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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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곡( 哭)할 일이다.
불가사의하고도 귀신이 곡( 哭)할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보름 전에 이곳에서 도롱뇽알들을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안전지대로 옮긴 알 꾸러미가 다시 돌아왔다. 마치 그간에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소름이 돋으려고 한다. 바로 저 장소에 있던 알들을 직접 손으로 건져서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어떻게 된 거야? 어미 도롱뇽의 인솔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행진해서 왔나? 보름 전의 상태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길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미 도롱뇽이 낙엽 속에 숨어서 자신의 알을 훔쳐 가는 길손을 보았을 것이고, 그 일로 낙담을 하던 도롱뇽 부부가 그날 소주를 진탕마시고 잠들었다가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알을 낳았던 것 같다. 그런 유추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참 기묘..
2021.04.08 -
슬픈 할미꽃
이 이름 없는 무덤을 그냥 지나쳤다면 올해 할미꽃 구경을 하지 못할 뻔했다. 할미꽃이 왕성히 피지 못하고 시들시들해 보인다. 무덤의 주인도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고 시무룩하셨나 보다. 자손들이 불경기로 인해 자주 찾지도 못하고, 아주 많이 찾지도 못했을 수도 있지만, 사업이 잘되고 돈을 잘 벌면 자동차가 다니는 좁은 길 옆 좋은 위치에 자리한 이곳에 오지 못할 이유도 없었을 것인데 주변이 온통 바위투성이 사이에 용케도 한자리를 차지했는데 고관대작의 무덤에 비하면 검소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벼슬 없이 평생 배우다가 돌아가신 '학생(學生)' 신분이다. 이미 시들어버린 할미꽃도 보인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빨리 지는고? 옛날에 그 흔하게 보았던 할미꽃이 이젠 천연기념물처럼 보기가 어려워졌다...
2021.04.06 -
모산지에 엄청난 두꺼비 올챙이가 산다.
'빛 좋은 개살구' '국내 최대의 두꺼비 산란지'라고 입으로만 떠들고, 올챙이에서 다리가 나고 꼬리가 떨어져서 망월산으로 향할 때만 방송이다. 절간이다. 뭐다 지랄 염병을 떨다가 그 두꺼비가 올라가다가 밟혀 죽든지 말든지, 다음 해 봄에 알을 낳기 위해 망월지로 내려오는 성체 두꺼비가 차에 치여 죽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는 종자가 없지만, 길손은 오늘 기분이 매우 좋다. 아파트나 땅을 사서 벼락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두꺼비가 이 조용한 모산지에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알을 낳았고, 그 알이 부화해서 큰 무리를 여러 개 만들어서 군무(群舞)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 보이는 검은 실루엣이 두꺼비 올챙이의 무리다. 수천 마리가 떼로 모여있다. 내가 전생에 두꺼비였나? 왜 잘생기지도 못..
2021.04.03 -
어느 고온 임의 안식처와 토종벌
홀로 사시다가 가신 어느 고온 님의 유택 옆으로 누군가 토종벌을 키우고 있다. 벌통을 갈무리한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내공이 상당해 보인다. 옛날에는 저 바위 밑으로 오솔길이 있었을 것이다. 산소 자리가 마땅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나름대로 명당이라고 생각했는지 옆에 쌍분을 쓸 조그만 공간도 없다. 산소 뒤편에서 왼쪽을 보니 작은 토종 벌통이 보인다. 산소 옆으로는 엉기성기 둘레석을 쌓았다. 아무래도 옛날에 형편이 안좋아 인부를 많이 구하지 못해서 저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산소 정면에는 저런 바위가 약간 수평으로 나가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고온 임을 모셨을까? 혼유석을 보니 고온 임은 여인의 몸이었다. 산소 정면에서 왼쪽을 보니 누군가 나무를 가지런히 쌓아서 방책을 쌓았다. 멧돼지가 다니는 길을 막았던..
2021.04.01 -
화이바 뚜껑 열리게 만드는 '현대자동차 리콜' 통지
'떡 줄 놈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셨다.' 내가 이런 꼴을 보기 좋게 당했다. 역시 현대자동차다운 발상(?)이었다. 우편함에 이런 것이 있어서 언뜻 보니 '리콜 통지'라는 빨간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드디어 그랜저 2.5 스마트 스트림 엔진을 교환해 주는가 보다. 엔진오일이 급격히 줄어서 화를 돋우더니 드디어 현대자동차가 리콜하는구나. 정말 멋진 자동차회사로구나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 가 아니라 '비용을 억지로 줄이다 보면, 엔진오일이 감소하고, 종국에는 화재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우편물을 개봉하여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역시 믿을 놈 하나 없구나" 불같은 화가 치민다. 화이바가 뜨끈뜨끈해지면서 뚜껑이 열리려고 한다. 엔진오일이 급격히 줄..
2021.03.29 -
도롱뇽 일병 구하기
한 달 전에는 이곳은 그간 내린 봄비로 제법 물이 있어서 도롱뇽이 안심하고 알을 낳았는데 오늘 도롱뇽이 궁금하여 배수로를 살펴보니 아뿔싸 물이 거의 말라가고 있다. 바보 같은 도롱뇽 어미가 이런 사태를 미연에 알 수가 없었겠지만, 참 한심한 도롱뇽 아빠 엄마였다. 산 쪽의 그늘진 응달쪽 배수로 이끼 밑에 뭔가 매달려 있다. 모두 도롱뇽의 알이다. 이곳은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낫다. 물이 조금 있다. 그러나 이곳도 앞으로 열흘 이상 비가 제대로 오지 않으면 물이 마를 것이 틀림이 없다. 이 알은 최악의 상황이다.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도롱뇽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아서 가까운 주말농장에 가서 저 스티로폼 박스를 구했다. 처..
2021.03.24