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2. 19:42ㆍ지난 날의 추억
지금으로부터 약 30년전 쯤의 일이네요
정확히는 81년도 그 시절은 정치적으론 엄혹한 시절이었고,
일상의 생활도, 문화도 군사문화를 닮아가던 시절이었지요
2월 18일 육군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하고, 복직을 하였던 곳이 울산의 장생포입니다
장생포는 여러분도 잘아시다시피 고래고기로 유명한 곳이지요
발 빠르신 분들은 이미 12가지 맛이 난다는 고래고기를 드신 적도 있을 것이고..
지금은 장생포에 고래박물관이 생겼으나 아직 저는 보지를 못했답니다
장생포는 울산시내로부터 10여키로 떨어진 작은포구로서(항이라 하긴 너무 좁고) 한쪽으론
석유화학공단과 유공(지금은 SK), 다른 쪽은 작은 동네로 이루어져 있지요
좁은 포구로 넓은 곳은 150여 미터 길이는 약 1키로미터 정도로
작은 석유제품운반선, 석유운반선,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통선(통통배)가
주로 다니고 정박도 하는 곳이지요
혼혈 가수 윤수일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포경선은 일반 선박과는 달리 뱃머리에 작살을 쏘는 대포가 달려있고,
바로 뒤에는 고래가 숨을 쉴 때 내뿜는 물안개를 찾기위해
한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망루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정도로도 밑에서 보는 것보다 위에서 보는 것이 천양지차라네요
포경선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장생포항 빈장소에 장기간 폐선으로 방치되어 있던 왕년의 포경선을
장생포 고래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복원한 포경선입니다
지금은 국제협약에 의해 상업포경은 금지되었고
단지 시험조업 만을 허용하고 있는데, 남극에서 일본 포경선이
시험조업을 구실로 많은 고래를 포획하고 있는데
그린피스가 포경선이 고래잡는 것을 방해하고 있답니다
구글의 이미지검색에서 퍼왔습니다
한 때 고래의 저승사자였던 포경선
멀리서 고래를 발견하면 포경선에서는 바다속으로 고래들이 듣기 싫어하는 음향을 소나장비를 이용해서 발신하면서 고래추격에 들어간다네요.
고래는 물 속에서 오래있고 싶지만 듣기 싫은 음향때문에 도망가면서 자주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답니다.
고래의 속도는 19~20노트 정도인데, 그 당시 저 위의 포경선이 19노트의 속력이 나온다던군요
처음에는 까마득히 멀리있는 고래도, 도망치다보니 힘이 자꾸 떨어지고
숨이 차서 밖으로 나오는 횟수가 차츰 많아진다고 합니다.
고래가 대포의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포수는 작살 뒤에 튼튼한 줄이 길게 달린 작살을
쏘아 고래의 몸에다가 박습니다.
작살이 몸에 박힌 고래는 선혈이 낭자한 채로 작살 끝에 달린 밧줄을 끌면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도망을 치지요
포경선에서는 고래가 워낙 크므로 배위에 올리지를 못합니다
고래가 바다에 가라앉지 못하도록 고래 몸속에 공기를 주입하여
배옆에 달고 포경선의 본거지이자 해체장소가 있는 장생포항으로 돌아옵니다
장생포항에 도착한 고래는 해체를 위해 뭍으로 올려지고,
해체를 담당하는 해체공은 창처럼 생긴 긴칼로 고래를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에서 고래를 해체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퍼왔습니다.
포경선으로 고래를 잡는 장면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_JyLsInHKxo
http://www.youtube.com/watch?v=vHqIOOajgFw
그러면,
작살 끝은 고래의 몸에 잘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 뾰쪽하게 만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작살 끝이 화살촉 모양으로 뾰쪽하면 물 속에 잠수한 고래에게 작살을 쏘았을 때
뾰쪽한 작살은 물의 저항을 받아 각도가 틀어진다고 하네요
그래서 작살끝은 그냥 뭉툭합니다.
뭉툭한 것은 물 속에서도 휘지를 않고 직진을 하여
2~3미터 물 속을 지나가는 고래도 정확히 명중시킨답니다.
잔인하지만 우리가 소를 길러 도축하여 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겠지요
노련한 선원은 고래가 깊이 잠수하여 도망을 가도
바닷 속의 미세한 음영차이를 가지고 일반인 들은 구분을 못하지만
잠수하여 도망치는 고래를 보면서 다음 나올 지점을 예측하여
포경선을 움직인답니다.
뭉툭하면서 길게 생긴 작살의 주위에는
스프링으로 눌러진 날이 숨겨서 있지요
날을 안으로 넣고 겉에다가 끈으로 감아서 고정을 시켜놓으면
작살이 고래의 몸으로 들어갈 때 그 끈이 벗겨지면서 스프링의 힘으로
우산살처럼 안에서 펴져 고래의 몸에 단단히 박히는 것입니다
낚시바늘의 안쪽에 있는 미늘(물고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튀어나온 부분)을
생각하면 됩니다.
