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6. 16:11ㆍ살아가는 이야기
우리 민족 저항 3대 시인들은 이육사, 윤동주, 이상화 선생이라고 한다.이상화 선생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는가'로 우리들에게 친숙하다.
이상화 시인의 고택은 대구 중구 계산동에 있는데 그의 묘소는 화원읍 본리리의 문중 선산에 있다. 이곳은 사유지로 선생의 묘소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초인종을 눌러 후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곳이 재실이다.
경주 이씨 문중의 재실이다.
재실을 지나 조금 올라 가자 제사를 지내는 제각이 보인다. 아마도 안에는 상당한 물건이 있는지 출입문과 창문은 전부 철문으로 막아 놓았다.
제각(祭閣) 옆에 작은 비각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내용은 읽지 못했다.
이상화 선생의 백부인 이일우 선생의 송덕비도 이곳에 서 있고,
도시계획으로 인해 보상받은 돈으로 이곳으로 이장하였다고 하는데 주변에 보기 좋은 소나무 숲과 따사로운 햇살이 유택으로 내려온다.
우리의 전통으로 보자면 윗대부터 후손은 아래로 내려와야겠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선생의 왼쪽에는 선생의 형인 독립운동가 李相定 선생의 묘소가 있다.
소박하게 앉아 있는 이상화 선생의 묘소, 오른쪽으로는 그의 부인의 묘소가 있다.
이상화 선생의 부인인 달성 서씨(베로니카)의 묘소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1회 수성 건강 한마당 행사 (0) | 2014.10.20 |
---|---|
욱수골 입구의 불광사 (0) | 2014.10.11 |
핑크 리본 마라톤대회 (0) | 2014.09.15 |
자연이 숨쉬는 대구자연과학고 (0) | 2014.09.14 |
멧돼지야 너에게 부탁한다. 저수지를 구하거라!! (0) | 201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