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8. 08:30ㆍ여행이야기
버스를 타고 장백산(長白山)으로 가는 중이다. 길손의 눈에는 익숙한 모습이 들어왔다. 1970년대 초중반에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초가집을 슬레이트로 지붕 개량을 했는데 그 모습이랑 비슷한 점이 많았다. 중국인들은 그냥 맞배 지붕이고, 우리 조선족의 집은 맞배지붕이 아니다. 중국 정부에서 저렇게 구분하도록 허가 하였다고 하니 감사할 일이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 같아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조선족은 중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그들을 보고 동포라든지 아니면 조선족이라고 하면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고 하니 우리 국민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그들이 한국을 칭하면서 우리나라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으니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바깥을 촬영한다는 것이 그리 녹녹지가 않다.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 모드에 들어가면 그 장면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조선족의 무덤을 찍기 위해 여러 번 시도하였지만 건진 것은 이 사진밖에 없다. 야트막한 언덕 저 멀리 오른쪽으로 우리와 같은 모습의 묘소가 있는 공동묘지가 보인다. 이곳이 조선족 자치주라는 것을 실감한다.
용정과 화룡이라는 지역의 경계지역인데 이제 막 모내기가 끝난 듯한 모습이다. 논둑에서 못줄을 옮기면서 여럿이 구부려 벼를 심는 모습의 실루엣이 느껴진다.
갑자기 김소월 시인의 '접동새' 구절이 생각나면서 눈시울이 붉혀진다. 이곳은 북간도다.
접 동 새
김 소 월(金 素 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엣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웁니다.
이 시(詩)는1923년 3월 《배제》 2호에 수록된 김소월의 대표시 가운데 한 작품이다. 육친애의 정한을 노래하였다.
평안도 백천 진두강가에 살던 오누이가 계모의 학대받다가 그 누이가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고, 계모 밑에 남겨둔 아홉 오라비들을 찾아 밤마다 슬피 울고 다닌다는 민간 전설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전래 설화에 민요적 율격을 가해 한국인의 심정 속에 내재해 있는 민족혼을 공감하게 하는 데에 성공한 작품이다.
출처 : 접동새두산백과
국도를 가는 중간에 있는 어느 휴게소에 있는 간이 화장실이다. 푸세식 화장실이었는데 이것도 내년이면 없어진다고 한다.
이런 표현의 현수막과 간판을 여러 곳에서 보았는데 아마도 거악(巨惡)을 퇴치하여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이 아니겠나 싶다.
남자 화장실의 모습인데 앞에 문이 없어서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는 남자의 불알을 쉽게 볼 수가 있는 구조다. 겨울에는 불알이 얼어서 얼얼할 것이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겠다.
1960년대 국민학교 다닐 때 소변을 보던 생각이 났다. 나란히 서서 누가 오줌발이 센가? 하면서 고추를 쳐들어 위로 발사했는데 잘못하다가 제 오줌에 지 오줌 세례를 받을 수가 있었는데 옛날 생각이 잠시 나서 혼자 웃는다.
이제 어느덧 세월도 많이 흘러서 길손도 옛날을 상기하면서 발사를 했건만,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고 참 거시기 하게 올라간다. 저것도 까치발을 하면서 겨우 올렸다나 말았다나
여자 화장실은 그래도 문짝이 달렸다.
화장실 옆으로 '장백산 이산삼(移山蔘) 기지' 라는 표식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모두 그곳으로 향한다.
백두산 주변에서는 우리처럼 나무에 표고버섯을 키우지 않고, 목이버섯을 키우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산삼 씨앗으로 싹을 틔워서 키우다가 이곳으로 옮겨서 키운 것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반신반의한다.
이곳에서 어떤 여자가 드디어 사고를 쳤다. 꼭 못생긴 것이 제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고 설치고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 꼭 그랬다. 난장이를 겨우 면했으며, 뚱뚱한 몸에 키는 작고 있으나 마나 한 목은 어깨와 구부정하게 붙어있으며, 얼굴은 추하게 생겼고, 목소리는 탁해서 듣기도 거북한데 양기가 입으로 올랐는지 60대 중반의 그 여자 왜 그리 시끄럽게 항공기 비행 왕복 6시간 동안 쉴새 없이 지껄이고, 버스 타고 다니는 10여시간 동안 주변 생각하지 않고, 쉴 틈도 없이 공허한 말을 배설하던 그 여자!! 모두에게 민폐를 주었던 그 여자가 저곳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겠다고 쪼그려 앉다가 그만 산삼을 밟고 말았다. 못생긴 것이 산삼하고 사진을 찍으면 산삼처럼 고고하게 나오나? 무례함의 진수를 보여주고, 극강의 철면피의 표본이 되었던 대구 칠곡 어느 봉사단체에서 떼로 왔던 그 여자 일행들!! 혹시 이 글을 본다면 개과천선하길 진심으로 빈다.
50년 산이라고 한다. 50년 산은 4만 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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