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5. 22:11ㆍ살아가는 이야기
최근 몇 년 동안은 안내 산악회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단풍나무를 가로수로 심어놓은 팔공산을 가보기로 한다.
팔공산에 가기위해서 이 길을 거치는 것이 가까우므로 '고모령'을 넘어간다. 차가 잠시 없는 틈을 타서 찰칵하는데 우측에 대봉감이 보인다.
'고모령'에 있는 유일한 감나무 밭에도 감 풍년이 들었다. 올해 비가 많이와서 작황이 좋지 않다는데
이곳은 대봉감이 풍년이다.
주인 아주머니가 지나가는 길손을 상대로 감을 팔고 계신다.
돌 공원이자 '시인의 길' 을 보듬은 소나무 위로 멀리 단풍이 든 팔공산이 보인다.
좌측에는 시인의 길 입구가 있다.
이미 제법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다.
저번에 이곳을 소개한 포스팅을 올렸지만 그 당시 미쳐 올리지 못한 것을 다시 올리려고 한다.
한 뿌리에 사이좋게 서 있는 남근석 ㅋ~~
주인장 사시는 집 입구에 떡하니 않아서 직접 수확한 농작물을 팔고 계시는 아주머니 처음에
주인이라고 해서 인사를 드리려고 하니 다시 말을 바꾸신다. " 난 이집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
저번에 왔을 때는 빈 집으로 있었는데 오늘은 경비책임자 보다 앞에 나와있다. 배에 달린 거시기를 보니 새끼를 낳은 경험이 있는 모양인데 짐작컨대 밑에 있는 경비책임자와 그 누이의 어미로
추정된다. 이넘도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막상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고개를 살짝돌리네~
우이 c ~
이 돌 공원의 명실상부한 경비책임자인 이넘이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난리법석이다.!! 좌우지간
반갑다. 이 삭막한 세상에 조건없이 저렇게 사람을 반기니 때론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경비책임자가 갑자기 달려들면서 거시기를 내게 슬쩍 보여준다!! 오라!! 내가 이 정도로 건강하고 씩씩하니 돌 공원에 밤에 몰래와서 남근석을 슬쩍하려는 양상군자가 있다면 비록 키는 작지만 양상군자 불알은 확실하게 물겠다고 나에게 다짐하는 것 같다. ㅋㅋ~~ 그래!! 네가 허리 위로는 도저히
물 수가 없는 형편이니 네 방법대로 하거라~~
경비책임자 건너편 오른쪽에 있는 누이가 난리가 났다. 왜 빨리 나에게는 안 오느냐고 난리다.
백안삼거리를 끼고 있는 맛집인 초원의 집이 있다. 인근에서는 제법 소문이 난 고깃집인데 주로 소고기를 취급한다. 주인장이 돈을 벌어서 동화사 올라가는 길에 이렇게 별관도 한옥으로 번듯하게 지었다.
고깃집을 이렇게 운치있게 지어도 되나???!!!
동화사에서 내려오다가 야경을 찍었다. 이곳이 1호점이자 본점이다. 맛이 어떠냐고??
그냥 소고기 맛이다. 푸헐헐~~
대구지역에는 내세울 것이 별로 없지만 팔공산 순환도로 단풍 가로숫길은 칭찬할 만 하다.
동화사 매표소이다. 성인 2,500원 구경 값치고는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 사진이 인악대사 나무라고 한다.
워낙 수령이 오래되어 속이 텅 비었고, 나무둥치에는 세월을 느끼게 하는 이끼가 잔뜩 들러붙어
있다.
대웅전에서 삼배하는데 밖에서 "야옹~ 야옹" 한다. 이 미물도 몇 년이 지나면 표충사 토보살처럼
아침, 저녁 예불에 참여할 것인데.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이 부르면 도망가다가 내가 부르니
문옆에 와서 이렇게 앉아 있다.
대웅전에서 일어나는 어떤 기운을 느낀 듯하다. 속세와 내세를 넘나드는 그런 오묘한 기운을
느낀 것은 아닐까??!! 너도 다음 생에는 축생의 몸을 빌리지 말고,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거라!!
통일약사여래대불로 내려가는 길에 고즈넉한 개울과 낙엽진 산 기슭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기다린다.
일반적으로 사찰은 종합대학교 격인 총림 [叢林]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조계종에는 5대 총림이 있는데, 덕숭총림 예산 수덕사, 해인총림, 해인사, 영축총림 양산 통도사, 고불총림 백양사, 조계총림 송광사가 있는데,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는 총림이 아닌데도 선원(禪院)이 있다.
저 멀리 평화롭게 앉아 있는 선원이 보인다.
동화사 당간지주 안내문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당간지주, 당간은 없어졌다고 하네~
* 당간지주 [幢竿支柱]
당(幢 : 불화를 그린 旗)을 걸었던 장대, 즉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우는 기둥. 돌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나 철제·금동제·목제인 경우도 있다.
기본형식은 두 기둥을 60∼100㎝의 간격으로 양쪽에 세우고 그 안쪽 면에 상대하여 간(杆)을 설치하기 위한 간구(杆溝)나 간공(杆孔)을 마련하고, 아래에는 간대(竿臺)나 기단부를 시설하였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기단부의 구조가 거의 파손되고 교란되어 있는 상태이다.
