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1. 10:22ㆍ살아가는 이야기
스님의 독경 소리에 맞춰서 스님들이 바라춤을 춘다. 사뿐사뿐 내딛는 발걸음마다 부처님의 가피가 가득하다.
통일대불 가는 길과 통일대불 주변에 국화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오후 5시부터 이곳 무대에서 법고대회도 열린다. 전국 총림에서 학승들이 그간 갈고 닦은 법고 치는 실력을 이곳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단다.
법고 대회에 앞서 수염이 하얀 스님이 엎드려 삼배를 한다. 객석에 앉은 중생들은 큰스님의 절에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르며 같이 마주보고 절을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대와 마주보이는 곳에 통일대불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 스님은 중생과 부처님께 동시에 절을 하였다. 양수겸장이라고 해야 하나?
그 스님은 40여 년간 선묵화와 함께해 온 경북 상주 달마선원장 범주 스님이라고 한다.
회색의 승복을 벗으니 안에 검은 옷이 있다. 처음에는 차력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바닥에는 아주 넓은 흰색 천이 놓였고, 스님은 커다란 냄비에 먹물을 담아서 작은 붓으로 선을 그린다.
봉걸레를 양동이에 빠는 것처럼 커다란 붓을 먹물이 담긴 양동이에 넣어서 가득 묻히고
관우가 조조 군사에게 언월도를 휘두르는 것처럼 쓱싹쓱싹 붓을 휘두르며, 달마를 그린다. 스님의 붓놀림은 거침이 없다.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다가 잠시 잦아들다가 다시 회오리가 일기를 여러 번 달마의 모습이 시방세계에 나타난다.
법고(法鼓)는 스님이 직접 치는 것을 보기도 했고, 녹음된 것을 많이 들어보았지만, 이곳 동화사 대불 앞의 야외무대에서 치는 법고는 속세에 지친 길손의 영혼을 두드리며 머릿속으로 사정없이 들어와서 마음을 흔든다. 이 스님은 첫번 째 순서의 스님인데 전혀 주눅들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장단으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중생의 심금을 울려준다.
그 어떤 장단에 비해 모자람도 없고, 지나침도 없으며, 때론 화려하게 때론 정교하게 북 가장자리 테두리를 건드리면서 가운데서 바깥으로 바깥에서 안으로, 때론 둥글게 때론 직선으로 이리저리 두드리는 법고 소리는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주인공은 해인사에서 오신 '지웅(?) 스님'이라고 한다. 길손은 그렇게 들었다. 맑은 모습의 그 스님은 "첫 번 째여서 떨리지 않았느냐?"는 사회 보는 스님의 짓궂은 질문에 "떨려서 죽을 뻔했다고" 하며, 원래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쳐야 하는데 그 스님이 도망쳐서 혼자 하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떠신다. 스님은 해인사에서 아랫방 스님들의 법고치는 것을 가르치는 속세의 말로 하자면 신입 스님의 멘토 스님이다. 그래서 역시 실력이 대단했다.
다음은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나왔다. 피아노처럼 같이 앉아서 동시에 치는 것으로 알았으나 교대로 북을 친다.
산사의 저녁 찬 기운에 견딜 수가 없어서 끝까지 있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연등은 불을 밝히고, 중생들은 들어가고, 또 나오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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