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7. 23:37ㆍ지난 날의 추억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그대 노을 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여 주고파~~"
"어느 작은 산골소년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듣노라면 중년인 이 사람의 가슴도 옛생각에 설레인다.
모든게 풍족하지 않고 고단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까만 교복과 교모를 쓰고 30리 길이 넘는 학교를 자전거로 통학을 하였다.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중학교가 있었지만 郡에서 명문으로 불리는 한 학년에 7반이 있는
비교적 큰 중학교로 진학하여 그렇게 먼길로 학교를 다녔었다.
중학교 때는 철없이 그럭저럭 지나갔는데,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사춘기가 되었는지, 온통 머리 속에는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크게 자리를 잡고서는 떠날 줄을 몰랐다.
어느 해 여름방학인가 같이 국민학교를 다녔었던 아랫동네의 여학생이 서울로 유학을 가서
친구들을 여러 명 데리고 고향 집에 같이 내려와서 지내고 있었다. 그녀의 집안은 비록 시골이지만
일제시대 때 조부가 면장을 하였고, 아버지와 삼촌들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온 엘리트 집안이었다.
표준말을 사용하는 뽀얀 여학생들이 방학내내 몰려다니면서 하하~ 호호~ 하고 다니면
애가 단 나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그녀들을 먼발치에서 그저 못오를 나무를 보는 것처럼
위축되어 지냈었다. 시골 땡볕에 까무잡잡하게 얼굴이 탄 촌넘이 감히 그녀들을 마주 쳐다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국민학교 다닐 때는 그저 그렇던 그녀가 서울로 학교를 간 후에는 제법 처녀티도 나고..
뽀얗게 변한 피부가 천상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찌 어찌해서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의 집에 남겨두고, 둘이서 한적하고 외진 개울가를 찾아
돌로 쌓은 방천 큰 나무그늘에 같이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향이 좋은 비누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였고, 나는 반쯤 얼이 빠진 상태로
비몽사몽간에 그렇게 몇시간이 흘렀나 보다~
이윽고, 그녀가 늦었다며 집으로 돌아가자는 소리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둘이서 마을 가까이 돌아왔는데,
그녀가 갑자기 " 내 손수건~~!!!!" 한다.
아마 나무그늘 밑 넙적한 돌 위에 앉을 때 손수건을 펴놓고 앉았었나 보다.
"내가 가져올까??"
" 아니 괜찮아 다른 것 사용하면 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에헤라 디야~~!!!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네~~!!!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담모퉁이로 사라지는 순간!!
난 누가 나보다 먼저 그녀의 손수건을 주워갈세라 한달음에 돌아왔던 길을 되짚어
둘이 같이 앉았던 곳으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더운 날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목에서는 쇤소리가 났다.
정신없이 논길과 작은개울을 건너 그곳에 도착하니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는 이쁜 손수건이 그녀처럼 수줍게 다소곳이 놓여있다.
얼른 손수건을 집어 들고 코에다 대어보니 아직도 그녀의 향취가 진하게 배어있다.
아~~ 하고 단발마의 짧은 신음이 내 입에서 새어나온다.
나는 다음에 그녀를 만났을 때도 손수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시치미를 뚝 뗐다.
그녀는 이미 손수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 하였다.
나는 그녀의 손수건을 보물처럼 책상서랍 깊숙한 곳에 고이 고이 모셔두고,
방학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간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그 손수건을 내 얼굴에 대어보면서
그녀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생각하면서 그리워했다.
그 손수건은 내가 군대를 가고나서 내 생각에서 지워졌다.
산골소년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때 그 시절 생각이 난다.
그녀와는 그후로 소식이 끊어졌지만, 가끔씩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녀의 집안은 그후로 가세가 기울어져서 여름 방학 때가 되면 서울 소녀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대궐처럼 컸던 웅장한 그녀의 옛집도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세월의 무상함만 그 자리에 남았다.
www.youtube.com/watch?v=PT9s8BiTX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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