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15. 08:00ㆍ살아가는 이야기
병원에 장기간 입원했던 모친을 집으로 모셔다주면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조부의 산소를 벌초하기로 하고, 부슬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예초기로 벌초를 하는 중인데 얼핏 뭔가 움직임이 보인다.
처음엔 산토끼인가 해서 봤더니 산토끼의 색깔보다 옅고, 동작도 기민하지 못하다. 만약 산토끼라면 벌써 멀리 달아났을 것인데~
근처에 인가는 없고, 요즘엔 시골에서도 닭은 기르지만, 토끼는 기르지를 않는다. 아마도 도회지 아파트에서 어린아이들의 간청에 못 이겨 새끼를 키우다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방생한다는 것이 이곳 산속에 살라고 버리고 간 것 같다. 그러나 요행히도 삵이나 너구리에게 잡혀 멱지 않고 저렇게 살아있는 것이 대견하다.
낫으로 나무를 베거나 예초기로 풀을 자르는 소음이 들리니 안으로 숨는다.
길손이 어렸던 시절에 여름이면 동네 선후배 친구들이 10여 명 모여서 인근 깊은 골짜기에 소를 단체로 몰고 가서 고삐를 목에 느슨히 감은 다음 스스로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도록 자유롭게 풀어놓았다가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각자의 소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소들도 각자의 성격이 달라서 어떤 소는 동료 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종종 찾지 못하고 내려오는 수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마을 어른들이 집합해서 초롱불을 밝혀 산으로 들어가서 소를 찾았었다. 십중팔구는 소를 찾는데 주로 외진 묘소에 홀로 서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호랑이 같은 포식자를 피하고자 그렇게 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우리가 인식은 하지 못하지만, 묘소 주인의 영혼이 가엾은 소를 지켜주는 것은 아닐까? 소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 연유로 저 토끼도 산소 옆을 떠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풀을 깎아 놓으니 저렇게 주변을 다니면서 칡 이파리 등을 오물거리면서 먹는다.
토끼가 올라간 산소는 길손의 조상이 아니다. 산소의 주인은 70여 년 전에 작고하신 분인데 그는 후사를 잇지 못해 양자를 들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30여리 떨어진 작은 도회지에 사는 80살 가까히 된 그 양자는 어떤 이유인지 이 무덤을 전혀 돌보지 않아 조부 산소를 벌초하면서 길손은 마음을 달리 먹었다. 두 산소가 마치 부부의 산소처럼 보이는데 조부를 봐서 벌초하기로 마음 먹고 비록 이제는 처갓집 산소 벌초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주고 있다.
그것을 안 묘소의 주인은 난데없는 토끼를 보내서 감사함을 대신 전하는 것은 아닐까?
62년 전에 막 환갑이 된 나이의 조부는 술을 좋아해서 복수가 차오르는 병(간 경화 추정)으로 일찍 작고하였는데 조부의 산소를 조성할 때는 옆의 묘가 보이지를 않다가 조부의 묘소를 만들고 나니 그쪽에서 부랴부랴 봉분을 다시 조성해서 마치 부부의 묘처럼 보였다고 한다. 참으로 기괴한 인연이다.
조부 산소 벌초를 마쳤다.
왼쪽이 기괴한 인연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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