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있는 세인트로렌스강을 항해하는 대형 풀컨테이너 선

2012. 4. 5. 22:54잡다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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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와 미국의 동쪽 국경을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강이다.

온타리오 호에서 시작하여 세인트로렌스 만으로 흘러들어가는데

강어귀는 큰 삼각주를 이루고, 길이는 1,225Km라고 한다.

 

강폭과 수심이 얼마이면 저런 대형 컨테이너선들이 다닐 수가 있는지

강물은 바닷물과 달리 부력도 낮은데~

세상이 넓다보니 경이로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캐나다 7 : 세인트로렌스 강 (내일신문 8월5일자)  

캐나다가 하나의 국가로 남게 된 것은 보편적 세계사에 비추어 보면, 퍽 우연한 일 처럼 보인다.

인구 3천3백만으로 1천만 평방키로의 영토를 차지한 것, 미국과의 국경을 49도 직선으로 정한 것,

하나의 통일국가이지만, 통일을 할 만 한 주체 세력이 없었다 점 등이다.

영국의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하여 8년간 극렬한 저항을 하여 미국은 독립을 획득하였다.

캐나다는 독립운동도 없었고, 전통을 지킬 왕국도, 시민의 저항도 없었다.

통일된 국가는 식민지 모국 영국의 도움과 미국의 방관으로 획득하였다.

미국 United States, 캐나다 Federated Provinces and Territories 이다. United는 합동, Federated 연방의 개념이다.

캐나다는 엘리자베스여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국이지만 형식뿐이고, 미국과 같이 모범적인 민주국가이다. 수상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영국의 왕당파와 식민지 독립파 간에 싸움이었다.

13개 주 독립파가 이겼다. 패전한 왕당파 가족과 군인은 북쪽 캐나다로 올라갔다.

영국정부는 미국에서 캐나다로 오는 이주민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200에커(22만평)의 땅을 주고 삶의 터전을 제공하였다.

땅은 넓고 인구는 부족했다. 원래 캐나다는 프랑스 식민지로 시작했다.

프랑스인 자크 카티어가 탐험을 했고, 1605년 프랑스인이 처음으로 지금의 노바스코샤 동부해안에 정착하여 뉴 프랑스(New France)를 건설했다.

프랑스 보다는 늦게 영국은 허스손 만에 무역거점을 두고 식민지를 개척했다.

영국인 식민지와 프랑스인 식민지 사이에는 삶의 터전을 두고 갈등이 높아갔다.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지배를 두고 7년 전쟁 또는 프랑스와 인디언 전쟁(1754-1763)은 영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북아메리카의 프랑스의 식민지, 미국과 캐나다 전역도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캐나다의 실질적인 통제권이 영국으로 넘어 갔지만, 일찍 정착했던 프랑스인은 세인트로렌스 강 동쪽의 프랑스 거주지에서는 영국 문화에 저항하고

프랑스 언어를 쓰고, 퀘벡 지역은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강한 지역적 저항을 보이고 있다.

영어와 불어를 캐나다의 공식 언어로 사용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캐나다 쪽의 세인트로렌스 강은 프랑스문화와 영국문화를 가르는 경계이다.

프랑스는 동쪽 영국은 서쪽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중요한 강이다. 이 강을 따라 탐험과 개척 이민, 캐나다의 역사가 일어난 곳이다.

프랑스 문화의 중심은 퀘벡 주의 몬트리올, 영국식민지의 중심은 옷타와 강 사이, 온타리오 주의 토론토이다.

온타리오와 퀘벡 주는 캐나다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최대 인구 밀집지역이다. 오대호 북쪽이다. 캐나다의 최대 인구와 산업이 있다.

토론토, 옷타와, 몬트리얼, 헐 같은 대도시와 중소도시가 위치한다. 해상, 육상, 항공교통 망의 중심이다.

오대호 주변이 미국 산업의 중심이고, 또한 캐나다의 경제 중심지역이다. 토양도 비옥하고 기후도 서부 유럽의 기후와 비슷하다.

유럽인이 이민을 와서도 자연스럽게 적응 할 수 있었던 지역이다.

세인트로렌스 강의 상류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미국의 허드손 강의 상류와 만난다. 대양 선박운항을 위하여 운하를 건설하였다.

인디언들은 작은 배로 호수를 따라 두 강을 연결하며 다녔다. 몬트리얼에서 뉴욕까지 간다.

오대호에서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대서양으로 나간다.

세인트로렌스 만에서 슈피리어 호, 캐나다의 선더베이 도시까지 3천600km를 내륙 수로가 연결되어 있다.

미국과의 교역이 가장 많은 곳이 오대호와 세인트로렌스 강 유역이다.

 

작은 인구로 광대한 영토를 보유한 캐나다 국가 성립은 미국 때문이다.

미국이 캐나다와 접경을 하고 있는 한 어느 나라도 캐나다를 넘 볼 수 없다. 영국이 캐나다를 일찍 독립국으로 승인한 것도 미국의 눈치를 보았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를 잠식해 들어갔다. 미국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캐나다를 쳐 들어가 미국의 영토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 때를 놓쳤다는 학자도 있다. 1930년대 만 하더라도 캐나다는 현재의 영토를 갖는 국가가 아니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은 8천Km,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이다.

사실 미국과 캐나다는 상품과 인적교류에서 한 국가와 같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후 교류는 더욱 활발해 졌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캐나다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토론토의 남쪽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 사이에 나이야가라 폭포가 걸려있다. 폭포를 사이에 두고 캐나다와 미국 쪽에 각각 ‘나이야가라’도시가 있다.

그 배후에는 거대도시 토론토, 미국 쪽에는 버팔로 와 뉴욕이 있다.

캐나다 사람이 미국에 직장을 갖고 있고, 미국인 또한 캐나다에 직장을 두고 있기도 하여, 국경을 통과하는 출퇴근차가 국내 도시처럼 분빈다.

국경을 넘을 때에도 고속도로 하이-패스 같은 것으로 대용한다. 국경을 지키는 수비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화물을 운반하는 바지선

 

출처 : 박찬석 교수님의 블로그 http://www.cyworld.com/chansukpark/460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