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2. 23:13ㆍ지난 날의 추억
논산 제2훈련소에서 이등병을 갓 달고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 제일 큰 항구가 있는 부산입니다.
여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피서객이 몰리는 해운대에서 부산에서는 제법 큰 산 '장산'을 넘으면 내가 후반기 교육을 받았던 병참학교가 있습니다.
3년 전쯤 직장 업무때문에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부산항쪽으로 가는 유료도로를 들어선 것 같았는데 좌측으로 그 산이 보이더군요. 와~~ 정말 놀랐습니다. 과거에 학교 뒤로 가마득히 높은 곳에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궁금하였지요. 아마 주민들은 걸어 다녔을 것입니다. 그렇게 높은 6~7부 능선쯤에 동네가 있었으니 신기할 수밖에요. 그런데 그런데~ 그곳이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어있네요. 온 산에 아파트들이 즐비하여 눈을 비비고 보았는데 그 산속마을에 어느새 아파트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습니다. 부산 갈매기들 참으로 장하고 대단합니다.
부대 바로 앞에는 그 당시 대우그룹의 모태가 되었던 대우어패럴이 있었다고 기억이 됩니다. 부대가
대전에서 이사와서 막 짐을 푼 상태라 건물은 덩그러니 서있는데 주변환경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내 평생 그렇게 큰 바위와 돌들이 많은 곳은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달랑 건물만 지어놓고 이사를 했는데 지금 같으면 포크레인이나 불도저로 연병장이나 도로를 정비하면 간단 할텐데도 군대 특유의 비용개념이 없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공짜 인력이 있으니 그것으로 하려고 한 것입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오전 학과시간이 끝나면 점심먹고, 7월의 땡볕에 연병장으로 사용할 곳으로 돌을 캐러 내몰립니다. 장비라고 해야 삽이나 곡괭이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디스크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는 전우는 반말짜리 주전자에 미지근한 물과 컵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늘도 없이 쏟아지는 햇볕에 고스란히 일광욕하면서 가슴깊이의 고랑을 파고 있는 전우들에게 물을 줍니다.
배수로를 만든다네요. 비가 오면 물이 밑으로 잘 빠지게 한답니다. 누가 그런 아이디어 냈는지~~
끄~엉~~ 어이그~~ 정말로 환장해요``!!
그렇게 넓은 연병장에 가로 10미터 간격으로 넓이 약 2미터, 깊이 어른 가슴 깊이, 길이는 족히 100미터나 되는 긴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큰 자갈과 바위들을 다시 넣어 비가오면 배수가 잘 되겠금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산에는 바위와 원수가 졌는지 온통 바위투성이였습니다. 댓고라는 강철지랫대로도 엄두를 못내는 바위들이 수두룩 하였으니 오후 작업이 정말 강제노역장 같았습니다. 아마 지금 그곳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은 그곳을 거쳐간 선배들의 땀과 희생을 알지도 못할 것입니다. 몇주동안 정말 디지게 고생을 했습니다.
워낙 가뭄이 심하다 보니 수세식화장실의 물공급도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서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병참학교가 오기전에도 부대가 있었나 봅니다. 허름한 스레트 건물에 재래 푸세식 변기가 3개 정도
있는 야외 화장실이 있었는데.. 참혹하였습니다. 그 더운 여름에 병사들의 변이 넘쳐나서 시멘트 벽돌을 그 변위에다 놓고 일을 보고, 그 위에 또 보고, 또 시멘트 벽돌을 얹고,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거기서 해결하지 못하면 안되니 여름철 더운날씨에 숨이 막히는 냄새를 무릅쓰고, 벽돌위에서 서커스를 하면서 배설을 해야하는 인간적인 고통과 치열함~~
후반기 교육에서는 소대라는 표현이 아니고, "구대"라는 표현을 하더군요. 1구대, 2 구대, 3구대.....
큰 건물에 좌, 우측에 주 출입문이 있고, 그 양쪽으로 2개 내무반(구대)이 마주보고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출입문이 없이 터인 것입니다. 구대 내무반은 2층으로 높이 만든 마루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점호를 하면 아래, 윗층 나무마루에 앉아서 점호를 하였지요.
그러니 복도를 지나 다니면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두 볼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의 동기들 100명 남짓한 전우들이 찍은 흑백단체사진이 있는데,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전우들이 총각의 모습으로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그중에서 못 잊는 전우가 한 사람있었지요. 2층 내옆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군대 오기 전부터 디스크를 앓고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군대가 면제 되었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아프다고 하여도 누구하나
눈여겨 보아준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저 꾀병이라고 야단만 맞았겠지요. 밤마다 신음을 하면서 진땀을 흘리는데 보는 내가 더 안타까웠습니다. 의병제대를 신청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의무병에게 진통제를 타다 먹는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고개를 돌리려면 온몸을 돌려야 하고, 허리를 굽히지도 못했던 그가 계속 군대생활을 하였는지, 아니면 의병제대를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서울 혹은 경기도가 고향이었던 마음씨 착했던 그 친구가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보고싶네요.
부디 허리 디스크가 나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음에 계속)
'지난 날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생활 에피소드(12) (0) | 2011.08.14 |
---|---|
군생활 에피소드(11) (0) | 2011.07.31 |
추억의 공기총 사냥!! (0) | 2011.07.12 |
군생활 에피소드(9) (0) | 2011.07.07 |
군생활 에피소드(8) (0) | 2011.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