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7. 19:33ㆍ살아가는 이야기
오늘은 불기2557년 癸巳年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다. 무늬만 불교신자인 길손은 어디를 갈까? 잠시 고민하다 지나는 길에 천태종의 '동대사'에 가기로 했다.
나는 조계종단에 속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데
어느 종단이 중요하고 안하고를 따지지 않기로 한다.
동대사를 들어가는 길은 담티고개에서 들어가는 길과 고모역에서 들어가는 길이 있다.
담티고개 가까이에는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대구시립화장장인 '대구 명복공원'과 죄를 지은 사람들 특히 미결수를 수용하는 '대구 구치소'가 있는데
동대사를 들어가려면 그 사이의 좁은 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
지리적인 위치는 사찰이 꼭 있어야 할 자리다. 화장장에서 화장되는 영가들의 영혼과
세속의 죄를 지은 자들을 위무하기 위해서 그러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즉,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그 '東大寺'가 위치한다.
이 사찰에는 특별히 일주문같은 정문이 없어 그냥 편하게 들어간다.
동대사는 연등이 볼만하다. 사찰 주변에 온통 연등이다. 야간에는 굉장할 것이다.
길손을 먼저 맞은 것은 질서정연하게 달려있는 연등이다.
마침 공양시간이다. 점심공양을 위해 공양간 앞에 줄을 섰다.
목마른 자들을 위한 시원한 물도 준비되어 있고
줄서서 관욕식도 하고
동대사는 아직 확장하는 중이다. 대웅전이 아니고 관음전이다.
천태종 사찰에는 특이하게도 어떤 스님이 부처님과 나란히 모셔져 있다. 조계종을
다니는 불자들은 이런 낯선 광경에 다소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사진속의 이분은 천태종의 중흥조 '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 大祖師)' 의 진영이다.
그러면 상원원각대조사가 천태종에서 어떤 스님이기에 저토록 추앙을 받는가??
그분의 행장에 대해서는 대한불교 천태종 총무부장이신 무원스님의 블로그에서
모셔왔다.
http://blog.naver.com/kmw7272?Redirect=Log&logNo=111444123
의천대각국사의 뜻을 이어오던 한국 천태종은 조선조 5백 년 동안 매몰된데 이어, 또 한번의 긴 혹한기를 겪는다. 우리 민족 전체가 잔혹한 암흑기를 거쳐야했던 일제 식민 35년이 그것이다. 종교는 물론 민족성 또한 짓밟혀야했던 어둠의 시간. 이 고난의 시기가 지나자, 불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과업을 등에 지고 새로운 세상을 펼쳐나게 된다.
불교는 본래 중생제도와 정불국토(淨佛國土)건설을 근본에 두고 있다. 이 본래의 면목을 등지면 생명을 잃은 불교로서 타락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저편에서 기나긴 시간을 보낸 우리 사회는 갑작스런 서구문명의 등장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일어난 갈등과 분열로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 혼란을 올바르게 인도할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1966년 8월 30일, 모진 흙탕물 속에서도 청연히 모습을 잃지 않고 진리를 실현해오던 천태의 가르침이 다시 한번 몽우리를 터트리고 활짝 꽃잎을 피우게 된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상월원각 대조사이시다.
1911년 신해년 음력 11월 28일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신 대조사께서는 15세 때에 불문에 입문하여, 불법의 근본 가르침을 깨달기 위해 경문을 익힘은 물론 직접 전국의 명산과 성지를 찾아가 지관을 닦으셨다. 8․15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는 무외(無畏)와 무애(無碍)의 법력과 자비로 많은 중생을 구제하셨다.
뜻한 바가 있어 소백산에 입산하신 대조사께서는 새로 도량을 지으시고, 몇 가지 큰 서원을 이야기하셨는데,
“기필코 큰 법을 성취하고 이곳에서 새 불교운동과 큰 불사를 일으키겠다. 기필코 반야지혜와 무애해탈을 증득하지 않고서는 사회와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 기필코 스스로 성취한 공덕은 만중생에게 회향하여 다함께 무상보리를 얻도록 하겠다”
는 것이 그것이다. 대조사님의 새 불교, 새 신앙운동의 염원과 구도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일면이다.
대조사께서는 종래의 소승적 둔세불교, 출가 중심적 산간불교, 미신적 기복불교, 소비적 유한불교를 탈피하여, 불교를 사회와 민중 속에 심어 국민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생활 속의 불교, 즉 생활즉신앙(生活卽信仰), 신앙즉생활(信仰卽生活)이 되게 하고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불교를 세우고자 하셨다.
