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유적지가 많은 시지(時至)

2017. 4. 1. 19:55살아가는 이야기

728x90

 

 

아침 8시경 이발하려고 자주 이용하는 이발소를 찾았으나 주인은 4월 6일까지 부재라고 작은 쪽지를 남기고 어디론가 떠났다. 집안에 우환이 없기를 바라면서 70대 초반으로 연세가 비록 많지만, 부인과 같이 열심히 살아가는 이용소 주인장은 아들과 딸을 잘 키워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데 아들과 딸, 며느리, 사위가 해외여행을 보내줘서 문을 닫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기왕 나왔으니 욱수천을 따라 거닐어 본다.

 

그런데 나무 위에 쌍둥이 까치집 같은 것이 보이는데 왼쪽은 작은나뭇가지가 보이지를 않는다.

 

 

 

 

 

자세히 보니 왼쪽은 말벌집이고 오른쪽은 까치집이다. 까치와 말벌이 이웃사촌으로 화목하게 지낼 수가 있을까? 말벌을 까치가 먹이로 삼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까치도 말벌이 어려운 이웃이겠지 이렇게 한 번이면 오늘의 얘기는 달라진다.

 

 

 

 

 

사월 초등학교 뒤편의 작은 오솔길을 따라 가는데 또 까치집과 말벌집이 이웃하여 있다.

 

 

 

 

 

또 왼쪽은 말벌집이고, 오른쪽은 까치집이다. 말벌과 까치가 공존하는 것은 아닐까? 까치의 육아기에 행여나 까치를 공격하는 동물을 말벌이 공격하여 자신을 지키도록 하는 그런 생각으로? 이것은 연구대상으로 남겨놓는다. 필경 무슨 연유가 있을 것이므로

 

 

 

 

 

 시지는 경산에 인접한 대구의 신도시이다. 노변지구 5천여 가구, 시지지구 9천여 가구가 대구 스타디움(구 월드컵 경기장) 주변으로 형성되었는데 말벌집이 있는 작은 산에서 앞에 보이는 아파트 쪽을 찍었다.

 

 

 

 

 

앞에 보이는 동서아파트는 선사시대 유적이 나와서 그것을 수습하느라고 주변 보성서한, 에덴, 두성아파트보다 2년 늦게 지어졌는데 시지지구 아파트 추첨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경쟁하여 당시 인기가 있던 33평형 아파트는 청약 우선순위를 가진 사람들의 경쟁률이 9대 1을 기록했다.

 

 

 

 

 

옛 제일합섬 연수원 자리에 또 유적발굴이 있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조사기관이라고 되어있다.

 

 

 

 

 

시지 노인전문병원이 오른쪽 지척에 있고, 왼쪽으로 성암산과 중앙으로 욱수골이 보인다.

 

 

 

 

 

 

유적지에서 걷어낸 흙들이 쌓여있다.

 

 

 

 

 

 

이곳은 무덤이 있는 곳으로 보이는데 만약 선사시대에 사람이 사는 환경이라면 이 주변이 명당이라고 주장해도 틀림이 없겠다. 땅이 척박하고 황량한 곳이라면 벌거벗고 살다시피 하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였을 테고, 무덤을 만드는 자리도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곳은 햇볕도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이다.

 

 

 

 

 

 

 

 

 

 

 

 

길손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토질이 이렇게 좋은 곳을 별로 보지 못했다. 우리 조상들은 흉년이 들었을 때 부드러운 흙을 먹었다고 하는데 이곳의 모든 흙이 아주 고운 입자의 찰진 흙이었다. 이곳의 흙을 가져다가 황토집을 지으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유적 발굴을 하다가 토요일이어서 잠시 중단한 곳에도 자갈 한 개없는 고운 흙이 깊게 있다.

 

 

 

 

 

 이곳은 또 특이하다. 파란색 칠을 한 부분과 바깥의 흙 색깔이 다른데 다른 곳에서 흙을 퍼와서 그런지 아니면 인골이 섞여서 그런지 참으로 이상한 흙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다닌 곳에 저런 안내판이 있다. 월드컵 대로를 잇는 큰 도로인데도 등잔밑이 어둡다고 오늘 처음 본다. 위는 시지 노인전문병원이다.

 

 

 

 

 

 

 

 

 

 

 

 

이곳에서도 가마터와 돌방무덤이 발견되었다. 시지는 과거 사람들과 현대인들이 공존하는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