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땅, 누구나 가는 중국여행(1)

2011. 8. 3. 16:58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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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TBC 중국 문화탐방이란 여행상품을 보고 중국을 가게 되었다. 북경과 장가계와 원가계 그리고 진시황릉이 있는 西安이 목적지다. 중국은 홍콩, 심천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약간 기대가 되었는데 역시나 도착하여 보니 화장실, 물 등 불편한 것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뭔 나라가 INPUT 은 책상다리 빼곤 다 먹고, 온갖 산해진미로 식도락을 즐기면서 OUTPUT에서는 왜 그리 둔하고 신경을 안써는지 못써는지 관광 중에 행여 배탈이라도 나면 큰 곤욕을 치룰 수가 있으니 중국여행에서는 유념해야 한다. 북경올림픽 이후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얼마나 달라졌을라꼬?

 

호텔 밖을 나설 때는 뱃속에 있는 저장물을 최대한 뽑아내고 다녀야지 공중화장실에 갔다간 큰 곤욕을 당한다. 화장지는 고사하고 냄새는 왜 그리 지독한지~

 

특히 내가 문화적인 충격을 받은 곳은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 앞의 화장실에서다. 천안문에 모택동의 사진도 떡 하니 걸려있고, 모든 나라 사람들이 찾는 이곳의 정문 앞 지하 화장실 꼬락서니를 보니 이건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다. 우리 같았으면 이렇게 두었다간 시청공무원 몇명은 족히 시민들의 원성에 씹혀 제 명대로 살지도 못하였으리라~ 암튼 참 처절하도록 더럽고, 두 번 다시 볼 생각 없는 풍경이었다.

 

2년 전인가 어떤 가십성 기사를 보았는데, 또 예의 그 천안문 앞의 화장실에서다. 여자화장실에 문짝을 누군가 다 떼어갔단다.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화장실 문을 차압딱지 붙일 리도 없을 거고, 도둑이 그 문짝 팔려고 가져가지도 않았을 터인데 하여간 문짝이 모두 없어졌으니 외국인 코쟁이 여자 관광객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생각해 봐라!!  좌변기 아닌 화식 변기에 생리현상을 해결하려고 쪼그리고 앉으면 앞 2~3미터 앞에 정면으로 줄지어 서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아짐씨나 아가씨들이 보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서로 빤히 보이게 되어 있겠지.

 

화는 머리 끝까지 나지만 생리현상은 다급하고, 급한 김에 갖고 있던 파라솔을 펴서 앞을 막아 중요한 곳은 가리고 일을 보았다고 하니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중국여행의 첫 인상을 이렇게 나쁘게 시작하니 친중공인사들은 못마땅하겠지만 고칠 것은 고쳐야 그들도 미래가 있다. 아무리 인공위성 쏘고, 고속전철 달리면 뭣하나? 생활방식은 미개인 비슷한데~

 

 

 

베이징 상공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밑으로 보이는 벌판이 넓긴 넓다. 농사를 지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기계화를 하던지 할 것인데 그런 점은 부러웠다.

 

 

 

자금성의 뒷문으로 들어가서 앞문인 천안문 쪽으로 구경하면서 나왔는데 담장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이건 높디 높은 성곽이다. 사진이 없어서 참 유감이다. 뒷문에서 조금 들어가니 천자가 집무를 보는 곳과 침전이 있었다. 우리와는 달리 기왓장 색깔이 전부 황금색인데 어떻게 구웠는지 궁금하다. 우리도 그렇게 흉내내고 싶었겠지만 대국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겠지~

 

저들은 '황제' 우리는 '임금', 저들은 '폐하', 우리는 '전하', 스스로를 칭할 때 저들은 '짐' 우리는 '과인' 사소한 것까지 까탈을 부렸으니 기왓장 색깔도 똑같이 못하도록 하였으리라

 

폐하, 전하, 각하의 유래

 

 폐하(전하(殿下)각하(阁下) 등 호칭은 우리들에게 낯설지 않은 존칭들이다. 그러나 존칭이면 왜 ()를 쓰는가? 당연히 ()을 써서 존경을 나타내야지 어떻게 황상(皇上)폐하(陛下)로 되었을까?

 

원래, 이상의 존칭의 본래 뜻을 고증해 보면, 폐하는 황제 본인을 부르는 말이 아니었다. 이는 전하, 각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폐하()는 실제로는 제왕의 궁전 계단을 지칭하는 말이다. 동한(东汉)의 대문학자 채옹(蔡邕)문희(蔡文姬)의 부친의 해석에 따르면, 황제는 근신들로 하여금 병기를 들고 궁전 계단 아래에 지키고 서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계단()의 아래(下面)는 황제의 근신들을 의미한다. 채옹(蔡邕)은 더 나아 가서 해석하기를 : 폐하라고 하는 말은, 일반 신하들이 천자와 말을 하고자 할 때 감히 천자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계단 아래(陛下)에 있는 자를 불러  ()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 자기를 낮춤으로써 존경을 나타내는 의미인 것이다.

