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2. 13:19ㆍ잡다한 글
'高麗棒子(꼬리 또는 까오리 빵즈)'라는 말은
마치 일본인이 한국 사람을 '조센징'이라고 비하하듯이
중국 사람들이 조선족을 보고 '꼬리빵즈'라고 비하하여 부른단다.
우리는 중국인을 '떼놈"이라고 부르고,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생각난다.
'고려 방망이'는 '고구려 방망이'를 줄여 표현한 것 같다.
중국인들은 과거 당나라 때부터 고구려를 무서워했었나 보다!!
우는 어린애한테 "고구려 방망이 온다"라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였다니
우리 어릴 때는 "순사가 잡아간다!!"라고 하면 그쳤는데~
고구려는 요나라와 변경을 두고 자주 전쟁을 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칼, 도끼와 함께
가볍고 단단한 박달나무 방망이(몽둥이)도 살상 도구로 곧 잘 사용되었다고 한다.
고구려 병사들은 굉장히 날렵하고 용맹스러워서 방망이를 들고, 적진으로 들어가서는
당나라 군대를 닥치는 대로 사정없이 머리나 몸통을 부숴놓는 데
당하는 병사의 비명이 온 들판에 너무 처절하게 메아리쳐졌다고 한다.
방망이에 맞아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당나라 군대는 저항할 의욕을 잃었다고 한다.
장검을 사용하면 단박에 목숨이 떨어지는데, 몽둥이로 맞아 죽어가니 그 소리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 참고로 "당나라 군대"나 "장개석 군대"는 흔히 군기빠진 부대를 일컫는 우스개 말로 사용된다.
당나라 군대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고구려 병사가 방망이를 들고 적진으로 돌격을 하면, 요나라나 당나라 병사들이
싸우다 말고,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가기 바빴단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들이 월등한 화력을 가지고도 일본군과 대적하면서
일본군 장교가 허리춤에 있던 긴 칼을 빼어 들고 '도스께끼(突擊)'라고 외치면서 돌격해 오면,
기관총을 신나게 쏘던 미군 병사들이 기관총을 그대로 두고 도망칠 정도였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보다도 방망이로 맞아 죽는 것이 더 처참하고 고통스러웠으리라~
리비아 내전에서 가다피가 용병을 전투에 끌어들였다. 용병 중에서도 가장 용맹한 용병은 '구르카 용병'이라고 한다.
구르카 용병은 네팔 출신들이라고 한다. 티벳과 같이 히말라야 같은 높은 고산지대에 살기 때문에
심폐기능도 좋고, 신체 능력도 우수하다고 한다.
과거 영국군이 구르카족이 사는 지방을 공격했을 때 그들 소수민족의 칼인 '쿠크리'라고 불리는
단도를 가진 구르카의 전사들과 싸웠는데, 총과 대포로 무장한 영국군이 막대한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에 영국은 나중에 구르카 족을 용맹한 민족으로 판단하고 1815년부터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였고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과 전쟁을 벌인 나라들에서는 언제나 이들 용병을 두려워했는데,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을 할 때에는 일부 아르헨티나 군인들이 구르카 부대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그대로
도망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1개 여단 규모로 편성되어 운용되고 있다고 한다.
2차대전 중에 독일군의 진지를 야습하여 병사들의 목이나 귀를 베어가는 공포의 존재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일본군과의 근접전에서 구르카 대대의 '디마푸르'라는 중사가
일본군 참호에서 무려 24명의 일본군을 단도로 베어 죽여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구르카 용병과 관련된 일화라고 한다.
2010년 9월 2일 영연방군 소속 구르카 대대에서 최근 하사로 막 퇴역한 비슈누 (35세)씨는 고향으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타고 있었다. 그는 제8구르카 보병대 7대대 소속으로 이라크와 아프간 등에서 복무하여 실전으로 단련된 병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탄 열차가 정글 지역에 진입하였을 때, 40명의 떼강도가 열차에 난입, 열차에서 승객들을 총과 칼로 위협하며 금품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비슈누 씨도 강도들이 그의 지갑을 갈취할 때 까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는데, 강도단의 두목이 18세의 소녀를 그녀의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하려 들고, 소녀가 살려달라고 외치기 시작하자 조용히 쿠크리를 뽑아든 그는 먼저 강도단 두목을 덮쳐서 인간방패로 삼고, 장검을 든 강도들을 쿠크리로 베어버리고, 나중에 두목의 목도 베었다고 한다. 20여분의 사투끝에 세명을 죽이고 나머지를 열차통로를 따라 추적하면서 여덟명 이상에게 부상을 입히자 나머지 강도들은 모두 겁을 먹고 약탈품을 챙기지도 못한 채 달아났다고 한다.
싸우는 과정에서 그도 자상을 입었으나 다음 역에 도착하자 소식을 들은 경찰과 구급차가 달려와서 비슈누를 병원으로 후송했다. 경찰은 죽었거나 죽어가는 강도들을 수색하여 40여개의 금목걸이, 200여개의 휴대폰, 40여개의 노트북 컴퓨터, 1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찾았다고 한다.
비슈누 쉬레스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구르카 여단은 그의 퇴역을 일시적으로 보류하고 부대로 불러들여 표창하고, 은도금 쿠크리, 5만 루피의 포상을 했다. 인도 정부도 그가 잡은 강도에게 걸려있던 현상금을 수여하고, 그가 평생동안 비행기표와 열차표를 할인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강간당할 뻔한 소녀의 부모가 감사의 뜻으로 6천 5백달러를 주려고 했으나 그는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는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적과 싸우는 것은 내가 군인이기 때문에 한 일이고, 이런 강도와 싸우는 것도 내가 인간이이에 한 일일 뿐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구르카 용병들이 사용하는 쿠크리
구르카 용병과 무서운 살상능력을 가진 단도 '쿠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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