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덕룡산 불회사

2015. 2. 24. 09:32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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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의 덕룡산에 자리잡고 있는 '불회사' 일주문이다. 한 번도 들었던 적도 들렀던 적도 없는 사찰이지만, 한가지 인연으로 이곳에 들어간다.

 

 

 

 

 

 

 

 

사찰 들어가는 길옆으로는 편백나무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모든 나무에는 군인들의 인식표 같은 것이 걸려 있다. 아마도 벌목을 방지하려고 붙인 것으로 생각된다. 경상도나 강원도는 주로 사찰 입구에는 금강송같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편백나무 숲길도 제법 운치가 있고, 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보다 걸어 들어가면서 피톤치드를 느끼는 것이 더 좋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석장승이 길손 일행을 맞는다. 이것은 할아버지 [하원당장군] 석장승이다.

 

 

 

 

 

 

할머니 석장승 [상원주장군]이다. 왜 할머니가 상원이고, 할배가 하원인지 내 상식이로는 분간이 어렵지만, 뭐 절집의 오묘한 이치가 있겠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연리목이란다. 바위 위에서 두나무가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은 비스듬히 드러누운 암나무요 오른쪽은 쪼그려 앉은 수나무로 보인다.

 

 

 

 

 

 

 

 

 

 

이 건물 앞부분은 '진여문(眞如門)이고, 같이 붙어있는 뒷부분은 '천왕문'이다.  '진여문'이 있는 사찰이 있는데 그럼 이 진여는 무엇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진여'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眞如]

 

진여는 우주 만유의 실체로서 현실적이며 평등 무차별한 절대의 진리로 불교의 여러 학파에서 끊임없이 연구되어 왔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승기신론 ≫에 입각하여 신라의 고승 원효()가 주장한 설을 널리 채택하고 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일심()을 참되고 한결같은 본체적인 면과 변화하고 움직이는 현상적인 면으로 나누고, 이를 심진여()와 심생멸()이라 하였다. 그리고 참되며 한결같은 진여는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이언진여()를 간략히 밝히고, 이어서 그래도 감히 말로써 설명해 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을 밝힌 의언진여()의 장을 두었다.

 

본체로서의 진여가 과연 절언인가 부절언()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있을 수 있고 논쟁이 전개될 수 있는 충분한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하여 원효는 진여를 사(, )에 대한 이(, 본질적인 원리)로 이해하고, “이 이()는 언설을 절한 것도 아니고 언설을 절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는 언설을 절한 것이며 또한 언설을 절하지 않은 것이기도 함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원효는 ≪대승기신론소 ≫에서 이언진여에 대한 몇 가지 점을 말을 빌려 밝히고 있다.

 

① 진여는 전체성·보편성·영원성을 지닌 대총상()이며, ② 진여는 참된 이해를 낳게 하는 원리원칙으로서의 법()이고, ③ 진여는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며, ④ 일심을 그 체()로 하고 있고, ⑤ 불생불멸()로서 시간성을 초월하고 있으며, ⑥ 망념()을 떠나 있기 때문에 말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도, 문자와 개념으로 알릴 수 있는 것도, 분석적 사변이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진여에 대한 두번째 설명은 말에 의지하는 방법이다. 말에 의거한 진여 설명은 부정으로서의 공[]과 긍정으로서의 공[]으로 다시 분류된다. 궁극적인 실재를 드러내기 위하여 여실공을 세웠고, 진여의 자체에는 완벽한 상태의 공덕이 갖추어져 있음을 밝히기 위하여 여실불공을 세운 것이다.

 

즉, 여실공의 진여는 유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며, 비유상()도 비무상()도 아니라고 하여 일체의 상대적인 모습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여실불공으로서의 진여는 영원하여 불변하고 공평무사한 법이 가득 차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실불공의 진여가 깨달은 사람에게만 온전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원효는 상기시키고 있다.

 

진여에 대한 세번째의 설명은 진여를 본체[]와 속성[]과 작용[]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진여의 체는 보이지 않는 초험적인 것이고 선험적인 것이다. 그것은 모든 현상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진여 그 자체이며, 본각()이기도 하다. 이 체의 모습은 범부라 하여 주는 일이 없고 부처라 하여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것이라고 한다. 진여의 상은 진여한 마음이 갖는 완벽한 덕성이다.

 

그 덕성이란 ① 대지혜이고 광명이며[], ② 모든 대상세계를 남김없이 두루 비춰 주며[], ③ 진실한 인식이며[], ④ 그 본래의 성격은 청정한 마음이며[], ⑤ 영원하고 행복하고 자유자재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⑥ 청량하고 변화됨이 없으며 자재로운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진여의 속성들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본체를 세속적인 표현을 통하여 열거한 예에 불과하다고 원효는 단서를 붙였다. 진여의 용은 진여심의 작용면에의 위대성이다. 이 용에 대한 설명은 본각을 회복해서 가진 부처를 내세워 설명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진여의 용이 무슨 까닭으로 있게 되는가를 주로 다루고 있다.

 

즉, 진여의 작용은 ① 제불여래()가 본래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는 단계에서 대자비를 발하여 갖가지 바라밀()을 닦아 중생을 포섭하여 교화하고, ② 대서원()을 세워 무한한 겁()을 통하여 미래가 다하도록 모든 중생계를 해탈시킨다. ③ 일체의 중생을 자신의 몸과 같이 여기기 때문에 따로 중생관()을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중생과 자신의 몸이 진여이고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이다.

