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아름다운 포구, '지세포(知世浦)'

2013. 1. 26. 20:57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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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포' 이름이 참으로 좋다. 잘 못 발음하면 '쥐세포'라고 발음하기 쉽고, 그렇게 들리기도 한다.

거제 장승포 고개를 살짝 넘어가면 좌측으로 좋은 풍광으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세상의 의미를 이미 안 포구쯤으로 해석해도 될까?  분명히 깊은 뜻이 숨어 있을 텐데

 

지세포(知世浦)가 속한 일운면의 유래를 네이버에서 퍼왔다.

 

 

 

 

거제시 일운면의 유래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16年(757) 거제군(巨濟郡)으로 개칭하고 속현의 명진현(溟珍縣)의 관할이었다.

 
  고려(高麗) 원종(元宗) 12年(1271) 왜구(倭寇)의 침범으로 거창현(居昌縣)에 속하는 가조현(加祚縣)으로 피난 갔다가 조선(朝鮮) 세종(世宗) 4年(1422) 태평성대(泰平聖代)로 옛터로 돌아왔다.
 
  세종(世宗) 5年(1423) 사등성(沙等城)이 협소하여 거제읍성(巨濟邑城)을 옛 고정부곡(古丁部曲)에 기공하여 동(同) 14年(1432) 낙성하고 거제현(巨濟縣)을 옮겨 읍기(邑基)가 되었다. 성종(成宗) 원년(元年)(1470) 거제현(巨濟縣)에 칠진(七鎭)을 두었는데 지세포(知世浦)와 조라(助羅)에 진(鎭)을 두고 만호병정(萬戶兵政)을 하였다.
 
  선조(宣祖) 25年(1592)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5月 12日 읍성(邑城)이 함락되어 현종(顯宗) 5年(1664) 거제현아(巨濟縣衙)의 질청(秩聽)을 서부면(西部面)에 옮겨 읍내면(邑內面)이라 하고 옛 읍내(邑內)는 고현면(古縣面)이라 하였다.
 
  영조(英祖) 45年(1769) 방리(坊里) 개편으로 고현면 일운(古縣面 一運)에 남문(南門), 서문(西門), 사동(寺洞), 문동(門洞), 삼거리(三巨里)와 지세포(知世浦), 주림포(舟林浦), 항리(項里), 왜구미(倭仇味), 망치(望峙), 양화정(楊花亭) 등 11방(坊)을 두었다.
 
  고종(高宗) 26年(1889) 면리제(面里制) 개편으로 고현면(古縣面)을 일운(一運)과 이운면(二運面)으로 분리하였으며 장평(長坪), 연곡(淵谷), 서문(西門), 동문(東門), 용산(龍山), 문동(門洞), 삼거(三巨)와 소동(小洞), 주림(舟林), 대동(大洞), 회진(會珍), 교항(橋項), 선창(船艙), 와현(臥峴), 미조(彌助), 왜구(倭寇), 지심도(只心島), 조라도(助羅島), 항리(項里), 망치(望峙), 양화(楊花) 등 21리(里)로 개편하였다.
 
  고종(高宗) 26年(1889) 11月 12日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으로 일본어민(日本漁民)이 구조라(舊助羅)와 지세포(知世浦)에 117호(戶) 688名이 이주(移住)하자 1913年 처음으로 고현리 남문(古縣里 南門)에 일운면사무소(一運面事務所)를 두었는데 1928年 지세포리(知世浦里)로 옮겼다.
 
  고종(高宗) 32年(1895) 5月 26日 칙령 제98호 면리제(勅令 第98號 面里制) 개편으로 미조리(彌助里)를 폐지하고 상동리(上東里)를 신설하여 21리(里)를 관할하였다.
 
  1915年 6月 1日 경상남도령 제20호 법정동리령(慶尙南道令 제20號 法定洞里令)에 의하여 망치(望峙), 구조라(舊助羅), 와현(臥峴), 지세포(知世浦), 소동(小洞), 옥림(玉林)과 장평(長坪), 고현(古縣), 상동(上東), 문동(門東), 삼거(三巨)의 11리(里)로 통합(統合) 되었다.
 
  1942年 5月 1日 2차대전(二次大戰)때 전시행정(戰時行政)을 위하여 부락구제(部落區制) 시행으로 양화(楊花), 망치(望峙), 구조라(舊助羅), 와치(臥峙), 예구(曳龜), 선창(船艙), 교항(橋項), 회진(會珍), 대신(大新), 대동(大洞), 상촌(上村), 하촌(下村)과 와치(臥峙), 연곡(淵谷), 서문(西門), 동문(東門), 상동(上東), 용산(龍山), 문동(門東), 삼거(三巨) 등 11리(里) 22부락(部落)에 구제(區制)가 실시되었다.
 
 1944年 11月 20日 고현지역(古縣地域 ) 5개리(個里) 8부락(部落)의 행정(行政)을 위하여 일운면 고현출장소(一運面 古縣出張所)를 설치하였다.
 
  1953年 5月 9日 UN 군(軍) 포로수용소(捕虜收容所) 지역주민(地域住民) 1,116세대(世帶)의 소개(疎開)로 8月 23日 고현출장소(古縣出張所)를 일운면(一運面 )에 통합(統合)하였다.
 
  1953年 7月 27日 6.25사변(事變)의 휴전협정(休戰協定)으로 소개민(疎開民)이 복귀(復歸)하자 1956年 7月 1日 고현출장소(古縣出張所)를 복귀(復歸)하였다.
 
