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4. 10:36ㆍ살아가는 이야기
욱수골 초입에 '욱수골 사랑채'라는 식당이 있다. 그 식당에는 늘 시무룩한 표정으로 한결같이 앉아 있는 강아지가 있는데 이름은 '복실'이다. 수컷인데도 암컷의 이름을 붙인 연유를 알 수는 없으나 이 개는 일곱 살인데도 불구하고 맹인(盲人)도 아니고, 사나운 개인 맹견(猛犬)은 더더욱 아니고, 눈이 먼 맹견(盲犬)이다.
복실이는 백내장으로 눈이 멀었다. 2~3년 전에 눈이 아주 멀기 전까지는 내가 가뭄에 콩 나듯이 같이 욱수골을 따라 산책도 했었다. 그런 복실이가 불쌍하기도 한데 내가 산책을 하러 가면서 복실이네 집 앞으로 지날 때는 일부러 발소리를 내지 않고, 식당 앞의 도롯가에서 가만히 서서 그 녀석의 동태를 살피는데
바람에 날려오는 나의 체취를 알았는지 길손이 서 있는 방향과 다른 엉뚱한 곳을 보고 짖기 시작한다. 그 작은 도로는 평일에는 약 1천 명 정도의 사람이 오가고, 주말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지나다니는데 어떻게 나의 체취를 맡았는지 그저 경이롭다. 뭇 사람들에게는 못생긴 강아지인데도 작은 머리에 사자의 갈기를 가지고 있어서 비록 눈이 멀었지만, 이 녀석을 찾은 암컷 개가 종종 있었고, 심지어 임신까지 시킨 일도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면서 가까이 가니 바람결에 날려오는 냄새는 맡았는데 어느 방향인지 잘 모르고 뒷발로 버티고 서서 앞발로 어서 오라는 환영의 액션을 한다. 아직 젊은 나이의 강아지가 봉사가 되어서 안타깝지만, 어차피 복실이에게 닥친 운명이니 그저 옆에 붙어 있는 '불광사'의 범종소리를 자장가 삼아 듣고, 다음 생에서는 좋은 몸을 받아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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