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4. 19:19ㆍ맛집과 요리
식당은 정말 오래간만에 포스팅한다. 바로 옆집 돼지고기 파는 집에 여러 번 가면서도 이 식당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에 간 날은 9월 2일이다. 한돈 고기를 사려고 왔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다. 아주 작은 식당인데 본능적으로 내공이 깊이 쌓였다는 느낌이 온다. 출입문에 서서 고개만 들이밀고,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런데 1936년부터 영업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천연기념물이 따로 없다.
이 식당의 주종은 씨래기 해장국집이 아니랄까 봐 바깥에 시래기와 배추 단이 놓여 있다. 요즘 배추 값이 비싸지 않은가?
할머니 사진과 함께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해장국이 3,000원이고, 짬뽕집도 아닌데 곱빼기가 있다. 소주 한 잔은 없고, 막걸리 1잔이 해장국의 반값이다. 사용하는 재료가 국산인데도 불구하고, 저 가격에 밥을 준다는 것이 신기하다 못해 천연기념물 급이란 생각이 든다.
사진 왼쪽이 1936년 영업을 처음 시작한 시어머니이고, 오른쪽 사진은 그 며느리다. 사진은 아마도 10년 전에 찍은 것 같다. 지금은 며느리와 그 딸이 운영하는데 딸의 나이도 50줄은 된 것 같았다. 딸은 식당하고 어울리지 않게 지적이고, 이쁘다. 그 딸의 사진은 없고, 내 카메라에 찍힐까 봐 극도로 주의를 한다. 문을 새벽 5시에 열고, 다음 날 새벽 2시에 닫으니, 격무가 따로 없다.
끓인 옥수수차를 통에 넣어 식히고 있다. 손님에게 낼 때는 시원하다. 이 옥수수차는 이 식당만의 차별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늘 내가 강조하듯이 맛은 아주 주관적이기에 섣불리 맛집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나의 입장이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분명히 이 식당은 맛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1936년부터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배고픈 이들에게 싼값에 배를 든든하게 해 준 이 씨래기 해장국은 맛집의 의미를 넘어서는 어떠한 것이 있다. 단순한 맛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식당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겠다.
개수대의 수도꼭지로 물이 계속 흘러서 걱정이 된 내가 물이 흐르는 것을 알렸더니 지하수를 이용한 냉방기를 돌리기 위한 용도여서 그렇게 흘려보낸다고 했다. 그렇다. 에어컨을 틀면 전기세가 많이 나올 테고, 그러면 저 값에 밥을 팔 수도 없을 것이다.
찬 지하수가 라디에이터로 흘러 들어가고, 팬이 돌면 시원한 바람이 작은 가게를 식혀준다.
처음 시작한 할머니의 며느리이자 지금 딸과 함께 이 식당을 운영하는 할머니를 잘 설득하여 사진으로 남긴다. 무례한 길손의 요청에 대략 난감한 표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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