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금강송(金剛松) 군락지를 찾아서

2014. 11. 2. 20:08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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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울진 금강송 군락지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로 보이는 수령 500년의 소나무라고 한다. 그 오랜 기간 온갖 풍상을 이기고 민족의 기상처럼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왜놈들이 금강송을 엄청 벌목하여 가져갔다고 하니 용케 살아남은 저 금강송이 대견하다.

 

 

 

 

 

 

 

 

포항에서 울진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만난 만남의 집에서 바라다 본 바다다. 지난 7월경부터 직장에서의 바다는 물리적으로 떠났지만, 오늘 거친 바다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금강송 군락지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초소, 공휴일에는 선착순으로 탐방객을 맞는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5분도 안돼서 규정 인원을 채운다고 한다.

 

 

 

 

 

 

 

 

원래는 개울을 건너 산길을 들어가야 하는데 간밤에 내린 비로 개울에 제법 많은 水量의 물이 흐르니 신발을 벗고 건널 수가 없어서 포장길로 올라간다.

 

 

 

 

 

 

 

 

 

 

 

이분이 우리를 안내한 숲 해설가이다. 밝은 얼굴로 맞아줘서 고마웠다.

 

 

 

 

 

 

 

안내판 맨 위의 배드민턴 공같이 생긴 그림은 소나무 잎을 나타낸다.

이곳에서 자생하는 금강송은 잎이 두갈래라고 한다. 숲 해설가에 의하면 우리의 소나무가 원래 적송(Red Pine) 인데 일제강점기에 왜놈들이 저들 나라에도 없는 적송을 제멋대로 Japanese Red Pine(일본 적송)으로 학명을 정하여 지구가 종말할 때까지 바뀔 수가 없다고 하니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다시 살아난다. 빠가야로 닛뽄진!!!

 

 

 

 

 

 

 

 

 

 

 

 

작은 다리 옆에 앉아 있는 바위에 차돌맹이가 들어있다. 크기가 작으면 수석으로 가져올 수 있을 텐데 워낙 커서 포기한다.

 

 

 

 

 

 

 

 

 

이놈이 웃기는 놈이다.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온갖 아양을 떨어서 자유시간 쵸코렛을 주었더니 저렇게 잘 먹고 나선 안면을 바꿔 모르는 채 한다. 나쁜 놈!!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축사가 있다. 사람들 있는 곳엔 냄새때문에 기피하니 인가에서 떨어진 골짜기로 온 것 같은데 그래도 이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청정한 소나무 숲에 살고 있는 소들이야 좋겠지만,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축사 안에 있던 소가 사진 찍는 나를 유심히 본다. 산골짜기에서 많이 심심했다 보다. 고개를 들고 빤히 쳐다보는 폼새가 길손에게 뭔가 메시지를 보내려는 듯

 

 

 

 

 

 

 

 

표지판에서 된장 냄새보다는 버터 냄새가 많이 나는데 도대체 이건 뭐지?

 

 

 

 

 

 

 

 

 

약간 넓은 개활지에 여러 동이 설치된 대형 천막과 위장막은 한국군이 사용하는 위장막이 아니다. 분명 이것은 미군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위장막 임에 틀림이 없다. 미군들이 이곳에서 훈련할 일도 없을 텐데

 

 

 

 

 

 

 

 

 

 

 

 

저 양반이 이곳의 주인이다. 이곳은 야외 캠핑장으로 대학생같은 젊은 이들이 단체로 오는 곳이란다.

 

 

 

 

 

 

 

 

 

대형 천막 안에는 15인이 들어가서 잘 수가 있는 넓은 침상이 있다. 겨울에는 개인이 1인용 전기장판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겨울에는 무리겠고, 여름에는 한 번 경험할 만 하겠다.

 

 

 

 

 

 

 

 

일행 중에 누군가 곰배령에서 많이 자생하는 것이라고 해서 안내표지를 보니 '속새'라고 되어 있다.

