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7. 11:18ㆍ살아가는 이야기
누가 500년 간 깊이 잠든 밀직사(密直司) 대감의 잠을 깨웠나? 고이헌 놈들!! 작지만 아담했던 유택이 주변 난개발에 의해서 깊이 잘려 나갔다.
안산, 대덕산, 성암산, 욱수산 줄기를 따라 내려오던 맥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고산서당(孤山書堂)이 있는 '고산(孤山)'을 향하다가 약간 우측으로 내려가는 곳의 혈이 맺힌 곳에 이 유택이 자리를 잡았는데 혈을 형성했던 줄기들은 모두 잘려 나가고 이제는 덩그러니 이 무덤만 외로이 있다.
2019년 1월 27일 이 무덤에 대해 포스팅 한 것이 있는데 이렇게 쓰여져 있다.
'고려국(高麗國) 정의대부(正議大夫) 밀직사(密直司) 좌승지(左承旨) 증(贈) 문하시중(門下侍中) 시의열교하(諡懿烈交河) 노공휘영수(盧公諱潁秀) 배(配) 정경부인(貞敬夫人) 평양 조씨(平壤 趙氏)로 비석에 쓰여져 있다. 그러니까 '노영수'라는 분이 이곳의 주인이 되겠다. 인터넷을 뒤지니 경산 문화 대사전에는 노영수라는 사람은 교하인으로 고려 충렬왕 때 과거에 올라 벼슬이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의열(懿烈)이다. 묘는 경산읍 중산동 서편에 있다.'
밀직사 대감의 바로 뒤에 있는 무덤인데 그냥 문인석만 있고, 비석도 따로 없고, 밀직사 대감의 비석에 부좌'祔左'의 글귀가 따로 없는 것으로 보아 부후(祔後)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마 이 무덤의 주인은 노영수 대감의 부인 평양 조씨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문인석이 원래보다 많이 뒤로 밀려났다. 앞쪽에 빈터가 거의 없어서 보기가 조금 그렇다. 교하 노씨 후손들이 이 무덤을 보존하기 위해 열심히 뛰었겠지만, 탐욕이란 괴물은 가문의 자랑스러운 선조를 모시는 갸륵한 마음을 그저 철 지난 꼰대 생각이라며 무시한 것임에 틀림없겠다.
길손의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문인석이 슬픈 얼굴을 하고,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아래는 2019년 1월 27일 이 무덤에 대해 포스팅 한 것이다.
blog.daum.net/oneshot1022/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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