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깊은 신원사(新元寺)

2012. 8. 29. 23:22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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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밖에는 작은 가랑비가 이슬처럼 내리듯 말듯 내린다.

웃는 얼굴로 사위를 맞아 줄 장모님도 지금은 계시지 않으니 처갓집, 쓸쓸한 생각이 든다.

어제 마신 술로 숙취가 있는 상태인데 문득 신원사가 가고싶다.

 

계룡산을 덮고 지나가는 운무가 변화무쌍하다. 몇년 전에 스위스 융프라우 요흐 정상에서 보았던 변화무쌍했던 구름이동과 유사하다.

 

  

 

신원사 올라가는 길, 운무 속에서 멀리 계룡산 정상 철탑이 보인다.

 

 

 

 

 논 가운데 특이하게 집을 지어놓았다. 논 가운데 외딴 집, 저렇게 살아도 흥이 나는가?

 

  

 

 

 

사천왕문이다. 안에 엄청 무서운 모습을 한 분들이 네분이 있다.

 

 

신원사 대웅전과 앞뜰인데 다른 절과 다르게 잔디가 곱게 자라고 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10시경인데 전각마다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들리고, 신도들의 기도모습도 많이 보인다. 이 절에는 코가 큰 외국스님들도 많이 보였는데 오늘은 모습이 안보인다.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인데 불국사, 직지사에서 보았던 것처럼 오래된 불상이 아니다.

 

 

 

저곳에서는 어느 가신 님의 49재가 봉행되고 있었다. 간절한 가족들의 기도가 가신 님의 극락왕행에

길잡이가 되었으면!!

 

 

 

대웅전 뒤편으로 소나무들이 뒤로 비스듬히 기울어져서 자라고 있는데 제법 운치가 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굽은 소나무들이 절을 지키나 보다.

 

 

 

안내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 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쌍호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에 재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을지에 동북, 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지고 중악단만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곳에서 제법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 무서운 얘기를 하기에 앞서 내가 과거에 직접 눈으로 본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난 다른 종교를 폄하를 할 생각이 추호도 없고, 다른 종교의 聖人 들을 존경하는 마음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결혼하고 그다지 오래되지 않을 때의 일이다. 나는 8남매의 자손 많은 집안으로 장가를 갔다.

바로 위의 동서가 동구 가양동에서 작은 이 층 전셋집에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도 무슨 연유인지 그 동서 집에서 이틀을 보냈는데, 부처님오신날이라서 아마 휴가를 왔었나 보다

 

전셋집 바로 뒤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초등학교가 있었고, 그 뒤에는 작은 사찰이 있었다. 사찰이라고 해봐야 울창한 숲 속에 있는 큰 규모의 사찰이 아니라 가정집보다는 조금 큰 포교당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앰프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떠들썩하다. 자세히 보니 어느 교회에서 운동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다.  많고 많은 날 중에 하필 부처님오신날에 절 옆에서 시끄럽게 행사를 하고, 개를 잡아

보신탕을 해먹고, 도무지 범부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저녁 늦게까지 온종일~~  마치 그 절집의 행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처럼!!

 

다시 얘기로 돌아가면,

신원사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 가는 길에 고목들과 바위들로 어우러진 큰 개울이 있다. 여름에 피서를 하기엔 그저 그만이라서 여름에 피서객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바로 이곳이다. 저 위로도 한참이나 계곡이 더 있다. 내가 들은 것도 이 계곡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어느 개신교 목사님 한 분이 이곳에서 개를 잡아 보신탕과 함께 약주 한잔 걸치고 신원사에 들어와서 드디어 '중악단'에서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 목사님은 '중악단' 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주변을 둘러보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 물론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믿는 우상숭배의 대상물들을  극히 비하하면서~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공포가 가득한 얼굴로 어느 한 곳을 주시하다가

그대로 쓰러져서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심장마비가 우연한 일치로 발생하기도 하겠지만 하필이면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일어날게 뭐였겠나?

수돗물을 접시에 담아 여러 사람이 기도를 하면 물의 비중이 달라진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하는데, 조선 초기부터 수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간절히 기도한 저곳이 그냥 평범하리라고 생각하였다면 그것이 짧은 소견이지 않았겠나 라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에 왜 뜬금없이 명성황후 추모 대재가 이곳에서 봉행이 되나? 의구심을 가졌으나 이곳 중악단이

고종 때 명성왕후에 의해 새로 지었다고 하니 신원사로서는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함이리라

 

 

 

 

많은 불자들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있다.

 

 

 

 

중악단에서도 스님이 열심히 독경하고 있다. 촛불을 끄지 않고 나가시는 분들이 있나 본 데 불나면

큰일이지요.

 

 

 

이곳에는 불상이 없고 곤룡포 비슷한 것을 입은 '계룡산 산신령'으로 보이는 분이 모셔져 있다. 제단에는 쌀포대와 서양란이 올려져 있다.

 

 

 

천장에서는 험상궂게 생긴 용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천정부분인데 이곳에도 고색이 창연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 신원사 기와 불사에 참여한 것을 보니 한편으로 반갑다. ^^

 

 

 

이끼 낀 고목이 신원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