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1. 11:52ㆍ지난 날의 추억
내가 앞으로 생활하여야 할 부대는 보통의 군인들이 선망하는 부대였다. 최전방으로 안간 것도 다행인데 일반 육군부대들 중에서도 고된 훈련이 적고, 외출 외박도 보장되는 좋은 조건의 부대였다.
오산에는 제일 댓방이 별 두개였는데, 고향쪽으로 내려오니 그곳 댓방은 별 하나였다.
짚차나 승용차에 달려있는 붉은 성판에 은빛 반짝이는 별!!
[사진출처 : 비밀의 궁금해요 님의 사진]
지금은 별 하나 가지고 시내 주행하면서 힘줄 일이 별로 없겠지만 내가 근무할 당시는 저 별판을
자세히 보지도 못했다. 별을 단 장군의 얼굴은 더더욱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고,
혹시나 보초설 때 지나가면 목이 터져라고 "멸공"하면서 받들어 총 했던 기억만 있다.
어쨌던 별 하나가 지휘하는 댓방부대에 열명정도가 도착을 하였다. 특이한 것은 부대막사 건물이었다.
식당이나 숙소는 시멘트 블록조 건물인데 사무동들은 농촌 비닐하우스에다가 겉에 양철을 덛붙여 놓은 형상이었다.
인사담당부서에 가니 사병계 행정병이 개인신상카드 비슷한 것을 적으라고 했다. 또박 또박 글씨를 쓰니 그가 눈여겨 본다.
" 야!! 이넘 글씨 잘 쓰는데 나중에 차트병으로 쓰면 되겠다!!"
"..............................."
이 일때문에 나중에 잘 지내던 자대에서 몇개월 후에 다시 불려와 일주일간 심각하게 군대생활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다가 인사처장(소령)이 원대복귀 시키는 바람에 자대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하루종일 빈둥대다가 드디어 내가 30개월 정도 복무해야 할 포대가 정해졌다. 조그만 쓰리쿼터를 타고 도착하니 얼핏 양키동네에 온 기분이다. 주변에 미군들 막사가 있고, 미군들이 자주 왕래한다.
부대보급병이니 당연히 행정반이다.
행정반과 붙어서 포대장실이 있고, 행정반에는 부관인 중위가 1명, 인사계라고 불리는 상사 1명, 보급관 중사 1명이 있었고, 일반행정병 1명, 작전병 2명, 2.4종(이사종계)병장 1명, 나보다 2개월 정도 빠른 이사종계 이등병 보급병 1명, 1종계 1명 연락병 1명 등 대충 이렇게 행정반이 구성되었다.
행정반 병 중에서는 우리 사수가 병장으로 제일 선임이고, 중사인 보급관까지 있어서 당시 일등병인 작전병과 일반행정병은 이등병인 우리를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눈치를 보는 그런 환경이었다.
몰래 이등병인 보급병을 심부름 시키다가 병장에게 걸리면 야단이 났기 때문에 비교적 편한 분위기에서 행정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일단 부대에 정착하니 취사반 인원이 부족했던지 이사종, 일종, 취사반까지 관할하는 중사가 나에게 취사반 일을 도우라고 지시를 하여 취사반 일을 거들었는데 이거 정말 보통 고역이 아니다.
현재도 "급양병"이란 주특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병사들의 노고를 알아야 한다.
비록 보초에선 제외가 되지만 새벽부터 일어나서 밥을 짓고, 밤 늦게까지 다음날 식사준비를 하여야 하니 남들 취침시간 이후에 들어오는 것이 예사였다.
공휴일이 되면 일반 주특기 병사들은 휴식을 취하지만 노는 날이라고 굶을 수는 없지 않는가?
명절때도 장화를 신고, 흰가운을 입고 작업을 하는데 군인표시가 나는 것은 딱 하나 "모자"뿐이다.
다른 병과 병사들한테도 은근히 멸시를 당하고, 행여 밥이라도 모자라면 지휘관에게 야단이나 맞고,
그런 곳에서 근무했던 후임이 얼마 전에 어떻게 알고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모두가 그립단다. 육군본부 홈페이지 전우찾기에 전우찾는다고 하였더니 같이 취사반에서 일했던 동기를 찾았다고 기뻐한다. 물론 사회인이지만 나는 말을 낮추고, 그는 말을 높이고... 군대에서의 고참 쫄병은 사회에 나와서도 좋은 기억이고 추억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죽을 맛이었겠지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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