 

황제는 지고(至高)하고 무상(無上)하여, 신하들은 감히 직접 그와 말을 주고 받을 수가 없었던 관계로 황제의 근신이 대신 전달하여야 했다. 따라서 폐하(陛下)라고 부를 때는 황제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계단 아래(陛下)에 있는 사람을 불러 황제에게 전해 달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규칙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인 바, 신하들도 절대적으로 황제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게 되었다. 다만, 예의를 지켜야 했고 따라서 황제와 말하기 전에 폐하(陛下)라는 한 마디를 붙임으로써 공경의 뜻을 나타내었다. 폐하(陛下)의 문제가 해결 되고 나면, 전하(殿下)각하(阁下)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이러한 존칭의 뜻은 사실 모두 동일한 것이다. , 자신이 감히 상대방과 직접 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 대신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전하(殿下)는 일반적으로 황태후, 황후, 태자와 여러 왕들에게 사용되었는데 또한 시대와 왕조에 따라 약간 다른 경우도 있었다. 각하(阁下)는 일반인들에게 사용되었는데 오늘날에도 외교에 사용되고 있다. 그 밖에, 족하(足下) 역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칭이지만 폐하(전하(殿下)각하(阁下)의 해석과는 완전히 같지는 않다.

 北京晨报20070621

 

[출처 :中原居士 님의 블로그 ttp://blog.daum.net/yspahk/12159366]

 

 

또 이런 해석도 있다. 각 단어에는 어떤 장소에서 엎드려 우러러 본다는 뜻으로

 

 

 *폐하(陛下) : 황제와 황후의 칭호로 사용되며 뜻은 "돌계단 아래에서 조아리다"

                   

 *전하(殿下) : 왕과 왕비의 칭호로 "전각 아래에서 조아리다"

                    

 *저하(邸下) : 왕세자 왕세손의 칭호로 "저택 아래에서 조아리다"

                 

 *각하(閣下) : 근래 대통령에 대한 칭호로 "누각 아래에서 조아리다"

                   

 *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아래'下' 자는 아랫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라고도 한다.  

 

    

 

일행들이 궁궐구경을 마치고 정문 쪽으로 거의 다 나왔다. 아마 구경하지 않고 계속 걸어 나와도 30분은 족히 걸리리라. 양옆으로 서 있는 나무들은 일본아카시아 종류이었던 것 같은데 온 북경의 가로수 꼬락서니가 저 모양이다. 가지치기도 엉망이고, 쉴만한 그늘도 없다. 그래서 왜 한국의 궁궐에는 고목이 무성한데 자금성에는 나무가 없나? 라고 질문을 하자 대충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옛날 주변에 있는 토호국의 왕이나 사신들이 공물을 가져오거나, 아니면 어려운 사정을 하소연하려고 아침에 천자를 만나고자 하면 우선 천안문 바깥 나무도 한그루 없는 땡볕에 한나절을 물 한모금 주지 않고 서서 기다리게 한단다.

 

그리고 오후 쯤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는데 역시 그늘은 눈씻고 봐도 어디에도 없다. 터덜 터덜 걸어서 大殿에 도착하여 천자 앞에 서면 저절로 무릎이 꿇어진단다. 당연하겠지 한여름 뙤약볕에 하루종일 물 한모금 없이 서 있다가 걸어들어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게 이유란다. 나원참~~ 우리 선조들도 저런 곤욕을 겪지는 않았을까? 약소국의 비애가 느껴졌다. 아마 다른 이유도 쬐금 있겠지 자객이 나무 위에 숨지 못하도록...

 

 

황제가 집무를 보는 용상(?)이다. 앞에 엎드려서 보면 얼굴도 제대로 파악이 안될 듯하다 멀어서..

 

 

천자의 침실인데 황제의 사생활은 전혀 보장이 되지 않았단다. 무슨 짓을 해도 옆에서 듣고, 빤히 보고, 개같은 짐승들도 중요한 순간에 사람이 빤히 쳐다보면 엉덩이가 서로 붙어 불편해도 도망가려고 애를 쓰는데..

 

 

반 자연, 반 인공호수인 보봉호수인데 나룻배를 타고 지나자니 이 처자가 안에서 급하게 나와 우리쪽으로 보면서 우리는 알지 못한 노래를 부른다.

 

 

 

보봉호수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콘크리트 건물계단과 절벽을 따라 내려왔는데 보봉호수의 깊이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세계 제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만리장성,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세워진 만리장성이 옛날에는 야만족을 막았다면 지금은 중국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외국관광객을 불러들이니 옛사람들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진 않았다.

 

 

북경 관광을 마치고 장가계를 보기위해 북경공항에서 '장사공항'을 향해 날아가는 항공기, 창으로 보이는 노을 빛이 집 떠난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기내에서 옆 좌석에 앉았던 중국 어느지방의 공무원, 출장중이라고 한다. 화장실은 그래도 이 친구들은 그래도 멀끔하다. 자신들의 명함 1장씩을 주는데 둘다 인상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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