이 이념과 신념이 기반이 되어 마침내 1966년 8월 천태종의 중창을 선언하게 되었는데, 이는 고려 의천대각국사께서 천태종을 개종한지 871년이 되고, 조선조 세종 6년에 폐종된지 544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불교의 혁신과 중흥을 목소리 높여 외쳤던 지식인과 불교 지도자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대중 앞에서 실천을 선보이고 성과를 거둬낸 인물은 없었다. 어려운 시대 누군가가 짊어져야했던 과업을 등에 지고 실현 하시면서 대조사께서는 천태종의 중창조를 맞아 중창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시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신앙의 희망을 이야기 하셨다.
“일찍이 대각국사께서 태조(太祖) 천태지자대사 탑전에서 큰 서원을 세우시고 귀국하신 뒤 고려 천태종을 개립하시고,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최상종승으로 당시에 퇴폐(頹廢)한 선․교(禪․敎)의 기풍을 새로 진작(振作)하고, 교계의 혼미를 쇄신하며 전 교계를 통섭영도하여 불교중흥을 이룩하였거니와, 이제 상주불멸(常住不滅)의 실상묘법(實相妙法)은 인연 따라 다시 이 강토에 감로법우(甘露法雨)를 뿌릴 때가 되었다.
이에 오랫동안 역사의 진토 속에 묻혔던 신성한 천태일승대도(天台一乘大道)를 발굴하여 민족정신문화 부흥과 불국토 건설에 이바지하고자 천태종을 다시 세우고자 한다.
저 연꽃이 더러운 흙탕물 속에서 미묘하고 향결한 빛을 나타내듯이 이 실상묘법(實相妙法)에 귀의하는 말법중생들은 이 묘법의 위신력(威神力)으로 오탁(濁)의 진창과 10악(惡)의 흙탕물에서 보리공덕(菩提功德)을 성취하고, 스스로 참되고 밝은 생활을 창조하며, 나아가 온 인류를 각화정화(覺化淨化)하여 모순과 죄악이 없는 이상사회를 실현할 것을 서원할 지어다.”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 대조사께서 조선조 이래 세력이 점점 약해져오던 우리나라 불교를 획기적으로 흥륭하고 민족정신문화를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고, 천태교리 연구, 인재양성을 위한 대학 교육기관 설립, 한, 중, 일 천태종의 상호교류 등을 염원하면서 어렵게 다시 꽃피운 천태종단의 대 발전을 기대하게 하였다.
대조사께서는 1979년 음력 4월 27일,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지 않았고 또한 열반에 든 것도 없도다. 나고 죽음이 본디 텅 비었으니, 찾다가 비우는 것이 한 달 바퀴로다”
라는 열반계를 남기시고 홀연히 입적하셨다.
상월원각대조사의 입적은 신도들에게 너무나 큰 비통이었고, 전 생애에 걸쳐 펼치신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귀중한 교훈으로 남아있다.
대조사님의 가르침과도 일맥하는 그 동안의 업적과 공덕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조사께서는 위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확고한 교화이념으로 천태종을 다시 세워 종풍을 크게 선양하고 종단발전의 기반을 확립하셨다. 역사상 법난(法難)으로 종파가 폐절된지 500여 년 만에 천태종을 다시 세워 교세를 크게 일으키고 대 종단의 기초를 다지신 것이다.
두 번째는 많은 중생들을 불법(佛法)으로 인도하여 안락을 얻게 하셨는데, 어둠에서 헤매던 중생들에게 새 삶의 광명을 비춰주고 참 삶의 가치를 깨우쳐 주신 광도중생의 공덕은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세 번째는 불교신앙을 대중화하여 불교를 사회와 민중 속에 심고, 무너져가는 정신생활의 부흥을 주장하셨다. 누구나 불법을 쉽게 이해하고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부질없는 이론보다는 들어서 실행이 되고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을 강의해 오셨다.
네 번째는 오늘의 우리 불교가 나아갈 방향과 시대적 사명을 밝혀오셨다.
대조사께서는 항상 우리의 전통불교가 다시 중흥하여, 국가와 사회 발전에 큰 공헌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단결된 신앙심으로 국난타개에 앞장서야 한다는 말씀은 곧 애국불교 건립의 지표가 되었다.
다섯 번째는 수행불교의 종풍을 세워 천태종에 처음 발을 내딛은 초신자(初信者)일지라도 스스로 기도하고 염불을 닦게 하셨다.
천태종 종도 누구나 수행인다운 구도자의 정신으로 행주좌와(行住坐臥)의 마음공부를 제일 요체로 하고, 총본사인 구인사나 말사에 나가 용맹정진을 하면서 염불선을 닦게 하신 것이다.
