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남는 소쇄원

2015. 2. 27. 08:52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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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소쇄원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운주사' 를 구경하고 담양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식사하기 위해 바삐 가는 길, 흔히 그렇듯이 서두르다 보면 꼭 실수한다. 가까운 길을 두고 멀리 넘어갔다. 무등산을 넘어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 우연히 한무리의 관광객과 안내문을 보고 잠깐 차를 멈추고, 소쇄원을 관람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식당에 도착한 일행이 대기순번을 받았으니 저녁을 먹고 관람해도 되니 일단 식당으로 오라는 것이다. 매표소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니 조금은 허탈한 느낌이다.

 

 

 

 

 

 

식당에서 예상외로 시간이 길어졌다. 대기순번도 순번이거니와 일종의 상술인지 빈자리가 많았지만, 자리에 앉히지 않고, 대기실에서 대기를 시킨 후에 또 다시 식사자리로 이동하여 30여 분 간을 대기한다. 아무리 유명한 식당이라고 해도 그렇다. 지금 같은 연휴에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면, 알바라도 많이 고용해서 손님들의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없다. 차라리 소쇄원을 관람하고 올 것을 그랬나 하는 후회가 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저녁을 먹고 7시 30분쯤 소쇄원으로 다시 돌아오니 인적은 없고, 대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와 매표소가 길손을 말없이 맞이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쇄원 관람료가 비싸다는 느낌이 온다. 아무리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선비들의 정원이라고 하지만, 20분 남짓이면 돌아볼 공간에 무슨 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광주에 있는 사촌들이 한마디씩 한다. 자기들은 소쇄원이 관람료  받고 부터는 저곳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아닌 밤중에 겨울 소쇄원을 찾아가는 사람도 드물겠거니와 사진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대충 사진을 찍어 포스팅하는 사람도 천연기념물 같은 사람과 진배없으리라. 길 양옆으로 울타리 친 너머에는 대나무 숲이 펼쳐지고, 약간은 을씨년스럽고 마치 소복 입은 여인네가 지나는 길손을 보면서 야릇한 미소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머리끝이 쭈뼛거린다.

 

 

 

 

 

 

 

좌우지간 입구라고 하니 검은 실루엣 속으로 들어간다. 왼쪽으로 작은 개울물이 흐르고, 개울물 건너 광풍각과 제월당이 있다.

 

 

 

 

 

 

작은 초가삼간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 있는 곳이 되는 것이다. 내 눈에는 그저 작은 원두막에 불과하지만, 어엿한 '대봉대'란 이름이 있다.

 

 

 

 

 

 

 

 

 

 

 

빛도 없는 컴컴한 곳에서 어림짐작으로 똑딱이 카메라 방향을 담 쪽으로 하고, 플래시를 터뜨리니 그래도 대충 그림은 나왔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정원이 있지만, 길손은 평소 자연 그대로를 이용한 소쇄원에서 단연 압권은 이 돌담이라고 생각되어 이곳만 보면 소쇄원 60%를 본다고 생각했다. 장구한 세월에도 볼품없어 보이는 굄돌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여 담이 훼손되지 않고 저렇게 꿋꿋하게 서 있으니 어둠 속에서도 길손의 마음은 저 돌담을 축조한 옛사람을 향한 경외심으로 충만하었다.

 

 

 

 

 

 

 

대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더해서 으스스한 느낌이 도는 제월당이다.  흰 도포를 입은 조선 시대 유생의 실루엣이 보일 듯, 말 듯, 이곳은 살림집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그곳에서 생노병사도 있었을 터, 옛 선비와 교감을 나누려면 야반 삼경에 작은 촛불에 불을 밝히고, 작은방에 정좌하면 그 옛날 이곳에서 학문을 논하던 선비들의 그림자가 툇마루에 서성거릴 듯하다.

 

 

 

 

 

 

 

어림짐작으로 건물을 가늠한 후, 카메라 셔터와 후랫쉬 한 발 발사

 

 

 

 

 

두 번째 발사, 아직은 아무런 기척도 기미도 없다.

 

 

 

 

 

세 번째 셔터를 누르니 사진기 탓인지 왼쪽 처마에 큰 점과 방문 앞에 작은 점을 만들었다. 혹시 저게 혼불은 아닐까?  낮동안 무수한 발자국 소리와 재잘거림에 시달렸을 혼령이 대숲을 지나는 바람처럼 홀연이 나타나서 길손을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아닐까?

 

"이 보시게나 중늙은이 자네 왔는가? 나는 옛 시대를 살았던 유생이라네! 혹시 시간이 있다면, 작은 소반에 소박한 안주를 올려 막 빚어 놓은 막걸리라도 한 잔 마시면서 밤새워 나하고 담소라도 나누지 않겠는가? " 

 

 

 

 

 

어떤 빛의 도움도 없이 여러 컷을 찍었지만 대체로 건물의 윤곽은 제대로 나왔다. 아마도 저곳에 있는 어떤 작은 힘들이 길손을 돕지는 않았을까? ^^

 

 

 

 

 

 

 

광풍정은 어둠에 휩싸이고, 돌담만 길손을 맞는다.

 

 

 

 

 

 

 

 

 

대봉대에서 개울 건너 광풍정을 앞에 두고 셔터를 누르니 광풍정의 여닫이 문이 보일 듯, 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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