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8. 17:18ㆍ쓸모있는 상식
최후의 사무라이들이라고 불리는 신센구미(신선조, 新撰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그들의 특이한 점은, 적이 공격을 할 때, 일반적으로 사무라이들은 방어를 먼저 한 후에
공격을 하는데, 그들 신선조는 같이 공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즉, 상대방이 찌르기로 들어오면 비키지 않고, 팔 한쪽을 주더라도 바로 급소를 노려 일격에
상대방을 절명시키는 기술을 연마하였다고 한다.
그들이 이케다야 사건을 일으켰는데 지금도 사건이 일어났던 방의 문틀과 기둥에는 선명한
칼자국이 남아 있었다.
* 신선조 (新撰組)는 에도 막부 말기에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낭사들을 조직해 1863년에 만든 단체이다.
초대 국장은 세리자와 카모라는 인물이었는데 당시 신선조를 후원하던 아이즈번의 눈밖에 나는 행동을 자주했고 신선조 내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콘도 이사미 일파와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콘도 일파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히지가타 토시조의 지휘 아래 사이토 하지메, 오키타 소지, 토도 헤이스케 등이 그를 암살하게 된다.
세리자와 카모가 암살당한 뒤 콘도 이사미가 신선조 국장이 되었는데 이 후로 아이즈번으로부터 신선조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겐지 원년(1864)에는 이케다야 사건을 일으키는데 이는 신선조가 이케다야라는 곳에 모여있던 근왕파 낭사들을 습격한 사건이다. 이후 교토에서는 신선조와 근왕파 낭사들 간에 칼부림이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막부세력이 몰락하고 대정봉환을 통해 막부가 폐지되면서 신선조에는 위기가 닥치게 된다.
케이오 3년(1867)에는 사카모토 료마(유신 삼걸이라고 불리우는 인물들 중 하나)를 암살하기도 한다.
막부세력이 급격하게 몰락해 가면서 신정부군과 막부군 간에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국장 콘도 이사미가 참수되는 등 신선조는 완전히 붕괴되게 된다.[출처 :네이트 지식,zxcv332]
日本刀(사무라이 검)의 강함은 기관총탄을 연속으로 여러 개 쪼갤 정도로 강도가 뛰어나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작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인내심과 장인정신의 극치이다.
봉건영주에게 충성을 하던 사무라이들에게 칼은 그들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마도 사무라이들이 劒을 주문할 때 그 지역 최고의 장인을 선택하였을 것이고,
그들은 심혈을 기울려 검을 제작하였을 것이다. 가문의 명예를 걸고~
그래서 사무라이 검을 만드는 집안은 일본의 가업 승계의 전통에 의해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수백년을 내려왔다.
검을 만드는 과정은 쇠막대를 불에 달구어 큰 망치로 두드려서 불순물이 나오게 하고, 다시
그 것을 반으로 접어 두드리고, 쇠가 작아지면 다시 쇠붙이를 덧붙여서 두드리고, 다시 접어
두드리고, 이런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여 철의 불순물이 거의 제거된 고강도의 검이 탄생하는
것이다. 좋은 검은 제작기간이 약 6개월이 걸린다고 하는데 가격은 1억원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일본도 옆면에 물결무늬의 형태를 보고 그 것을 제작한 가문을 알 수가 있었다고 한다.
검의 등쪽에 난 길다란 홈통은 잔인스럽지만 검으로 상대방을 찔렀을 때, 그 홈통으로 피가
흘러 나오도록 비틀면서 빼면, 칼이 빨리 빠져 나오도록 그렇게 제작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잔인하다 ~
일본도의 종류와 사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타치(太刀)
가타나보다 약간 더 길고 더 휜 검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일부 서적이나 사료에 따르면 같은 검을 "칼날이 위로 향하게" 매면 가타나가 되고 "칼날이 아래로 향하게" 매면 타치가 된다고 부르기도 한다. 타치는 결국 가타나에 밀려 인기를 잃었다.
가타나 이전의 장검들은 평균적으로 78cm 정도의 칼날 길이를 가졌다. 가타나는 평균적으로 70cm 정도의 칼날 길이를 가진다. 가타나와 다르게 타치는 허리띠에서부터 "칼날이 아래를 향하게" 매었고, 주로 기병에 의해 사용되었다.
코다치와 오다치는 타치의 변형판이다. 타치가 와키자시보다는 길지만 쇼토 크기로 축소되면 코다치라고 불렀고, 본래 길이보다 더 길어지면 오다치라고 불렀다. 현존하는 가장 긴 오다치는 1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총 길이 3.7m(칼날 길이 2.2m)의 검이다. 하지만 이 검은 의식용으로 보인다. 1600년대에, 많은 오다치들이 가타나 크기로 잘려졌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타치는 복원되거나 다시 만들어진 것이며, 진품 타치는 희귀하다.
* 사용(使用)
타치는 주로 기병들이 사용했는데, 타치의 형태와 절삭력은 말 위에서 보병들을 베기에 적합했다. 근접전에서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말 위에서 사용할 때보다 어색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가타나의 선조인 우치가타나가 개발되었다.
타치는 가타나가 등장하기 전까지 봉건 무사 계급의 주 무장이었다. 나중에는 두 가지 형태로 분화되었는데, 그 두 가지는 칼을 어떻게 차고 다니는가와 칼날의 형태로 구분되었다.