여섯 번째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생산적인 불교의 확립과 사회복지를 위한 불교를 세워 오셨다. 수만 평의 농지를 경작하고, 2백만 본의 조림을 실시하였으며, 약초를 재배하는 등 유한불교 소비불교가 아닌 생산불교를 지향하여 선농일치 사상을 고양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조사께서는 천태종의 좌표와 방향, 종도들의 신행지침이 되는 많은 법어와 교시를 남기셨는데, 그 가운데
“실상은 무상이고 묘법은 무생이며 연화는 무염이다. 무상으로 체로 삼고 무생에 안주하여 무염으로 생활하면 그것이 곧 무상보리요 무애해탈이며 무한생명의 자체구현이다. 일심이 상청정하면 처처에 연화개니라”
라는 법어는 법화경 28품의 진수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천태종도는 어느 법회에서나 이 법어를 봉독하고 법어의 가르침을 소중히 받아들어 행하고 있다.
상월원각대조사는 천태종을 중창하시면서 불교의 현대화, 대중화, 생활화라는 이념아래 새 신앙운동을 전개하셨는데, 천태종을 대표하고 있는 종단의 3대 지표를 살펴보면, 대조사님의 깊은 뜻과 한국 천태종의 현재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미래의 좌표가 면밀히 그려진다.
3대 지표의 첫 번째는 애국불교 건립이요, 두 번째는 생활불교의 지향, 세 번째는 대중불교 구현이다.
대중불교의 구현은 우리는 불교라면 예부터 세속을 떠나 입산수도를 해야만 불교인이요, 부처님의 참 제자라고 여겼다. 그러나 대조사님께서는 불법을 적극적으로 민중 속에 심어야 하며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적극 봉사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다.
천태종에서 전국 도시 가운데 큰 사찰을 계속 짓고 신도가 모이는 곳마다 회관을 지어 정기적으로 대중법회를 실시하고, 각 말사의 불사나 경영을 상호 협력하며 함께 하고 있는 것도 대중불교 실현의 일환이다.
부처님은 우리 인간과 아주 거리가 먼 신령으로서 우리 인간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부처님의 세계를 국토 밖에 있는 극락세계를 의미한다거나, 불교를 믿는 것은 죽은 뒤에 극락을 가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관념적인 신앙이다. 이런 관념불교를 지양하고, 생활불교를 세워야한다는 것이 3대 지표 중 두 번째 지표인 생활불교의 지향이다. 생활의 하나하나가 신앙에 의하여 미화되고 뜻있게 되도록 하는 것, 신앙과 생활의 조화를 도모하는 것이 바로 생활불교의 실천이다.
우리불교의 역사상 호국불교로 일관해 왔는데, 나라가 위험에 처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졌을 때 불교인들은 구국활동에 앞장서왔다. 오늘의 불교도 시대적 요청에 호국불교로서의 빛나는 전통을 회복하고 발전하여 불교의 참 면모를 세워야한다는 것이 애국불교 건립의 중심이다.
여기에 상월원각대조사께서 깊이 강조하셨던 것은 불교도는 자주 민주 평화에 의한 국토통일을 기원하고 이 과업의 수행을 위하여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뜻을 깊이 새기어 오늘의 한국 천태종에서는 통일에 대한 과업을 실행하기 위해 대북교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특히 남과 북이 종교로 하나 될 수 있는 합작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2004년부터 개성 영통사의 복원을 위해 북측 영통사 복원위원회와 손을 잡고 물자 지원에 참여, 화려한 낙성을 일궈내면서 상월원각대조사님께서 강조하신 애국불교 건립의 가르침을 이으며 역사적 행보를 걷고 있다.
오늘의 한국 천태종은 중창된 역사는 아직 짧지만, 의천대각국사의 국민정신 귀일(歸一)과 고려불교의 원대함을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상월원각대조사의 원력에 힘입어 명실상부한 대 종단으로 크게 발전해 나가고 있다.
【첨부/ 종단 3대 지표】
애국불교를 건립한다.
▶ 민족중흥(民族中興)의 과업(課業)에 헌신(獻身)한다.
▶ 복지사회(福祉社會) 건설(建設)에 이바지한다.
▶ 사회정화(社會淨化) 운동(運動)에 적극 참여(參與) 한다.
▶ 민족도의(民族道義) 재건(再建)에 적극(積極) 힘쓴다.
생활불교를 지향한다.
▶ 기복불교(祈福佛敎)에서 작복불교(作福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유한불교(游閑佛敎)에서 생산불교(生産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우상불교(偶像佛敎)에서 실천불교(實踐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생활(生活) 즉 불교(佛敎)의 이념(理念)을 실천(實踐)한다.
대중불교를 구현한다.
▶ 가람불교(伽藍佛敎)에서 민중불교(民衆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출가불교(出家佛敎)에서 재가불교(在家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염세주의(厭世主義) 불교(佛敎)가 아닌 구세주의(救世主義) 불교(佛敎)를 지향(指向)한다.
관음전 뒷편에도 온통 산위로 연등이 시위를 하고,
멀리 보이는 것이 미결수 교도소인 대구구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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