 

[속 새]

 

속새는 제주도와 강원도 이북의 산지에서 자라는 상록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물 빠짐이 좋지 않은 습지의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고 부엽질이 풍부한 곳에서 자란다. 키는 30~60㎝이고, 잎은 퇴화된 비늘 같은 잎이 서로 붙어 마디부분을 완전히 둘러싸서 엽초로 되며, 끝이 톱니 모양이고 각 능선과 교대로 달린다. 지하 뿌리서 여러 줄기가 나와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고 짙은 녹색으로 가지가 없고 마디와 마디 사이에는 10~18개의 능선이 있다. 포자낭은 길이 0.6~1㎝로 원줄기 끝에 달리고 원추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처음에는 녹갈색이지만 황색으로 변한다.

원줄기의 능선에는 규산염이 축적되어 딱딱하기 때문에 나무를 가는 데 사용했으며, 목적()이란 이름이 생겼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전초는 약재으로 쓰인다. [출처 : 야생화 도감]

 

 

 

 

 

 

 

 

아직은 어린 금강송이 촘촘히 자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장래는 불투명하고 암울하다. 전국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소나무 재선충병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 세대에서 소나무가 멸종할 것 같다.

 

 

 

 

 

 

 

 

 

 

 

이곳에서 밥을 먹으려면 도시락을 가져오든가 아니면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예약하면 이렇게 밥차가 멀리 올라온다. 국을 포함한 1식 8찬에

6천원이라고 하니 적당한 밥값이다.

 

 

 

 

 

 

 

처음에는 동동주 인줄만 알았다. 그릇도 동동주잔 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순두부 국이다. 국이 이렇게 적어도 되나? 난 국을 좋아하는데

 

 

 

 

 

 

 

 

산나물 장아찌도 있어 제법 좋은 경험을 했다.

 

 

 

 

 

 

 

점심을 해결하고 500살 먹은 금강송을 보기 위해 다시 위로 올라간다.

 

 

 

 

 

 

 

 

 

 

왜놈들과 벌목꾼들의 위험을 이겨내고, 위풍당당히 서 있는 금강송

조선 초기(조선조 9대 성종)에 씨앗을 틔워 500년 동안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저 금강송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곳에 전시된 금강송은 수령이 230년 된 나무 한그루에서 나온 것으로 '황장목( 黃腸木)'이라고도 한다는데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누런 창자를 가진 나무' 쯤으로 해석된다. 재질이 강해 부안지방에서 나온 황장목으론 거북선이나 판옥선을 만들었고, 주로 궁궐이나 사찰 건축용과 죽은 사람을 넣는 '棺'(널)로 많이 사용했다 한다.

 

 

 

 

 

 

 

 

이 황장목은 흰개미도 침투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이테가 워낙 촘촘하여 단단할 뿐만 아니라 겉의 흰부분을 통과한 흰개미가 안쪽의 붉은 색의 심재부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송진성분의 독성물질이 흰개미의 침입을 막는다고 한다.

 

우리의 금강송은 일본의 삼나무나 편백보다 2~3배 강도가 강해서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이 왜선을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금강소나무로 만든 벽재가 붉은 색을 띄면서 안정감을 준다.

 

 

 

 

 

 

 

왼쪽이 금강송, 오른쪽이 일반 소나무로 만든 판재

 

 

 

 

 

 

 

맨왼쪽은 일반 소나무, 중간과 오른쪽은 금강송(황장목)이다.

 

 

 

 

 

 

 

지붕을 지지하는 받침 소나무도 확연히 표시가 난다. 위쪽은 일반소나무이고, 아래쪽은 금강송이다.

 

 

 

 

 

 

 

해설사에 의하면 왼쪽에 누워있는 소나무가 10억 원을 호가한다고 하는데 누가 훔쳐가면 어쩌나? 믿거나 말거나

 

 

 

 

 

 

 

 

 

 

 

탐방객을 상대로 새끼 금강송 묘목을 판다.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올라가는 것도 멋진 경험일 듯 하다. 경사가 심하지 않아 숲길을 탐방하기엔 그저 그만이겠다. 서울에서 온 라이딩팀이 모여 있는데 차 위에 올려놓은 자전거가 천만 원이라고 자랑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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