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9. 22:18ㆍ스크랩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 오염된 물을 마신 주민들이 병에 걸리고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물을 깨끗하게 정화해 마셔야 한다는 점을 알리는 캠페인도 중요하지만, 저개발지역의 가난한 주민들이 물을 정화할 수 있는 값싸고 손쉬운 도구를 널리 보급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오염된 물을 피해야 한다는 걸 알리는 동시에 간편하게 물을 정화하는 도구로도 쓸 수 있는 제품이 나왔다. 영국 BBC방송은 16일 일명 ‘마시는 책(drinkable book)’으로 불리는 정수용 필터 책을 소개했다.
이 책에는 왜 오염된 물을 마시면 안 되는지, 더러운 물 속의 박테리아가 어떻게 인간을 병들게 하고 목숨을 빼앗아가는지가 쓰여 있다. 책을 읽고 내용을 숙지한 뒤에는, 책장을 뜯어 정수용 필터로 쓰면 된다. 책 페이지에 은·구리 입자를 결합시켜, 박테리아를 걸러낼 수 있게 해놨기 때문이다.
이 획기적인 책을 개발한 것은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의 테리 댄코비치 연구원이다. 그는 여전히 세계 6억6300만명의 인구가 깨끗한 음용수를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에 주목, 빈곤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정수기 개발에 나섰다. 몇년 간의 연구 끝에 ‘마시는 책’을 개발했고, 남아프리카와 가나, 방글라데시에서 실험적으로 사용해봤다. 세 나라 25곳의 오염된 물을 걸러내는 실험을 했는데 박테리아의 99%를 제거하는 성공을 거뒀다.
댄코비치는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화학회 연례총회에서 이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BBC 인터뷰에서 “책장을 찢어서 병 입구에 놓고 강물이나 우물 물을 부으면 깨끗한 물이 된다”며 무엇보다 쓰기가 쉽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장으로 100리터의 물을 걸러낼 수 있으며, 한 권으로는 한 사람이 4년 동안 마실 양의 물을 정화할 수 있다고 댄코비치는 말했다.
책에는 영어와 현지어로 사용법을 설명해놨다. 인디애나주 노터데임 대학의 카일 더드릭은 “주민들에게 이 필터를 사용하면 무엇이 좋은지, 왜 필터를 써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 책이 널리 공급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댄코비치의 연구팀은 실험용 책을 모두 ‘수제’로 제작했다. 저개발국들에 보급하려면 대량생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저개발국 주민들이 에너지와 돈을 덜 쓰고도 생활을 개선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적정기술의 성공사례가 되려면 보급하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야 한다.
현지 사정에 맞게 개량하는 것도 관건이다. 일례로 방글라데시에서는 주민들이 ‘콜시’라 불리는 전통 주전자에 물을 받아뒀다가 마신다. 방글라데시에서 ‘마시는 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이 주전자 입구에 맞춰 크기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BBC는 지적했다.
[기사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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