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과 한산도 제승당에 가다

2013. 6. 15. 10:24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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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웅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있는 통영(統營)과 한산도를 갈 기회가 있었다.

통영(統營)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당포와 한산도에서 이순신 장군의 대첩이

있은 후, 1593년 충청, 전라, 경상 등 3도 통도사가 거소 할 통제영(3도 통제사의 군영)

을 한산도와 두룡포에 두었으며,

 

1914년 거제군을 통합하여 군명 개칭 시에 옛날 統制營이 있었다는 뜻으로

통영(統營)이라 하였다.

 

현재의 통영시(統營市)는 1955년 9월 1일부터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되면서,

충무시통영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충무시통영군이 통합되면서

도농복합형태의 통영시가 탄생하였다.

 

 

 

 

 

한산도 방향

 

 

 

 

통영 여객선 부두에서 마주 보는 곳에 있는 성동조선소, 해운업 불황으로 수주실적이

낮고, 수익성이 낮아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산도까지 태우고 갈 '시 파라다이스'호 자동차도 선적 가능하다.

 

 

 

 

여객선 갑판에서 바라다본 통영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다.

 

 

 

 

 

 

 

 

멀리 보이는 곳은 거제도

 

 

 

 

멀리 수로 안쪽 견내량을  통해 통영과 거제도를 잇는 다리가 2개 있다.

 

 

 

 

 

 

 

한산도 맞은 편에 있는 추봉도에 위치한 한산대첩비가 작게 보인다.

 

 

 

 

거북등대

 

 

 

 

 

연락선에도 백밀러가 있다. 조타실에서 배 뒷편을 보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보는 광경이다.

 

 

 

 

 

 

한산문(閑山門) 입구의  한산도 이충무공유적 안내판

 

 

 

 

 

 

 

한산문을 지나면서 왼쪽 산허리를 감싼 적송들이 군락을 이룬다. 해변에는 주로 해송흑송으로 불리는 곰솔이 자생하는데 적송을 보니 새로운 느낌이 난다.

 

 

 

 

건너편에 있는 한산대첩기념비

 

 

 

 

 

  

 

우물이 있는 장소는 해변과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고 해수면의 높이와

비교해도 해발 1미터도 되지 않는데 어떻게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은 것인지 신통하다.

 

 

 

 

 

 

제승당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대첩문을 지나야 한다.

 

 

 

 

 

제승당(制勝堂)이란 글자 그대로 승리를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로 수군들의 작전도

이곳에서 짜고, 함포(총통)같은 무기제작과 보급에 힘을 쓰는 군무를 관장하는 곳으로

지금의 해군작전사령관실 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제승당 안에 엄청난 크기의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이 현판은 인터넷을 검색하니

정말 사연이 있는 현판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식하면 용감하고, 못난 것은 용서가

되지만 무식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정말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동아일보 1976년 11월 3일자에 의하면

 

제목 : 조각난 제승당 현판(정화공사 중 오인으로 폐목처리)

 

경남 통영 제승당에 보관되어 있던 가장 크고 오래된 현판 1개가 淨化工事중 관리

잘못으로 인부들에 의해 폐목으로 버려져 조각나 버렸다.

 

이 현판은 이조 제140대 통제사 이영수(李永綬)장군에 의해 제승당이라 쓰였고,

크기는 길이 4m, 너비 2m이다. 이 현판은 정화공사 중 제승당 건물 안에 보관되어

오다가 지난달 28일 경남도 당국자가 청소감독을 하면서 시공업체인 대립산업

현장사무소장에게 이를 치우도록 지시하였는데, 인부들이 이 현판을 조각내어

충무(통영의 지난 지명)시 정량동 대림산업 자재창고에 폐목으로 버렸다는 것이다.

충렬사 이사장 이정규씨(72)는 "현판이 관리소홀로 깨어져 아쉽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5일 후, 동아일보 11월 8일자에 의하면

 

제목 : 제승당 현판 원형 되찾아

 

지난달 29일 인부들에 의해 파손된 한산섬 제승당에 보관 중이던 제140대

삼도수군통제사 김영수 장군의 친필인 제승단 현판이 원상을 되찾아 복원하게 됐다.

 

재단법인 통영 충렬사 사무국에 따르면 파손된 현판은 지난 1일부터 통영 충렬사

사무국 직원들이 충무시 정양동 대림산업 주식회사 자재하치장을 뒤져 원형의

85%를 발견 지난 5일 낙관부분이 마저 발견돼 복원이 가능하게 된 것.

 

문화재 전문위원들은 파손되기 전의 사진을 바탕으로 원형을 그대로 되실릴 수

있다고 결론, 새로 복원하는 파손된 현판 뒷면에 이번의 파손경위를 기록하기로

했다고 [충무]

 

 

천정에 달려있어야 할 현판이 건물 안에 있다면 누구나 의문점을 가졌을 텐데

자랑스러운 역사는 내보이고 싶고, 부끄러운 역사는 숨기고 싶은 것은 아닌지

제승당을 관리하는 주체는 파손경위를 안내판에 따로 제작하여 현판과 함께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제승당 유허비가 있는 전각

 

 

 

 

 

이 비석은 1739년 제 107대 통제사 조경이 제승당을 다시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비석은 충무공의 후손으로 제198대 통제사를 지낸 이규석이 새로 세운 것이며,

옆에는 전에 있었던 비석을 묻은 곳이란 표지석이 있다.

 

 

 

 

 

 

 

 

 

 

 

 

수루 전경

 

 

 

 

수루는 적군의 동정을 살피려고 성 위에 만든 누각이다.

 

 

 

 

 

 

수루에서 바라다본 통영 쪽 수로

 

 

 

 

충무사 전경

 

 

  

 

 

아름다운 소나무가 충무사를 지킨다.

 

 

 

 

 

 

 

 

통영으로 돌아오려는 연락선을 기다리며 통영으로 난 바닷길을 본다. 이순신 장군과

휘하 장졸들이 바라본 바다와 구름의 모습도 지금의 저 모습이었을까?

 

선조 임금의 질시와 미움을 감내하고, 늘 위장병으로 고생하면서 백성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을 충무공을 생각하며, 충절의 장소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