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매미의 순애보(殉愛譜)
2023. 8. 26. 12:31ㆍ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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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작별을 준비하는 처서가 지난 지 사흘째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말매미의 소리는 처절하게 들린다. 욱수 공영주차장을 들어가는 작은 교량 옆에 자생하는 버드나무 가지 위에서 말매미의 소리가 우렁차다. 소리가 들리는 나뭇가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암수가 교접하는 말매미 한 쌍이 붙어 있다. 처음 보는 장면에 한참을 봐도 전혀 기척이 없다. 말매미는 조그만 인기척에도 오줌을 싸면서 "째~에" 하고, 놀란 토끼처럼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나뭇가지를 흔들어 댄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다. 정말 강단이 있는 말매미로구나 하면서 또 봐도 처음 그대로의 자세로 앉아 있다.
왼쪽 말매미의 오른쪽 발들이 왼쪽 큰 말매미의 왼쪽 등 부분을 감싸고 있다. 마치 푸근하게 오른쪽으로 안고 있는 형상이다. 두 말매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렇게 여름을 마감하고, 같이 먼 초행의 길을 떠났다. 내가 알기로는 교미를 마친 말매미는 땅으로 내려와 땅에 알을 낳고, 땅에서 생을 자연스럽게 마감하는데 이 한 쌍은 애틋하게 산란도 하지 않고 그렇게 둘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다가 다른 매미의 삶을 따라 자신의 생을 마감한 감동적인 순애보(殉愛譜)다. 17년을 땅속에서 굼벵이로 지내고 땅에서 벗어나 나무 위에서 여름 한 철을 서로 사랑 노래를 부르며, 사랑하다가 장렬히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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