 이끼 밑에 뭔가 매달려 있다. 모두 도롱뇽의 알이다.
이곳은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낫다. 물이 조금 있다. 그러나 이곳도 앞으로 열흘 이상 비가 제대로 오지 않으면 물이 마를 것이 틀림이 없다.
이 알은 최악의 상황이다.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도롱뇽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아서 가까운 주말농장에 가서 저 스티로폼 박스를 구했다.
처음에는 나무 두 개로 알을 들어 올리려고 했으나 잘 들리질 않는다. 가만히 보니 도롱뇽알의 끝부분이 이끼나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어져 있었다. 도롱뇽 어미가 알들이 물살에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어 놓은 것이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생명이 달린 문제라서 직접 손으로 들어 올리기로 했다.
일부 터져서 들어 올리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조했다. 이제는 이곳에서 300여 m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왼쪽 바위 뒤가 목적지다. 그곳에는 북방산개구리의 알과 도롱뇽알이 있다. 경칩이 되기 전에 얼음이 얼었을 때 개구리알이 있었는데 그들의 안부도 궁금하다.
위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이 없어서 아늑한 은신처의 물은 썩어 있고, 올챙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이 제법 큰물이 져도 안전한 곳으로 매년 이곳에서 북방산개구리와 도롱뇽이 연례행사로 알을 낳고, 부화하여 출가하는 곳이다.
이미 죽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는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
물속은 어떤 기척도 없다. 북방산개구리알은 몰살했나?
이 조그만 웅덩이에 들어오는 물길은 작년 여름 태풍 때문에 막혀버려서 길손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썩어서 산소 결핍으로 보이는 물이지만, 그곳으로 도롱뇽알을 모두 넣었다. 이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가야 한다.
도롱뇽알 주머니가 뒤집어지니 흰 알이 보이는데 이미 죽은 것인가?
물이 들어오지 않으니 물너미로 물도 넘지 않았고, 물은 탁도가 엄청나게 높아서 물속이 분간이 안 된다.
개울에서 스티로폼 박스로 물을 길어다가 붓기로 했다.
여덟 번 정도 물을 길어다가 넣으니 물이 넘기 시작한다.
물을 부어서 탁도가 낮아지니 물 위에 붙은 듯이 자란 버들가지 속으로 어렵게 카메라를 넣어서 안을 찍으니 희미하게 다른 도롱뇽의 알들이 보인다.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번잡스럽게 요란을 떤 보람이 있다. 이제 산소도 제법 공급이 되었으니 잘 부화가 될 것으로 본다.
이제 욱수골에도 어김없이 봄은 온 것 같다. 지저분한 하천을 깨끗하게 정비한 고산 1동 새마을회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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