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29. 17:35ㆍ스크랩
독일의 상징 폴크스바겐의 꼼수 배경?… 후진적 지배구조와 경영권 분쟁
"창업주 일가의 철통 지배와 골육상쟁, 한국 재벌 빼다박은 지배구조"
기업이 위기 맞을 때 후진적 지배구조는 기업 파국으로 귀결될 때 많아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YTN 객원 해설위원)
[데일리한국=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칼럼]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인 독일 폴크스바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런 세계적 기업에서 어떻게 그토록 유치한 꼼수를 동원했을까? 이 회사가 미국의 환경 규제를 피하기 위해 성능을 개선하는 대신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차에 내장한 최근 스캔들 얘기다.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폴크스바겐의 꼼수 배경은?
이 미스터리를 푸는 몇 가지 가설이 등장하고 있다. 우선 미국의 환경오염 규제에 대한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뿌리 깊은 반감 탓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들은 미국이나 일본 자동차 기업과 달리 차세대 내연기관으로 전기차나 하이브리드보다는 친환경 디젤을 선호해왔다. 1890년 디젤이 더 싸고 효율적인 엔진을 개발한 후 유럽은 이 내연기관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것이 모든 사람이 더 경제적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당초 자동차 산업의 취지에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환경 규제는 뒷전이었다.
다른 가설은 폴크스바겐의 목표 지상주의를 겨냥한다. 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가 설립한 이 기업은 독일 최대 기업으로 독일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어쩌면 폴크스바겐은 독일 그 자체다. 이 회사 입장에서는 독일을 위해 가능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동시에 많은 차를 수출해야 한다.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이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수많은 인수합병(M&A)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어코 지난해 그 위상을 차지했다. 그 과정에서 외국 정부의 규제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넘어서야 할 장애물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유력한 가설이 등장했다. 바로 폴크스바겐의 후진적 지배구조와 경영권 분쟁이 이 추문을 낳은 토양이 됐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자이퉁(SZ)은 이 회사의 지배구조를 북한 체제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권위적 리더십 스타일은 시대에 뒤떨어진 지 오래됐다.
창업주 일가의 철통 지배와 골육상쟁, 우리 재벌 빼다박은 지배구조
폴크스바겐은 포르쉐,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같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를 12개나 소유하고 있다. 관련 금융사까지 포함하면 자회사 숫자가 무려 50여개에 이른다. 이 거대 자동차 왕국의 지배자는 창업주인 페르디난트 포르쉐 일가다. 이들은 지주회사와 복잡한 연결고리를 통해 계열사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니더작슨 주정부, 그리고 카타르 국부펀드 정도가 일부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 덕에 경영진에 아사나 감사로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주 정부와 국부펀드는 경영에 참가할 뜻이 거의 없다. 노조마저 사용자 친화적이다. 창업주 일가는 견제 세력 없는 절대 유일의 통치자다.
북한 체제와 확연히 다른 점도 있다. 3대 세습한 북한 왕조와 달리, 폴크스바겐 경영진 내부에는 숙명의 라이벌이 존재한다. 이 점은 오랫동안 경영권 분쟁의 씨앗이 돼 왔다. 창업주의 손자 볼프강 포르쉐와 외손주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바로 그들이다. 이 둘은 2009년 폴크스바겐의 승리로 끝난 폴크스바겐-포르쉐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전쟁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동시에 서로를 이번 추문의 배후로 꼽는 주역들이기도 하다. 창업주 일가의 철통 지배와 골육상쟁.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 아닌가. 폭스바겐은 바로 우리 재벌의 후진적이고 권위적인 지배구조를 빼다 박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재벌 지배구조 규제에 대한 반론으로 종종 이 회사가 거론돼 왔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이나 정부 내에서 지배구조 규제를 논할 때면 관련 재벌이나 재벌 영향권 내의 싱크탱크는 어김없이 폴크스바겐의 예를 들었다. 이 회사의 지배구조가 후진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 아니냐는 항변이었다. 이를 통해 이들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지배구조와 경영 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지배구조와 기업 성과 상관관계는?
물론 대기업 지배구조라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 시대와 환경을 초월해 최적의 지배구조라는 구체적 형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배구조는 기업의 성장과 경제 환경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 규제와 사회 여론이 다듬고 기업 스스로가 적응해가며 완성된다. 하지만 지배구조와 관련해 분명한 점도 하나 있다. 정답이 없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오답은 있다. 즉 나쁜 지배구조는 있다. 지배구조가 지나치게 후진적이어서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때는 있다. 장기적으로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의 성과가 낫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다만 후진적 지배구조가 언제나 나쁜 결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기업이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별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특히 기업이 위기를 맞을 때 후진적 지배구조가 대기업의 파국으로 귀결될 때가 많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 재벌들이 그랬다. 당시 지배구조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었다. 창업주 일가가 더 많은 기업과 사업을 장악하겠다는 욕심에서 칡넝쿨처럼 계열사들을 얽히고설키게 만들어 놓았다. 이는 방만한 경영과 높은 부채비율로 이어졌다. 기업과 사업을 넓힐 때 유용했던 이 전략은 금융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한 기업과 사업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모든 것이 무너지는 구조였다. 결국 외환위기 당시 후진적 지배구조를 가졌던 재벌들 대부분은 무너지고 말았다.
폴크스바겐 스캔들은 그간 자동차 산업에 넘쳐났던 일회성 추문으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독일 기업이나 유럽 자동차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경기 회복을 쉽게 점칠 수 없는 유럽 경제에 또 다시 치명타가 될 것이란 불길한 예측도 나온다. 한 마디로 유럽 경제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뇌관은 폭발을 일으키는 물질과 장치를 포괄하는 말로, 폴크스바겐 사태를 설명하는 데 이 용어보다 더 나은 것도 없다. 우리로서도 재벌들의 후진적 지배구조가 우리 경제의 뇌관일 수밖에 없다.[원문출처 : 데일리 한국, http://daily.hankooki.com/lpage/column/201509/dh20150929092529141170.htm]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프로필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 대통령 직속 동아시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명지대 객원교수-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김방희입니다> 진행- KBS1 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 생활경제연구소장(현) YTN 객원 해설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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