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릉 병마용

2010. 10. 29. 22:57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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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중국에 관광 갔을 때 진시황릉을 보기위해 간 西安(시안)은

매년 봄날 우리를 무던히도 괴롭혔던 황사가 일상처럼 자욱했다

이건 첫눈에도 사람살 곳이 못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살기 좋다는 것을 실감한다.

 

건조한 지역이어서 작물도 되질 않는지 어딜가나 석류나무 뿐이다

진시황능도 사면이 모두 예외없이 온통 석류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호텔에서조차도 물이 귀해 수건도 더러워지지 않았다면 한번 더 사용하라는 문구가

샤워장에 걸려 있었다. 이런 곳에 살지않는 내가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불로초를 구해 영생하려던 절대군주인 그도 죽음이라는 벽을 피해 가진 못하였고

역사는 또 역사로 끝을 맺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진시황능 병마용은 그 자체로 놀라움과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진(秦)은 유명한 군사강국으로서 전차 1000대, 기병 1만명, 보병 100여만명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며, 진시황은 이 강대한 군사력에 의지하여 여러 제후국을 겸병하고 중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고 한다. 병마용은  진나라 군대의 축소판으로서 전차, 기병, 보병의 3종유로 나뉜다고 한다.

 

秦始皇(BC259~BC210년)은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봉건황제이며, 그의 능묘는 서안시 임동구의 동쭉 6Km 되는 곳에 위치한다.

1974년 첫 부장 병마용갱이 발견된 이래 현재까지 이미 3개의 용갱이 확인 되었으며, 3개의 용갱 내에는 실물의 사람, 말크기의 陶俑(도용) 陶馬(도마)가 약 8,000점이 있다.

이 중에는 전차병, 기병, 보병 등 같지 않은 兵種이 있으며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방대한 지하 軍陳을 이루었다. 도용의 형상은 각기 표정과 태도가 다르고 생동감이 있다.

세계 여덟번째의 불가사의라도도 하며 병마용갱은 진시황릉과 함께 유네스코에 의해 세게문화유산명부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병마용갱(兵馬俑坑)은 진시황 능묘의 동쪽 1.5Km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원래 황무지로 하나의 지하 寶庫일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1974년 3월 이곳에서 우물을 파던  "양지발"이라는 농부가 우연히 일부 陶俑(도용)의 파편을 발견하였는데 무슨 물건인지 알지 못하고 당국에 신고하였다고 한다.

 

그후 고고학자들이 1년여의 탐사와 시굴을 거쳐 그것이 대형의 용갱(俑坑), 즉 1호 용갱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우측 상단  좌측에 보이는 흰색 안내판이 있는 곳이 우물을 팠던 자리 조금만 빗나갔어도 희대의 보물을 찾지 못하였을 듯함.

 

 

 진시황능 병마용갱 최초발견자와 중국을 방문한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과의 만남(사진 우측에 있는 사람이 최초발견자인 양지발 할아버지) 

 

 

     병마용갱의 발굴지, 크기도 어마어마하고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곳이 더 많다고 한다 

 

 

               출토된 진시황이 평소 지방시찰 시에 탔던 마차의 축소모형(청동제 마차) 

 

 

                                                 축소모형의 청동제 戰車 

 

 

                                                           도열된 병마용 

 

 

                                                              도열된 병마용 

 

 

  정면에서 올려다본 진시황능묘

 

진시황능묘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능묘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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