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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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감이 단감이 된다.
고향 집에서도 한참이나 더 들어가는 곳에 있는 작은 마을에 왔다. 앞뒤로 다 막히고 하늘만 빠끔히 보이는 곳이다. 이젠 거의 빈집으로 남고 사람이 사는 곳은 두어 가구가 전부다. 사회에 나오기 전에 함께 공부했었던 친구의 집도 그 모친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는 빈집으로 남았다. 감나무에 아직도 감이 달려 있다. 검게 언 것을 따서 먹어보니 달짝지근한 단감으로 변해 있었다. 이 감은 원래 떫은맛을 지닌 반시로 이곳 방언으로는 '따배이 감'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옛날 여인들이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물을 퍼 담은 옹기를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머리에 이고 갈 때, 머리 위에 그냥 올리면 아프기도 하거니와 균형을 잡기 어려워서 왕골로 만든 커다랗게 중간이 뚫린 동그랗게 생긴 머리 받침인 일면 '따배이(똬리의 방언..
2023.02.02 -
추운 겨울에도 선풍기 바람을 맞는 소
고향 후배가 하는 축사를 들렀다. 100두가 넘는 소가 있었는데 선하게 보이는 검은 눈동자를 가진 어린 송아지를 보는 것은 힐링 그 자체다. 축사를 들어서니 낯선 손님이 왔다고 전부 일어서서 길손을 맞는다. 영하의 기온에다가 바람까지 매섭게 부는데도 작은 소들은 그냥 그 찬바람을 맞는다. 얇은 가죽 옷에 변변치 못한 털을 가진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겨울을 나는 소가 마냥 신기하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여름이 아닌데도 천정의 대형 선풍기가 돌아간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선풍기를 돌리는지 알 수는 없지만,
2023.02.02 -
한겨울의 고향 산천
국민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 대보름이 다가오면 신이 난 동심들은 달밤에 앞에 보이는 논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열심히 '불 깡통'을 돌렸다. 작은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송송 내고, 깡통 양옆으로 철삿줄을 매달아 깡통 안에는 작은 솔가지를 넣고, 불을 피운 다음에 오른팔 왼팔을 번갈아 가면서 돌리면 불이 원을 그린다. 제자리에서도 돌리고 뛰어가면서도 돌리고 그러다가 어쩌다가 나무와 함께 들어간 비닐을 타면서 떨어지는 뜨겁디 뜨거운 비닐 녹은 물이 얼굴에 떨어지는 바람에 지금도 오른쪽 뺨에는 콩알만 한 흉터가 남아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2023.02.02 -
무논의 개구리 합창 소리
일찍이 지아비를 여의고 혼자 힘들게 사시다가 작년에 작고하신 앞집 아주머니의 무논에서 여러 종류의 개구리들이 크게 운다. 주인의 기구한 일생을 불쌍히 여겨서 추모하는 노래인가? 울음소리인가? 논 주인은 떠났지만, 논은 남았다. 수줍은 듯이 늘 조신하게 사셨던 그 아주머니가 갑자기 생각나서 울적해지는 고향의 밤이다.
2022.05.15 -
태양광 난개발에도 오곡은 익어간다.
탈원전이란 헛된 구호 뒤에 따라온 뜬금없는 '태양광 발전'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깊은 살골짜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사가 저렇게 급한 산줄기 따라 무자비하게 벌목한 현장이 허가를 못 받고 민둥산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근동에서는 영험한 산에 깊은 고뇌도 없이 졸속으로 처리한 탈원전과 태양광이란 헛된 망상이 저렇게 산을 변화시켰다. 빠르면 내년에 된서리를 맞을 것으로 예측이 되는데 그 책임은 에베레스트보다 높을 것이고, 마리아나 해구보다고 깊을 것이다. 이렇게 외진 곳에도 사람은 있다. 컨테이너 하우스가 몰라보게 변했다. 집주변은 밤이면 멧돼지를 비롯한 야생동물의 천국일 것이다. 야밤에 집 밖을 나가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2021.09.22 -
무논에서 짝을 부르는 개구리 울음 소리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 논에는 막 모내기를 마친 논에 물이 가득하다. 옛날에는 못줄을 들었다 놓으면 표시된 곳에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묘판에서 자란 모를 4~5개의 작은 가닥으로 쪼개서 일제히 허리를 굽히고 모를 심었는데 지금은 그런 풍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고, 모심기 기계가 그것을 대신한다. 말없이 출향인을 맞아주는 고향은 품은 언제나 따뜻하다. 오른쪽 비닐하우스는 '샤인머스켓'이라는 청포도를 재배하는 곳인데 사과보다 수익이 더 높다는 입소문으로 너나 나나 샤인머스켓을 재배한다. 머지 않는 장래에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가격이 하락하고, 일반 서민도 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고향 집 앞 무논에도 모내기는 끝나고, 왼쪽으로 보이는 곳에도 샤인 머스켓 재배동이 ..
2021.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