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신원사와 배롱나무

2015. 8. 19. 07:50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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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화(), 백일홍(), 만당홍(滿)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가 신원사 대웅전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꽃이 만개하니 들리는 내방객이나 참배객은 너나없이 사진기를 눌러댄다.

 

 

 

 


 

 

이렇게 굵은 배롱나무 보는 것도 흔치 않다. 반질반질한 나무둥치에서 부처님의 손인지 아니면, 관세음보살님의 손인지 나무 밖으로 주먹을 내밀었다. 죄지은 자에게는 경고의 의미요, 착한 자에게는 친근한 주먹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닐까?

 

 

 

 

 

 

福인지 뭔지 한 웅큼 주려고 하시는데 손을 내밀고 도무지 기다려도 떨어지지 않는다. "관세음보살님 제가 공덕이 부족했습니다. 다음에 공덕을 더쌓고 와서 받아가지요 ^^"

 

 

 

 

 

 

 

 

 

 

 

중악단의 모습이다. 조선 시대에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고종 16년 명성황후의 명으로 중악단을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고 했단다.

 

 

 

 

 

 

특이하게도 중악단을 들어서는 솟을 대문 정문에 현판이 없다. 절에는 일주문인데 일반 여염집처럼 솟을대문이 있는 게 참으로 특이하다.

 

 

 

 

 

 

대원군의 친필로 썼다고 알려진 낙은재(樂隱齋) 현판이 솟을대문 뒤편에 있다. 아마도 대원군이 그의 비운의 말년을 예감하고, 권력다툼을 버리고 이곳에서 편안하게 은둔하면서 즐겁게 살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때 폄하하여 민비라고 불렀던 명성황후가 중악단을 재건하는데 자금을 대고, 심혈을 기울였다고 전해지는데 2012년 8월에는 중악단에서 명성황후를 위한 제1회 '명성황후 추모 대재'가 열리기도 했다. 그런 명성황후가 신원사에 내려오면 이곳에서 묵었다고 한다.

 

 

 

 

 

 

겉문을 여니 안쪽에 또 문이 있다. 작은 복도가 앞에 있는 것이다. 겨울 추위를 피하려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말하는 것이 밖에 들리지 않도록 기밀을 유지하려고 그랬을 수도 있으며, 시중드는 상궁이나 무수리들이 복도에서 대기했을 수도 있겠다.

 

 

 

 

 

 

안쪽에 양편으로 방이 있는데 보이는 곳은 왼쪽 방으로 오른쪽에 있는 방의 1/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도 여기에 명성황후가 기거하고, 오른쪽 방에는 시중드는 사람들이 지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방보다 조금 더 넓은 오른쪽 방이다.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면 비명에 간 명성황후의 한 서린 영혼을 만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담이 큰 사람이라면 이곳에 하룻밤 머물기를 권한다.

 

 

 

 

 

 

이곳은 계룡산 산신령이 모셔져 있는 중악단 본채와 '낙은재'란 현판이 걸려있던 솟을대문 사이에 있는 중문(中門)이다.

 

 

 

 

 

 

마치 여느 여염집처럼 '이리 오너라!'라고 소리치면 곧장 뛰어나올 듯한 하인이 기거하는 방이 대문 양옆으로 두 개가 있다. 창문이 열린 것을 보니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곳에 사람이 기거한다는 흔적이 있다. 행자승이나 비구 스님이 기거하시나? 야간에 불교 문화재를 보호하거나 방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누군가는 이곳에서 당직을 해야 할 것이다.

 

 

 

 

 

 

왼쪽 방에도 사람이 기거한다. 털신으로 보아서 스님이 계시는 듯한데

 

 

 

 

 

 

방 내부를 들여다보니 벽에 승복이 없고, 일반 아웃도어 옷이 걸려있다. 스님이 이런 옷을 입을 리가 없으니 아마도 경비원이 있나 보다. 절간을 노리는 양산 군자들이여!! 중악단을 털려고 마음먹었다면 단념하기 바란다. 중문 양옆에는 건장한 경비원이 상주하고 있으므로

 

 

 

 

 

 

스님이 울력하신다. 속세의 나이를 짐작해보니 40대 후반은 된 듯하다 이렇게 후텁지근한 날씨에 밖에서 삽질하니 얼마나 더울까? 주머니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린다. 염불을 들으면서 삽질을 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