  1963年 1月 1日 법률 제1175호(法律 第1175號:1962年 11月 21日 공포(公布))로 신현면(新縣面)을 설치(設置)하고 일운면(一運面 )은 6리(里) 14행정리(行政里)가 되었으나 그 후 망치(望峙)에서 망양(望洋), 구조라(舊助羅)를 삼정(三亭)과 수정(水晶)으로 분리 개칭하고, 소동(小洞)에서 신촌(新村)을 분리하여 모두 17행정리(行政里)가 되었다.
 
  1987年 1月 1日 대통령령 제12007호(大統領令 第12007號:1986年 12月 23日 공포(公布))로 일운면(一運面) 옥림리(玉林里) 중촌(中村) 1,2동(洞)(0.12㎢)을 장승포읍(長承浦邑) 장승포리(長承浦里)에 대림(大林) 1,2동(洞)으로 개칭하고 편입하였다.
 
  일운면(一運面)은 거제도(巨濟島)를 동북과 서남으로 양분(兩分)하는 중앙지역(中央地域)이며 와치(臥峙)에서 와현(臥峴)으로 길게 뻗어 풍수지리설(風水地理設)에 의하여 일운면(一運面)이라 하였다. (출처 : 네이버) 

 

 

 

 

 

방파제 너머로 멀리 보이는 섬이 '지심도' 이다.

 

 

 

사진 우측 저멀리 조선해양문화관과 요트 마리나 시설이 있었다. 보름 전쯤 지세포에 위치한 '지세포횟집'에서 열기 등으로 만든 맛있는 회를 섭취하였으나 아쉽게도 사진기가 없어서 올리지 못했다.

다음에는 반드시 사진기를 가져가서 올리도록 해야지!!

 

 

 

 

거제에는 세계 3대 조선소 중에 2대 조선소가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3대 조선소가 세계 3대 조선소란다. 참 대단하다. 울산의 현대중공업, 거제 옥포의 대우조선해양과 고현의 삼성중공업이 그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른 2개 조선소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우선 3대 조선소중에 가장 먼저 설립이 되었고, 선박의 주요 원재료인 철판(후판 등)을 그룹의 일관제출소인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로부터 자체 조달할 수가 있으며, 선박엔진은 자체에서 운영하는 옛 '현대엔진'이 만들고 있고, 도장용 페인트는 방계 그룹인 고려페인트에서 조달하며, 파이프는 현대강관에서 이쯤되면 현대중공업은 막강하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 선전하는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세계 1위의 수주실적을 올렸다고 길거리에 거제시장 명의로 축하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현재는 우리나라 조선소들은 일반 벌크선은 만들지 않는단다. 만들수록 적자이기 때문에 중국 등에서 만들고, 우리나라는 주로 특수선인 석유시추선, LNG 운반선, 석유제품 운반선 등의 고부가가치 선박을 생산하여 수출한단다. 그런 큰 조선소가 있는 덕분에 아마 작은 거제에 이런 조선해양문화관이 생겼지 않았나 싶다.

 

 

 

 

 

조선해양문화관을 조금 지나니 요트 마리나 시설이 보인다. 마산 구복요트장 소속으로 재작년 요트'인터레피드'호로 단독 세계일주했던  윤태근 선장이 생각났다. 그는 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아래는 내가 그가 세계일주할 당시에 포스팅한 것이다.

 

 

 

 

부귀영화가 보장되지도 않는 일에 목숨을 담보로 여행을 떠날 용기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히말라야 설산에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산악인!

망망대해를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항해에 나선 요트맨!!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누구나 감히 흉내를 내기 힘든 항해이야기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의 이름은 윤태근!!!  그의 요트이름은 '인터레피드'호이다.

 

윤태근 선장이 세계일주를 위해 타고 떠난 요트(yacht)는 '타야나37 대양용 요트'라고 한다.

요트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요트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마는

요트는 돛에 의한 무동력으로 운항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료비가 적게 들고, 공해를 많이 유발하지 않고, 요트하부에는 Keel이라는 중심추 역할을 하는 무거운 것이 있어서 왠만한 파도에는 전복되지 않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윤태근 선장이 세계일주를 위해 타고 떠난 '타야나37 대양용 요트'와 같은 종류의 요트

                               [출처 : 윤태근 요트 세계일주 항해이야기]

 

                           남아메리카의 칠레 해안을 따라 항해하고 있는 '인터레피드' 호

                                    [출처 : 윤태근 요트 세계일주 항해이야기]

 

윤태근 선장의 항해코스는 한국 부산을 출발하여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폴, 태국, 몰디브, 오만,

아덴만, 홍해, 지중해, 유럽, 지부롤터해협, 대서양 횡단,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남태평양,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그는 2009년 10월 부산을 떠나 1년의 여정으로 장도에 올랐는데 예정과는 달리 1년이 훨씬 넘긴 지금도 남아메리카 칠레 남단을 출발하여 타이티를 향해 항해하는 중이다.

혼자서 하는 항해가 얼마나 외로울까?  죽음보다 겁나는 것은 외로움은 아닐까?

그의 항해기를 보면, 항해 중에 발생한 돌발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見視를 하여야 하는데 교대로 해 줄 사람도 없어서 토막잠을 자가며 밖을 살핀다니 애처롭기가 한이 없다.

 

힘이 받쳐주는 20대 청춘도 아닌 50대에 들어선 사람이 단독 요트 세계일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지는 그의 항해기를 읽어보면 실감이 난다.

마지막 관문인 태평양을 건너는 윤선장님이 말 그대로 太平洋처럼 태평하게, 안전하게 항해를 하여

그리운 가족과 친구품으로 돌아오시길 진심으로 빈다.

 

 

윤선장의 블로그는   http://cafe.daum.net/yoontaegeun 이다.

 

 

 

 

누구의 요트인지 쌍동선 선체로 제법 큰 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