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8. 10:50ㆍ잡다한 글
이 전설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서 최정걸 장군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1982년 11월 9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최현목[남, 60]이 구연한 것을 이한기가 채록하여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 안산"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7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다시 최헌목[남, 75]이 구연한 것을 이정태가 채록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재수록하였다.
예전 사리역뒤 그러니까 현재의 안산동산고등학교 옆에 절충장군 묘(折衝將軍墓)가 있는데, 이와 얽힌 이야기이다. 병자호란 때 장군 최정걸(崔挺傑)이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1595~1649]를 구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게 되었다.
최정걸은 떠나기 전날 밤 부인에게 속적삼을 달라고 말하였다. 부인이 “그건 무얼 하시려우?” 하니까 최정걸이 “만약에 내가 전사를 했을 경우에 무얼 보고 나를 찾겠소?” 하였다. 사람은 머리가 없다면 도저히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정걸이 남한산성에서 죽은 후, 최정걸의 시체를 찾으려고 하였는데 도저히 찾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옷을 모두 벗겨 보니 여자 속적삼을 입은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속적삼을 보고 최정걸의 시신을 수습하여 현재의 산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최정걸의 산소가 있는 산에는 나무가 무성하였다. 산 아래에는 한 20여 호가 살고 있었는데, 아무도 산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신성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신 따위를 믿지 않는 한 사람이 “요즘 세상에 그런 게 다 뭐야” 하면서 산을 거의 100㎡ 정도 개간하여 양계장을 지었다. 그런데 양계장 안에 닭을 넣으면 죽고 넣으면 죽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은 두 손을 들고 떠나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최정걸의 산소가 있는 산은 괭이 자국 하나 없이 잘 보존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산의 나뭇가지 하나만 꺾어도 화를 입는다고 믿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 http://ansan.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250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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