 

원효는 진여의 작용이 있게 되는 이 세 가지 중에서 ①을 결과가 나타나게끔 하는 행위, 즉 본행()이라 하였고, ②를 본래의 소원[], ③을 위대한 능력을 지닌 대방편(便)이라 하였다. 그리고 대방편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무명을 없애고 본래의 법신()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과 불가사의한 여러 가지 작용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그 작용은 참되고 한결같아 두루 미치지 않는 데가 없으며, 중생이 보고 듣는 데 따라서 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진여의 작용은 대방편의 지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초월자적인 존재가 힘없고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베푸는 그 무엇이 아니라 중생심 그 자체의 작용이며, 진여한 중생심 속에서 스스로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발현되는 작용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원효의 진여에 서 발현되는 작용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원효의 진여에 대한 주장은 중생의 본체를 설명하는 데 있어 후대의 우리 나라 불교계뿐만 아니라 중국 및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길손은 이렇게 긴 설명 가운데서도 '眞如門'이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종무소와 비로다경실이 있는 대양루이다. 웅장하고 멋스럽게 생겼다.

 

 

 

 

 

 

 

 

 

 

佛會寺의 창건설화를 보니

 

백제 때 창건된 불회사의 대웅전을 고려시대 원진국사가 중건할 때의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 말 참의벼슬을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출가하여 스님이 된 원진국사는 유랑하다 불회사에 이르게 되었다.
오랜 세월에 쇠락한 불회사를 본 스님은 이를 복원하고자 원을 세우고 이 마을 저 마을 탁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절로 돌아오던 중 산길에서 울고자하나 울지도 못하고 일어나고자 하나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호랑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이를 본 스님은 살생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호랑이의 목에 걸려있는 비녀를 뽑아 낫게 해 주었다. 그해 겨울 호랑이는 아리땁고 귀한 집 아이로 보이는 처자를 물어다 절 마당에 내려놓고 갔다.
목숨이 겨우 붙어 있는 처자를 구한 스님은 그녀가 천리 밖 안동 만석꾼 김상공의 외동딸임을 알게 되었고, 처자가 기력을 회복한 후 남장하여 함께 집을 찾아 나섰다.

자초지종을 들은 김상공은 은혜 값기를 청하니, 이에 스님은 불회사 복원불사에 시주하기를 청하고 작은 걸망을 내밀어 가득 채워줄 것을 권했다. 그런데 그 작은 걸망은 쌀을 부어도 가득 차지 않았고 이에 곳간에 든 쌀을 다 비우고서야 가득 찼다.

김상공이 시주한 쌀로 대웅전을 중건하는 공사가 이루어지자 스님은 좋은 날을 택하여 상량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일의 추진이 늦어져 어느 사이에 하루해가 저물고 말았다.


이에 스님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를 하여 지는 해를 붙잡아 두었고, 예정된 날짜에 상량식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스님은 기도하던 자리에 ‘일봉암()’을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샘터만이 남아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갈증을 달래주고 있다.


 

 

 

 

 

 

 

 

대웅전 법당 안을 들어가서 중앙 천정을 보니 용 두마리가 입에 뭔가 물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물고기를 물고 있다. 보통 여의주를 물고 있는데 이 불회사의 용은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고 한다.

 

 

 

 

 

 

 

 

천정을 자세히 보니 꽃게도 보인다. 물고기는 흔히 있지만, 꽃게는 특이하다. 꽃게가 그려진 곳은 가로 대들보, 즉 용의 배(腹) 비늘 왼쪽에서 5번째 바로 위에 흰색으로 그려진 작은 공처럼 생긴 그림이다. 작은 다리가 묘사되어 있다.

 

 

 

 

 

 

이 비로자나불은 종이로 만들어 옻칠을 하고, 그위에 금칠을 한 '건칠불(佛)' 이라고 한다.

 

 

 

 

 

 

 

 

단청의 색깔이 바랜 것으로 보아 칠한 지도 제법 오래된 것으로 느껴지는데 그것이 오히려 은은한 느낌이어서 좋다.

 

 

 

 

 

 

 

종이로 부처를 만들고, 그 위에 옻칠과 금박을 입힌 '건칠불(佛)' 인 비로자나불이다.

 

 

 

 

 

 

 

용의 배비늘로 묘사된 대들보 왼쪽과 오른쪽의 수직 판자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오근쪽의 검은색 그림은 물개인가? 아니면 거북이인가?

 

 

 

 

 

 

 

오른쪽에는 어떤 스님이 흰 종이를 들고 뭐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용의 뒷부분과 꼬리가 법당 안으로 이렇게 나와 있고,

 

 

 

 

 

 

바깥으로는 용의 머리(龍頭)가 붙어 있다. 참으로 멋스런 조각품이다.

 

 

 

 

 

 

이곳은 새로 건축한 극락전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영가들이 모셔져 있다.

 

 

 

 

 

 

 

 

유명한 도인들의 영정이 이곳에 모셔져 있다. 밑에 모셔진 분은 '서옹 대선사'임이 분명하다.

 

 

 

 

 

 

 

 

대웅전 뒷산에는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잘 가꾸어져 있다.

 

 

 

 

 

만물을 깨우는 범종각

 

 

 

 

 

 

 

 

내려오다 만난 비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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