바다에 사는 포유동물인데 너무 잔인하지요?
이상의 얘기는 81년도 유명한 고래잡이 포수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이제 연세가 많아 아마 작고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울산 장생포에서는 지금도 고래고기를 팔고 있는데
주로 그물에 걸린 밍크고래랍니다.
바다의 로또라고도 하지요?
고래고기 맛본지도 하도 오래돼서 가물가물하네요~
장생포항의 100년 전 모습과 현재모습, 그리고 선사시대에 관한 사진이
"개뿔"님의 블로그에 있어서 퍼왔습니다.
[출처 : 개뿔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bj8133?Redirect=Log&logNo=80100038045
"작살이 (고래)등에 꽉 꽂히면 네가닥 갈퀴가 우산처럼 쫙 펴져. 그러면 제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없어. 당최 빠지질 않으니까…."
일흔이 넘은 포경선(捕鯨船)의 마지막 포수(砲手) 김용필(72)씨는 고래 얘기를 꺼내자 지칠 줄 모르고 말을 이어갔다. "작살 밧줄만 놓치지 않으면 잡는 거지. 길어도 30분이면 지쳐서 항복해…. 한창때는 포를 쏘면 열에 아홉은 어김없이 명중이었어…."
김씨는 국내 하나뿐인 고래탐사선을 타고 고래를 찾으러 다니는 유일한 전직 포수다.
- 1985년 상업포경금지 조치 이후 마지막 남은 포경선 포수 가운데 한명인 김용필씨가 국내 최대 고래잡이 기지였던 울산 장생포항 인근의 고래박물관 광장에 전시돼 있는 옛 포경선 작살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포 앞부분의 붉은색 쇠뭉치가 작살이다. /장생포=김학찬 기자
김씨가 포경선을 처음 탄 건 1950년대 말이었다. 국내 최대 포경 전진기지인 울산 장생포 부근에서 태어난 그는 자연스럽게 '포경선 포수'를 꿈으로 삼았고, 17~18세 때부터 고랫배를 탔다. 당시 청년들 사이엔 "고랫배 포수 할래? 울산군수 할래?"라고 물으면 "고랫배 포수 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당시 참고래 한마리가 쌀 300가마 값어치가 나갔으니 큰돈 만지려고 포경선으로 많이들 몰려들었다"고 했다.
1970년대 들어 고래고기가 일본으로 수출되면서는 '장생포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만큼 경기가 좋았다. 당시 솜씨 좋은 포수는 포경선 선주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였고, 한 달 월급이 100만원 넘는 포수도 상당수였다.
김씨는 조그만 목선에서 화장(조리사)과 세라(갑판원)를 거쳐 1970년대 초 꿈꾸던 포수가 됐다. 고랫배 탄 지 15년 남짓 만이었다. 그는 "고래는 눈으로 잡는데, 내가 제법 눈이 좋아 다른 포수들이 귀여워했다"고 했다. "고래가 있는 바다는 미세한 떨림이 있는데 그걸 잘 읽었다"고 했다.
그는 한해 평균 수십마리씩 고래를 잡았다. 밍크는 3~7월, 참고래는 8~10월, 귀신고래는 11~12월이 철이었다. "유명한 '장포수' 밑에서 포수 일을 배울 때 겨울 한철에 귀신고래 다섯마리를 잡기도 했고, 76자짜리(25m가량) 나가수(참고래)도 잡아봤다"고 했다. 당시 장생포항에는 김씨를 포함, 수십명의 포수들이 포경선 50여척으로 바다를 누볐다.
포수로서 최고의 솜씨를 뽐낼 때쯤인 1985년 상업포경금지 조치로 속절없이 일손을 놓았다. 마흔다섯 때다. 이후 포수와 선원들은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김씨도 장생포 바닷가에서 조그만 횟집을 차리고 작은 낚싯배로 고기를 잡아올려 생계를 이었다. 다행히 두 아들은 건축사로, 중견기업 직장인으로 반듯하게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 국내 연안 고래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그는 10여년간 고래연구소 도우미로 일했다. 연구소 고래조사선을 타고 보름에서 한 달씩 동해에서 서해까지 연안을 따라 고래목시(目視·눈으로 찾기) 조사에 참여했다. 올해부터는 울산 남구가 국내 처음이자 유일하게 운영중인 고래탐사선 '고래바다여행선'에 탑승해 관광객들에게 고래를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고래를 찾아 바다로 나선다고 한다.
한편 정부가 최근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우리 연안의 과학적 조사목적 포경 재개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옛 고래잡이 본거지였던 울산 장생포에서는 이를 환영하는 어민들과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이 맞서고 있다.
출처 : 인터넷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0/20120710003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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