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이를 무심히 지켜보는 어느 효행비

2021. 3. 23. 16:10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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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471-8에는 신원사를 향하는 차량이나 사람을 무심히 바라보는 비석이 한 개 서 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이 효행비의 가첨석은 오래된 원래의 것으로 보이고, 비신석비대석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비신의 앞면에는 '진주정공휘우현효행비'로 쓰여져 있다. 그러니까 본관이 진주(州)'정우현'이라는 분의 효행비다. 

 

 

 

 

 

길손의 한문 실력은 일천하다. 이 효행비의 주인공인 '정우현'효자의 후손을 주변에서 탐문하였더니 가까운 곳에 후손이 있기는 했으나 이 비석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는 없고, 단지 자신의 5대 선조라는 것만 알 수가 있었다. 이 비석을 다시 세운 것은 약 40년이 되었다고 하니 원래의 비석은 그럼 언제 세워졌을까?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공자 탄생 2479년 무진년(戊辰年) 3월이라고 되어 있다. 

 

공자가 탄생일은 기원전 551년 9월 21일이니 올해 2479년에서 거꾸로 551년을 빼니 1928년이 나온다. 그러니 무진년(3월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것이 경술국치 한일합방이 1910년에 되었으니 이미 조선은 없어졌는데 전국의 유생은 건재하였는가?

 

 

 

 

 

나라가 없어지면서 판서나 참판이란 직도 없어졌을 것인데 그래서 전(前) 판서라는 글자가 들어 있는가?

 

 

 

 

 

도유사(都有司)는 조선 시대 향교•서원의 우두머리로 지방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단군기원 년 4312년에 이 비를 다시 세운 것으로 본다면, 올해의 단군기원 년 4354년이니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1979년 2월에 마모된 비석을 새로운 비석으로 교체했다. 이런 유추가 된다. 

 

 

 

 

 

판서나 참판, 승지 같은 벼슬아치들이 정우현이라는 사람의 효행을 증명하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효심을 가졌는가? 아쉽게도 주변 진주 정씨의 후손들은 내용을 잘 몰라서 안타까웠다. 다만 본인의 부모뿐만이 아니라 주위 노인들에게도 진심으로 공경하였다고 한다.

 

 

 

 

 

논산군 상월면 상도리 정우현의 효행을 기리는 이 비석이 지나는 이들뿐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서도 잊히는 것을 알았다면 많은 유림이 이 효자를 기려 이 비석을 세운 의미가 있었을까? 참 아쉽고, 안타깝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공자께서 말씀하신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옛날에 배운 것을 복습하고, 거기다 새로운 것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구절을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