당간지주를 간구 또는 간공의 위치 및 형태·외형·장식 등에 의하여 분류하여보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간구·간공의 위치나 형태에 따라 구분하면 원형 또는 방형의 간공이 세 군데 관통되어 있는 것, 윗부분에만 간구가 있는 것, 윗부분에는 간구가 있고 그 아래로 2개의 관통된 간공이 있는 것, 윗부분에 간구가 있고 그 아래로 방형의 작은 간공이 1개 또는 2개 있는 것 등이 있다.
둘째, 외형에 따라 분류하면 一자형, 기둥의 바깥면 중간에 한 단의 굴곡을 주어 상·하부로 나눈 것, 기둥 바깥면의 두 곳에 굴곡을 주어 허리가 잘룩하게 보이도록 한 것, 그 밖의 특수한 형태 등으로 나누어진다.
셋째, 기둥에 새겨진 장식에 따라 구분하면 바깥면 모서리에 모죽임만 있는 것, 선문(線文) 또는 돌대(突帶:돋을띠무늬)로 장식한 것, 선문이나 돌대로 장식하고 그중 꼭대기의 사분원(四分圓)에 한 단의 굴곡을 둔 것, 그 밖의 특수한 모양을 가진 것 등이다. 이러한 당간지주의 형태는 시대가 흐름에도 큰 변화가 없고, 다만 각 면에 장식된 무늬와 기둥의 돌다듬기 수법만이 시대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정도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당간지주들은 모두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이며, 그 이전에 조성된 예는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시대의 예로는 부석사당간지주(浮石寺幢竿支柱, 보물 제255호)와 숙수사지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를 비롯하여, 기단부까지 완전하게 남아 있는 금산사당간지주(金山寺幢竿支柱, 보물 제28호) 등으로, 각 부에서 세련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827년(선덕왕 10)이라는 제작연대를 밝힌 명문이 새겨져 있는 중초사지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 보물 제4호)는 다른 당간지주의 편년을 고찰할 수 있는 기준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와 같이 안쪽 면을 제외한 각 면에 종선문(縱線文)을 조식(彫飾)하고 주두(柱頭)도 원호(圓弧)를 이루었으며, 간대와 기단 등 각 부분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무늬가 형식화 또는 약화되어 정교하지 못하고 돌다듬기도 고르지 않아 둔중한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예로는 만복사지당간지주(萬福寺址幢竿支柱, 보물 제32호)·천흥사지당간지주(天興寺址幢竿支柱, 보물 제99호)·춘천근화동당간지주(春川槿花洞幢竿支柱, 보물 제76호)·홍천희망리당간지주(洪川希望里幢竿支柱, 보물 제80호)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처럼 거대한 규모의 당간이나 지주가 조성되지는 않았다. 법주사의 당간과 같은 경우도 원래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지주에 당간만을 근년에 다시 만들어 세운 것이다. 조선시대는 대개 작고 낮으며 선문 등의 조식이 없는 지주에 목조의 당간을 세웠는데, 그나마 지금은 당시 중창한 여러 사찰에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당을 세우기 위하여 사찰 앞에 설치되었던 건조물이면서, 한편으로는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당간지주는 선사시대의 ‘솟대’와도 일맥상통하며, 일본의 신궁(神宮)이나 신사(神社) 앞에 있는 ‘도리이(鳥居)’와도 특히 관련성이 많은 건조물이라 할 수 있다.
「統一新羅時代幢竿支柱와 石橋」(李浩官, 『考古美術』158·159, 1983)
「慶州地方 幢竿支柱의 硏究」(朴洪國 -東國大學校慶州캠퍼스國史學會, 『慶州史學』4, 1985)
「慶州を中心とせる新羅時代幢竿支柱論」(藤島亥治郎, 『史蹟名勝天然記念物』8·11, 1933)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커다란 자연석에 홈을 파고 비문을 새겨넣은 비석이다. 동화사를 여러 번 다녔지만 길옆에 있는
이 비석을 눈여겨본 적은 없다. 멀리서 보면 시멘트로 발라 폐쇄해 놓은 방공호 정도로 알았다.
자세히 보니 깨알같이 비문이 있는 비석이다.
마침 지나가는 스님에게 여쭤보니 팔공산 동화사의 내력을 알리는 '팔공산 동화사 적비"라는 것이다.
100년은 족히 되었다고 한다.
천장비석(天藏秘石), 직역을 한다면 '하늘의 비밀을 숨기는 돌' 쯤으로 해석이 되는데, 특이한 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돌기둥에 글씨를 쓴 비석(碑石 )이 아닌 것이다.
평소에는 그저 한 마리 귀찮은 미물일 뿐인데 대불 앞에서 경건히 앉아 있는 나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저 멀리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저렇게 한글 불교경전에 앞발을 얹고
5분 이상을 가만히 있다.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릴 만한데 굳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즉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 이 미물도 내세에는 좋은 몸으로 태어나기 위해 불교경전에
올라왔구나. 그래!! 다음 내세에는 꼭 좋은 몸으로 다시 태어나거라!!
이번에는 벗어놓은 상의 위로 베짱이 새끼가 올라왔다. 음~~ 좋은 징조로구나!! 커~~흠~~!! ^^
통일약사여래 대불에도 밤이 내리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간절한 소망을 담은 촛불만이
팔공산자락에서 대불과 함께 밤을 지새우고, 또 밝은 내일을 맞겠지~~
저마다 애뜻한 소원성취를 염원하는 저 촛불처럼, 모든이에게 밝고, 기쁘고, 좋은 날만 항상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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