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호남으로

2015. 2. 21. 10:11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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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맞아 또 다른 피붙이가 사는호남으로 향한다. 어렵고 궁핍했던 시절, 선친의 형제 중 한 분이 1960년대 말에 전남에 터를 잡았다. 물리적인 거리도 있거니와 아무래도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정치, 문화적인 이질감도 있어서 왕래도 뜸했다. 이제 선친의 형제들도 모두 연세가 많아지니 피붙이들을 보고 싶어 해서 이렇게 7년 만에 그곳으로 찾아가는 중이다. 그곳에는 사촌과 사촌 매제들이 자신들의 방식대로 화목하게 사는 중이다. 매년 설명절이면 콘도를 빌려 작은아버님의 식솔들이 모두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이번 설에는 나를 호출시킨 작은 아버님이 당신의 집으로 모두 모이게 했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중이다. 차량에서 운전을 하며 사진을 찍으니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경남 거창을 조금 지난 지점이다. 아스라이 보이는 산에는 며칠 전에 내린 잔설이 덮여있다.

 

88고속도로는 현재 영호남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의 고속도로다.  말이 고속도로이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가 있는 왕복 4차선 국도보다 못한 길이다. 지금은 중앙선에 차단봉을 설치하여 그래도 사전에 운전자들이 인지하여 미연에 사고를 방지할 수가 있지만, 과거에는 넋놓고 가다가는 반대차선을 1차선으로 착각하고 주행하다가 대형사고가 일어난 적도 있다.

 

 

 

 

 

대충짐작으로 저 육교를 통과하면, 지리산의 한 줄기가 보인다. 예전 아이들이 어릴 때 텐트를 가지고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서 1박을 한 적이 있었다. 빨치산들이 준동하였던 역사적인 현장도 이젠 전설이 되었고, 길손도 세상을 바꾸려 하였던 빨치산을 잠시 생각하면서 운전대를 고쳐잡는다.

 

 

 

 

잔설이 있는 지리산이 멀리 보인다. 비록 지금은 가지 않지만 언젠가 여름에 다시 오리라 엄마같은 가슴을 가진 산, 그 지리산에

 

 

 

 

지리산 빨치산의 거두 이상현이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친 물살이 흐르는 황천을 건너갈 때 그는 누구를 가장 먼저 생각했을까? 자신의 고향 땅과 그를 낳아준 부모와 그와 같이 자랐던 형제? 어릴 적 같이 놀았던 소꿉친구 여자아이? 아니면 그가 꿈꿨던 인민들의 세상? 아마도 그 모두 아니고, 그저 삶과 죽음도 이데올로기도, 이념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혼동 중에 느끼면서 더운피를 빗점골에 뿌렸으리라

그가 이루고자 했던 인민해방은 부질없는 구호에 그쳤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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