일본 봉건 말기(센고쿠와 에도시대)에 유명한 전사들은 대부분 칼날이 아래로 향하게 차는 타치 스타일을 애용했다.
마츠사다 츠구야스가 1997년 주조한 다치. 코시레 형식. 헤이안 시대(11세기)의 기병도를 본따 만들었다.
비젠 오사후네 스케사다가 주조한 다치. 이쇼 12년(1515년) 2월 어느 날에 주조되었다. 칼집이 "아오가이-나시지"에 황금 장식이 되어 들어가 있다
* 와키자시
와키자시는 30-60cm 사이의 칼날을 가진 전형적인 쇼토(단검)이다. 일반적으로 50cm 정도의 칼날을 가졌다. 코다치보다는 조금 길고 카타나 보다는 짧다. 사무라이들은 주로 와키자시를 가타나와 함께 같이 차고 다녔다. 길고 짧은 검이 한 쌍을 이뤘을 경우 다이쇼라고 불렀다. 가타나는 "검" 혹은 "장검"이라고 불렸고 와키자시는 "동료 검"이라고 불렸다.
와키자시는 카타나보다 다양한 주크리 스타일과 크기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카타나보다 얇고 굴곡이 없었기 때문에 훨씬 더 공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가끔 츠바가 없는 와키자시도 있었다.
와키자시는 카타나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건물에 들어갔을 경우, 사무라이는 자신의 검을 뒤따르는 하인 혹은 시종에게 건네 주었다. 하인은 검을 받아 칼자루가 왼쪽을 향하도록, 그래서 칼을 오른손으로 쉽게 뽑지 못하도록 카타나-카케라는 진열대에 걸어 놓었다.
이 것은 사무라이의 오른편에 위치했기 때문에 사무라이는 자신의 검을 쉽게 뽑을 수 없었다. 이 절차를 밟지 않으면 주인에게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와키자시는 언제 어디서나 차고 다니는 것이 허용되었다. 마치 현대인의 권총과 같은 존재였다. 어떤 사무라이는 베개밑에 와키자시를 넣어 밤중의 야습에 대비하기도 했다.
전국시대 초기에는 탄토를 와키자시 대신 차고 다니기도 했다. 특별히 강한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무사들은 왼손에 와키자시, 오른손에 카타나를 들고 이도류를 행하기도 했다. 이것은 공격력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와키자시는 할복에 주로 사용되지 않았다. 할복은 탄토의 몫이었다
* 가타나
15세기 이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도(日本刀)를 일컫는 말이며, 일반적으로 가타나라고 하면 우치가타나(打刀)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가타나는 주로 곡선형이고 외날이며 주로 사무라이 계층에 의해 사용되었다.
가타나는 주로 와키자시(脇差)나 쇼토(小刀), 혹은 단토(短刀)와 함께 쌍을 이루어 사용되었다. 가타나와 와키자시처럼 긴 칼과 짧은 칼이 쌍을 이룰 경우 그것을 다이쇼(大小)라고 불렀다.
이것은 사무라이의 개인적인 명예와 사회적 권력을 상징했다. 가타나는 주로 탁 트인 전장에서 사용되는 주무장이었고, 나머지 짧은 칼들은 찌르기, 할복, 근거리 전투 등에서 사용되는 부무장이었다.
가타나의 곡선형 날은 찌르기와 베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양손으로 잡도록 손잡이가 설계되었지만 실제로 현존하는 거의 모든 검술 유파는 한 손으로 가타나를 쓰는 기술도 최소한 한 가지 이상 가르치고 있다. 가타나는 전통적으로 날이 위를 향하도록 차게 되어 있다
* 검과 도의 차이점
도(刀)는 모든 칼종류를 일컫는다. 부억칼 과일칼등등 식도 과도 해도 등
검(劒)은 무사 또는 군인들이 휴대하는 병기류의 칼, 순 무검
[출처 : 네이버 지식 heliconmoon ]
전통적인 방법으로 일본도를 만드는 동영상
일본의 유명한 전통 사무라이 칼 카타나를 제작하는 고바야시 가문의 검 제작 동영상
* 심장이 약한 사람은 아래 동영상을 보지 마시오
사무라이들의 검을 찬 옛 사진을 보면, 위에서도 설명이 되었다시피 긴 칼과 짧은 칼 두개를 칼날이
위로 향하도록 허리춤에 찬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마도 이는 넓은 곳에서는 긴칼로 승부를 하고, 좁은 실내 같은 곳에서는 짧은 칼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칼날이 위로 향하도록 한 것은 칼을 칼집에서 빼듦과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가격이 용이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이 된다.
만약 칼날이 아래로 향하였다면 아래에서 위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아래에서 위로 올린 다음 아래로 가격을 해야 하는데 이는 상대보다 한 템포 늦는 결과가 되므로 자신의 목숨이 짧은 순간이지만
위태로울 수가 있으므로 프로들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이것도 계산에 넣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쓸모있는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Full Container 船舶 (0) | 2011.04.21 |
---|---|
영화 멤피스 벨(Memphis Belle)의 주인공인 날으는 하늘의 요새 (0) | 2011.04.17 |
보이스 피싱에 동영상처럼 대처해보세요~ (0) | 2011.04.06 |
산불 좌절!!! (0) | 2011.03.25 |
원자력 발전소(atomic power station) 체르노빌의 참상!!! (0) | 2011.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