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醫大 가는 한국 천재, 工大 가는 중국 천재

2015. 11. 11. 09:40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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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수 경제부 차장

연암(燕巖)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보면 청나라의 선진 기술을 칭송하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를테면 여행 중 민가(民家)를 구경하다 기와집 건축 기술에 감탄한다. 방수(防水)를 위해 기와 밑에 진흙을 두껍게 덮는 조선과 달리 기와만으로 방수가 잘돼 지붕이 가볍고, 굵은 기둥을 안 써도 돼 건물이 날렵하다고 평가한다. 온돌 구조도 비교 분석한다. 조선 구들장은 진흙과 돌을 대충 깔아 잘 갈라지고 열효율이 떨어지는 반면 청의 온돌은 벽돌을 바둑돌 놓듯 깔아 열기가 잘 퍼지고 오래간다고 부러워한다.

235년 전, 조선 천재의 부러움을 샀던 대륙의 기술은 이후 역사적 격동기를 거치며 진화의 맥이 끊긴다. 공산 혁명, 문화대혁명 등으로 중국이 헤매는 사이 한국은 산업화에 매진, 단군 이래 처음으로 기술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극적 반전은 당대에 막을 내리고 있다. 시장경제로 재무장한 중국이 어느새 기술 대국으로 굴기(崛起)하며 우리를 추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수출 산업 중 조선·철강·석유화학은 이미 치명타를 입고 있고, 반도체·자동차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중국은 첨단 기술이 필요한 고속철, 160인승 여객기까지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시진핑 정부는 향후 5년간 항공기 엔진, 뇌 과학, 심해 기술, 로봇 등 최첨단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한 R&D(연구·개발)에 천문학적 재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이란 호랑이 등에 올라타 기술 우위로 재미를 봐 온 한국 경제는 중국에 기술을 역전당하는 순간 미래가 암울해진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쓴 책, '축적의 시간'에서 진단한 중국 기술 굴기의 위협은 공포스러울 정도다.

반도체 설계 분야 석학 서울대 이종호 교수는 "반도체 분야의 회로, 소자(素子) 관련 최고 저널이나 콘퍼런스에 베이징대나 칭화대 사람들이 서울대 사람들보다 논문을 훨씬 더 많이 발표하고 있다"고 전한다.

"중국의 우수 학생들은 대부분 공대에 갑니다. 14억 인구 중에서 선발돼 베이징대, 칭화대 등 9개 최고 명문대로 진학하는 학생만 2만7000명에 달합니다. 한국의 5000만 인구 중에서 300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로 갑니다. 이런 인원을 제외하고 서울 공대에 온 1000명이 2만7000명과 경쟁할 수 있을까요?"(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설승기 교수)

의대로 가는 인재 3000명이 의료·의학 관련 산업을 일으킨다면 또 모르겠지만, 영리 병원 등 의료의 산업화는 규제에 가로막혀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그 결과 "똑똑한 인재들은 다 의대에 가고 병원에 있는데,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일에 몰두하고 있다"(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현택환 교수)는 한탄이 나온다.

유럽 역사를 보면 프랑스가 산업혁명에서 뒤처지고, 가난한 농업 국가였던 스위스가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난 것은 손재주 좋은 위그노(H uguenot·칼뱅파 신교도) 기술자들의 이주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종교 박해를 피해 제네바 등지에 정착한 위그노 장인들이 스위스 시계 산업을 일으켰다. 산업 경쟁력의 요체는 결국 사람이다. 핵심 기술 인력 양성과 기술 우위 확보에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렸다. 서울 공대 교수들의 진단에 따르면, 대륙 천재들의 추격을 피할 시간은 기껏해야 5년 정도 남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